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투구를 쓴 남자>를 통해 이런 분석을 보다 구체화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1648년에서 1650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그려졌다. 그림은 우리에게 한 노인을, 한 노병을 보여주고있다. 그동안 등장인물의 얼굴이 렘브란트의 형 아드리안을 닮았으며 그래서 아마도 아드리안이 모델일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투구를 통해 노인이 군인임을, 전투로 단련된 노병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의 윤곽이 세심하게 묘사되었고 주름 잡힌 얼굴 표정은 그가 사려 깊은 성격임을 알려준다. 눈은 어찌 보면 우리를 응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무표정하게 텅 빈 것 같기도 하다. 이 속에서 병사는 북상에 잠겨 있다. 이 남자는 유혈이 낭자한 전쟁에서 비애를 느꼈을 것이다. 경이롭게 묘사된 투구는 모든 상징을 철저하게 전복한다. 투구는 군인의 상징이지만 이 투구는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군인을 그린 그림이 아니다. 금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다. 황금 투구는 부와 권력, 군사적 영광을 표상한다. 황금 투구는 황금 시대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 투구는 그렇지 않다. 투구의 묘사가 '진짜' 금 같고 그리하여 그 중량감과 광택이 실재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조금의 거드름이나 승리의 도취감도 이 투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깃털장식은 당당한 위풍과 명예, 허영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그림의 깃털장식은 그렇지 않다. 투구와 얼굴은 서로를 보완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견제한다. 화가는 섬세한 붓질을 통해 이 노인을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버린 세계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체념적이고 비극적인 비판이다. 희망을 결여한 비판이다. 창조 행위라는 미덕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한다는 희망을 제외하면, 또 훨씬 더 비참하거나 훨씬 더 선한 시대에 우리들이 이 작품에서 얻어낼 수 있는 희망을 제외하면 희망을 결여한 비판인 것이다.
--- pp.163~164
반항적이고 비판적이며 내재적인 반자본주의의 요소가 렘브란트의 후기 작품이나 재정적 곤궁이 닥쳤던 시기 또는 1656년 이후 성공과 이에 따른 명성이 상대적으로 시들했던 시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비판 정신은 전 생애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비록 잠재적이기도 하고 압도적인 부르주아적 측면에 굴종하기도 하지만 출세 가도를 달렸던 초창기에도 이점은 분명히 확인된다. 놀랍게도 렘브란트의 반자본주의적 특성은 그가 무엇을 그리지 않았는가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네덜란드 회화의 다양한 장르 속에서 렘브란트가 정물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그가 네덜란드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이나 소외당한 사람을 묘사하는 일에 아주 적그적이었다는 점은 위의 사실과는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렘브란트는 일생 동안 거지 및 처지가 거지나 다를 바 없는 빈민의 이미지를 35개 이상 그리거나 부식동판화로 제작했다.
--- pp.124~125
그렇다면 네덜란드 미술과 네덜란드 사회에 관해 말할 때 렘브란트는 어디쯤에 있을까? 몇가지 측면에서 그는 네덜란드가 배출한 최고의 예술가이자 최상급의 부르주아 화가이다. 레이든의 한 제분업자와 비교적 유복한 어머니 사이에서 아홉번째 아들로 태어난 렘브란트는 쁘띠 부르주아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가 집단이 차지하는 전형적인 사회 계급이다. 그의 재능은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이미 20살에 독립 화가로서 자리를 잡았고, 23살에는 주연합 총독 프레더릭 헨리의 개인 비서였던 권세가 코느탄테인 호이헨스의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그는 20대 후반에 벌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마도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였을 것이다.
--- p.93
새로 탄생한 국가가 자신의 예술가들에게 부여한 임무가, 한 프랑스 작가의 말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새로운 국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싶어했다." 사실상 이 진술이 네덜란드 회화에 해당하는 말이다. 국가와 민족,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직하면서도 충실한 기록, 가정과 일상생활의 소박한 진실을 남김없이 표현하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 p.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