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자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이성애자들은 꼭 그렇게 묻더라. 언제부터 게이였느냐. 나를 어떻게 생각해온 거냐. 나를 볼 때마다 몰래 흥분한 거 아니냐. 기분 더럽다…… 내 대답은 이래. 나도 눈이 있고 수준이 있거든?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내 취향이 아니야.”
_「믜리도 괴리도 업시」 중에서
난 작가라는 것들이 뭐 특별한 줄 알았지. 알고 보니까 별거 아니더구만. 그깟 소설 나부랭이 못 쓰겠네 안 써지네 하면서 살려달라고 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더니 단물 쪽 빨아먹고 나서는 싸늘하게 배신을 때리네. (…) 이것들 뽕쟁이하고 뭐가 달라. 저 혼자 골방에서 약 빨다가 약발 다 떨어지면 밖으로 벌벌 기어나와가지고는 울고 짜고 훔치고 거짓말하고. 야, 씨발아,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필명으로라도 소설 써가지고 니들 동네 전부 말아먹을 수 있어.
_「블랙박스」 중에서
무엇엔가 제대로 미친 사람들에게는 그런 흔해빠진 쓰레기, 공짜를 백안시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부자가 아니고 명성과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자신이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었다. 그들은 인간 뇌 속의 뉴런처럼 스스로의 일생을 인간의 황금기를 담고 기록하는 뉴런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처럼 창조적이거나 창의적인 적이 없었다. 그들을 좋아하고 그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만남의 연쇄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 인류의 신경세포에 미쳤다.
새롭게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은 책을 접하는 것과 비슷했다. 책을 꺼내들었을 때의 무게와 냄새, 첫 장을 펼 때의 설렘, 페이지가 넘어갈 때의 조바심과 흥분을 사람들에게서 느꼈다.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되고 부딪치고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결국 책을 꺼내서 읽고 생각하고 느끼고 책장에 다시 꽂고 기억하는 것과 비슷했다. _『몰두』 중에서
넌 잠에서 깬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을 본다. 아침 먹으면서 보고 점심 먹으면서 보고 간식 먹으면서 보고 저녁 먹고 회식하면서 보고 퇴근하면서도 본다. 너는 보고 또 본다. 스마트폰은 네 시간과 지각과 판단력의 요람이자 무덤이다.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대기업이 무료 검색엔진을 제공하는 건 인류애가 넘쳐서가 아니지. 광고주들이 원하는 수많은 마케팅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해주려는 것. 온라인에 넘치는 돌팔이와 사기꾼, 사이비 종교 지도자, 가짜 전문가들에게 한번 주의를 분산해 업무에 방해를 받았다 다시 집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 그들은 (…) 남들의 머리 위, ‘수석’에 일단 올라선 뒤로는 그들끼리의 ‘메이저리그’를 형성하고 무법, 탈법, 초법, 비법, 불법을 가리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왔다. 마치 자신은 그런 운명을, 유전자를 타고난 듯 당연하게. 연민과 염치의 유전자는 결락된 채. 그런 그들 앞에서 너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어서 스마트폰을, 스마트폰만을 보고 있는 게 아니냐.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실에서, 지금 여기 이 시간 좀처럼 행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7,341,896,144명 가운데 1인, N분의 1로 산다는 게 N, 1㎢의 면적 안에 사는 나와 비슷한 508명과 살아간다는 게 N, 누군가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만나고 어울리고 이별하고 다시 만나고 N, 너 스스로를 저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사는 것이 잡은 줄을 탁 놓아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귀한 것이다. (…) 부디 오래. 너절하고 거지같은 그들의, 그들끼리의 리그가 무너지고 스러져 바람 속 먼지처럼 흩날리는 것을 보기 위해 더 오래. 아주 오래오래, 살아 ‘영화’를 보려, 깨달음의 드높은 세계로 가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고 기대여명 따위 훌쩍 넘어 천년만년 살아남으라.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 N, 너는 나다. 나의 모든 사랑이며 영원한 전부인, N.
_「나는 너다」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