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종이띠 한 장은 앞면과 뒷면 두 개의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뫼비우스의 띠(Mobius strip)는 몇 개의 면을 가지고 있을까? 뫼비우스의 띠를 만든 후 중심을 따라 펜으로 선을 그려보자. 처음 시작한 점에 닿을 때까지 계속 그려보라.
종이띠를 비틀지 않고 양쪽 끝을 연결해놓으면 띠의 바깥쪽 고리나 안쪽 고리 중 단지 한 고리만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뫼비우스의 띠를 가지고는 어떤 두 점도 선으로 이을 수 있다. 두 개의 점이 원래 종이띠의 각각 반대 면에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뫼비우스의 띠는 바깥쪽 면이나 안쪽 면이 따로 없다. 곧 한 면만 가지고 있다.
--- p.46, [2.5 단측 도형]에서
프랑스의 수학자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어느 날 벽 위의 파리를 바라보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간다). 그는 그 파리의 위치를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오늘날 데카르트 좌표라 불리는 것을 창안했다.
평면 위의 한 점(예를 들면 벽 위에 있는 파리의 위치)을 구체화하려면 가장 먼저 교차하는 두 개의 수직선을 그리고 그 교차점을 ‘0’이라 한다. 이후 각 점은 두 개의 좌표로 결정되는데, 첫 번째 좌표는 ‘0’으로부터의 수평거리, 두 번째 좌표는 ‘0’으로부터의 수직거리다. 통상 첫 번째 좌표는 x-좌표, 두 번째 좌표는 y-좌표라 부른다.
그러면 대수적 방정식의 좌표는 어떻게 나타낼까? 수식 y=2x를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 수식을 만족시키는 좌표 (x, y)의 모든 점을 찾아보라. 다시 말해, (x, 2x)의 형태를 가진 좌표의 점을 찾아보자. 점 (1, 2)와 (2, 4)가 해당되듯이 점 (0, 0)도 여기에 부합한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 수식을 만족시키는 점은 모두 (0, 0), (1, 2), (2, 4)를 연결하는 직선 위에 있다. 사실 그 방정식이 이 직선을 정한다.
--- p.64, [3.2 데카르트 좌표]에서
우리는 삶의 모든 곳에서 변화율을 경험한다. 속도는 거리의 변화율이고, 가속은 속도의 변화율을 설명하며, 힘은 물체에 대한 작용의 변화율이다. 그리고 모든 변화율은 시간 단위로 측정된다.
변화율을 측정하는 것은 시간을 어떤 단위로 나누는 것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사다리를 오르는 데 걸리는 총시간이 하나의 시간 단위가 될 수 있다. 이때 당신이 사다리를 오른 거리에 대한 변화율은 단순히 그 시간 단위당 올라간 거리다. 또 그 거리를 사다리의 각 계단 단위로 나누어 시간 단위를 더 잘게 나눌 수도 있다. 그러면 당신이 지나간 거리에서의 변화율은 ‘새로운 시간 단위당 사다리의 가로대 사이의 길이’다. 만약 각 계단을 오르는 데 같은 양의 시간이 결렸다면 그 변화율은 일정할 것이다. 하지만 피곤해져서 더 천천히 오르게 되었다면 계속 앞으로 나아가더라도 지나간 거리에서의 변화율은 감소할 것이다.
미적분은 어느 순간에서든 변화율을 계산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단위가 극소량(infinitesimal)이 되어 아주 작아질 수 있도록 하면서 어느 수량의 변화율을 계산하는 과정이다.
--- p.92, [4.4 변화율과 미적분]에서
어떤 방이 사람과 의자로 가득 찼다고 상상해보자. 만약 모든 사람이 각각 한 개의 의자에 앉아 있고 남는 의자가 하나도 없다면 의자의 수가 사람의 수만큼 많은 것이다.
이 같은 아이디어를 수학자들은 개체들의 무한집합들에 적용한다. 예를 들어 의자들의 무한집합과 사람들의 무한집합. 한 집합의 각 개체를 다른 집합의 각 개체와 짝을 맞추는 방법이 있다면, 그래서 각 집합에 남아 있는 개체가 없다면, 그 두 집합은 크기 또는 집합원의 개수(cardinality)가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말은 되지만 이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짝수 집합의 짝수를 자연수 집합의 자연수와 아래와 같이 정확히 짝지을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자. 2는 첫 번째 짝수이므로 1과 짝이 될 수 있다, 4는 두 번째 짝수이므로 2와 짝이 될 수 있다, 6은 세 번째 짝수이므로 3과 짝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계속된다. 위의 아이디어에 따르면 이것은 짝수의 집합이 모든 양의 자연수 집합과 집합원의 개수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우리 생각으로는 짝수의 개수가 자연수의 절반에 그쳐야 할 것 같지만 말이다! 이상한 결과지만, 수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 p.236, [10.4 집합원의 개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