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중원과 북방, 농경과 유목 곧 호(胡)와 한(漢)을 융합한 새로운 체제로 세계 제국을 이룬 대당(大唐)의 발원지가 바로 알선동(?仙洞)이다.
선비족 탁발부, 즉 탁발선비는 아득한 상고에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기원후 1세기 중엽 북방 기후가 한랭기로 들어서자 탁발선비는 이곳 삼림에서의 수렵, 어로 생활을 벗어나 대택(大澤), 곧 후룬호(呼?湖) 인근 초원으로 남천하여 초원 유목민으로 변신했다.
북방 초원에서 서서히 힘을 키워 나간 탁발선비는 2세기 중엽 다시 남으로 이동했다. 고난을 극복하면서 먼 길을 걸어 몽골고원 남쪽[漠南]의 초원, 곧 흉노의 옛 땅[匈奴故地]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따뜻하고 풍요로운 초원이 아니었다. 남하하려는 북방의 여러 유목 종족과 이를 저지하려는 중원의 농경 제국들이 치열한 생존 쟁투를 벌이는 용광로였다.
당시 중원의 적장자였던 서진(西晉, 265~316)은 280년 오(吳)나라를 무너뜨리고 삼국을 통일했다. 북방 유목민 중 일부는 이미 중원에 들어오기도 했지만, 이때만 해도 중원은 북방 유목민들을 어느 정도 제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진은 곧 오만과 퇴행 속에 스스로 무너졌다. 북중국은 4세기 초부터 135년 동안 5호16국(五胡十六國, 304~439)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적 대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격류 속에서 탁발선비는 대국(代國)을 세웠다가 잠시 절멸의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386년에 다시 북위(北魏)를 세웠다. 가장 늦은 시기에 북중국 지역으로 진입한 탁발선비는 선착(先着)한 다른 종족의 왕조들을 제압하고 439년 북중국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었다.
탁발선비의 북위는 북방 유목 종족에서 중원의 정복자로 등장했으나 단순한 정복에 안주하지 않았다. 남과 북, 유목과 농경, 호와 한을 아우르는 진정한 대륙의 맹주, 제국의 통치자가 되려고 한 것이다. 이들은 북방 초원의 첫 번째 패자(覇者)인 흉노가 침략과 약탈에 머물렀던 것과는 확실하게 달랐다. 백성이든 지식인이든 중원의 한인(漢人)을 자신들의 체제 안으로 수용하였다. 중원의 문명과 북방의 무력을 결합해 강력한 통치력을 구축해 나간 것이다. 봉록제(俸祿制)와 균전제(均田制), 삼장제(三長制) 등을 통해 유목과 농경을 결합하는 사회 경제적 기초를 다져 나갔다. 그 위에 한인과 통혼하고 복식은 물론, 언어와 성(姓)까지 동화하면서 문화적 융합을 추진했다. 불교라는 제3의 외래 종교를 새로운 규범과 가치로 채택하고 운강석굴과 용문석굴, 현공사 등 화려한 불교 유적을 남겼다. 가장 극적인 호한(胡漢)의 융합 과정은 평성(平城, 지금의 다퉁大同)에서 낙양(洛?, 뤄양)으로 천도한 것이었다. 초원과 중원의 경계선인 평성에 있던 수도를, 중원의 한복판인 낙양으로 옮김으로써 역사까지 융합하여 동아시아 역사에 완전히 새로운 장을 열었던 것이다.
이런 급진적인 융합 정책은 탁발선비 내부의 강력한 반발과 분열을 초래했다. 기존의 가치와 문화, 기득권까지 포기하고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창출하려는 호한의 융합은 그리 간단히 이루어질 일이 아니었다. 탁발씨가 황제로서 역사를 이끈 것은 북위와 동위(東魏), 서위(西魏)까지였다. 하지만 탁발선비는 탁발씨가 아닌 또 다른 탁발선비, 즉 관롱집단(關朧集團)을 후계자로 키우고 있었다. 이들은 동위와 서위의 실권자로서 통치 역량을 다지다가 탁발씨를 대신하여 전면에 나섰다. 우문(宇文)씨가 북주(北周)를 세우고, 고(高)씨는 북제(北齊)를 세웠다. 이후 다시 양(楊)씨가 북주를 전복하여 수(隋)를 건국하고, 남조의 진(陳)나라까지 멸하면서 대륙을 통일했다. 그러나 재정 파탄과 부패로 수나라가 기울자 이연과 이세민은 당(唐)을 세워 양씨를 축출한 후 호한융합의 역사를 새로운 궤도에 진입시킨 역사의 주역이 되었다.
호한융합의 최종 결실은 대당(大唐)제국의 건업이었다. 대당제국을 세운 이씨는 물론, 탁발씨 이후에 제위 이양의 징검다리가 된 우문, 고, 양 네 가문 모두가 탁발선비이다. 이들이 선비족이 아닌 한족(漢族) 출신이고, 쌍방 간 호한융합의 역사를 일방적인 한화(漢化)라고 견강부회하는 것은 한인 사가들의 졸렬한 북방 콤플렉스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아프리카의 후예지만 미국 시민이고, 대통령으로서 국가수반이 된 그 나라는 아프리카 국가가 아닌 미국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제, 북주와 수나라, 당나라 역시 탁발선비의 왕조들이다. 관롱집단이라는 탁발선비 이니셔티브의 핵심 인물들이 상호 경쟁하면서 정권을 교체했고, 그에 따라 국호를 바꿨을 뿐이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