이제 갓 스무 살이 된 한 여자아이에게, 결코 잊혀지지 않는 섹스가 있었다.
어둡고 긴 밤, 그는 자신의 다리를 들어 올리며 "내 다리 참 예쁘지?" 하고 말했다. 나는 "아니, 전혀." 라고 대답했다.
나보다 스물다섯 살이나 많은 남자의 다리가 내 눈에 예쁘게 보일 리가 없다. 어쩌면 그는 자기만족 밖에 모르는 성도착증 환자였는지도 모른다.
행위 중간에도 그는 내 그곳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것 좀 봐. 구멍이야. 마치 너무 길고 캄캄해서, 음흉스런 동굴의 입구처럼 보여…… 말해봐. 나 이전에 이 동굴을 침입한 남자는 누구였어? 말해봐. 궁금해 죽겠어."
"……프랑스 남자."
나는 짧고, 간결하며, 명료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의 답변은 그를 한 마리 광포한 짐승으로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후회는 없었다. 비록 그 순간은 몸을 파고드는 고통과 두려움에 온몸을 떨었지만.
그는 정상적인 섹스보다 비정상적인 섹스를 좋아했다. 성기로 하는 것보다 손으로, 입으로, 또 다른 무엇으로…….
그에게 있어서 섹스란 사랑이 아니라 한 여성을 짓밟는 것이었다.
오직 자신만의 외로움과 쾌락을 위해 한 여성의 육신과 영혼을.
젊음을.
꿈을.(P)
영화감독 K, 그는 내게 기다림이란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기다림은 집착이야."라고, 거친 사랑에 중독 되어 미친 숲을 달리던 집착. 하지만 내 스무 살의 정열은 기다림의 시간을 집착의 시간으로 만들었지만, 이제는 기다리는 일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아마 집착의 원행대로 살아갔을 것이다. 그를 저주하고, 원망하며, 내 스무 살의 인생도 아무렇게나 생각하며 조금씩, 야금야금 파먹으며 절망한 채 어느 길거리에서 짧은 생애를 마감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P)
저마다 절박하고 외로운 이들의 징글맞게 서러운 삶이 정말 징글징글 가슴에 와 박히는 것이다. 영화감독 K는 배 밑에서 올라오는 슬픔, 증오, 환멸에 대해서 농밀하게 아는 것 같았다. 꾸역꾸역 올라와 구토가 되고 마는 슬픔, 지랄 맞게 몸서리치는 설움에 대해 그는 아는 것 같았다. 어떤 장면에서는 어찌나 목이 메는지 영화를 제대로 지켜볼 수조차 없었다.(P)
마치 수채화 같은 풍경에 치명적인 애증의 집착을 담아낸 어떤 작품은 화면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지만 생의 한 끝에 서 있는 이들의 파격적인 정서를 매우 의미심장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그는 인간에 대해 신파적으로 접근하는 듯하면서도 끝내는 매우 리얼하게 인간의 상처를 드러내 보여주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다.(P)
"내가 경험한 그는 유별날 정도로 강한 리비도의 소유자이며, 그때까지 쌓아왔던 영화에의 경력은 단지 운좋은 재간꾼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 나에게는 내 인생에서 잠시 스쳐지나간 그저 쓸모없는 휴지통일 뿐이지만.
물론 그가 내게 억지로 강요했다거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 선택이었으므로 나를 이용했다거나, 단순한 약속을 어겼다는 그런 점에서 그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나의 진실한 의도가 아니다.
단지 그는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미끼를 던져준 사람이며, 내가 글을 쓸 수 있게끔 내 인생의 첫 번째 터닝 포인트를 던져준 사람이기에 의미가 있다. 동시에 과거의 남자 중 하나라는 사실에서 보통의 여자들이 갖는 지극히 당연한 일부분이다"(P)
어떤 여자들에게는 죽이고 싶은 나쁜 남자의 얼굴이 일생에 각인되어 있다.
죽이고 싶은 그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거나, 또는 이용을 당했거나, 남자가 자신의 지위나 능력을 무기로 여자의 성을 함부로 유린하거나 했을 때 말이다.
그렇게 더러운 수치심과 모든 것을 한순간에 짓밟았던 그런 남자가 어떤 여자들의 가슴속에는 죽을 때까지 언제까지고 남아 있는 것이다.
여자들은 자신을 유린했던 남자를 향해 어떤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죄를 짓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상상을 하는 것이다.
오늘밤에도 그녀들은 상상 속에서 늘 죽이고 싶었던 그에게, 언젠가 자신에게 가했던 변태적인 행위들을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좀더 강한 수치심으로 그를 무장해제 시켜 주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한다.
그녀들은 상상 속에서 그들을 하나하나 벌거벗겨 놓고, 거리위에 서 있게 하거나 개와 성교를 시키고, 아니 좀 더 잔인하게 가늘고 질긴 명주실로 그의 더러운 페니스가 더 이상 본래의 기능을 상실할 때까지 꽉 조여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종내에는 페니스를 싹둑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니, 씹어서 먹어 버리고 싶을 만큼의 역겨움이 그녀들에겐 존재할지도 모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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