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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의 칼자국

책상 위의 칼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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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8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81쪽 | 284g | 128*188*20mm
ISBN13 9788993481334
ISBN10 899348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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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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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의 칼자국

옛날이라고 하기엔
아주 가까운
내 초등학교 시절
짝꿍과 나는
초록색 페인트칠한
한 책상을 사용했다.

생존을 위해 경쟁했던 그 시대처럼
우리는 칼로 책상 가운데를 파댔다.
하얗게 나뭇결이 드러난
이등분선은
머리 수술자국 같은 흉터를 남겼다.

짝꿍의 공책이
흉터를 넘어오면
나는 여지없이 짝꿍의 공책을 잘랐고
내 연필이 넘어가면
짝꿍은 여지없이
내 연필을 부러뜨렸다.

그 땐 그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으로만 알았다.
내 영역은 소중하고
네 것과 내 것이
분명할 때 세상은
평등해진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짝꿍은 어른이 되고
나도 또한 어른이 된 후
초록빛 책상 가운데를 갈랐던
하얗고 흉물스런 기억이
내 가슴에 흉터로 남아 지워지질 않았다.

지금은 삭막한 세상의 가운데서
함께 손을 붙들고자 해도
망망대해의 무인도처럼
손을 내미는 이 없는데
그 때, 누군가 우리에게
함께하는 아름다움을 가르쳤다면

누군가 그 때 우리에게
함께 같은 책상을 사용하는
아름다움을 가르쳤다면
오늘 이처럼 외로운
바다에 서 있지 않을 것을
새하얀 한 가닥 흉터도
남기지 않았을 것을.

그 누군가.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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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온도가 다른 두 개의 시선을 가졌다. 차가운 눈길이 가 닿는 곳에는 모순투성이의 현실, 특히 가치를 잃고 몰락한 교육 현실이 존재한다. “도화지에 학교를/그릴 때면, 제발//추상화로 그리진/말아” 달라며, 우회하기보다는 빠른 길을 택한 그는 직설적으로 환부에 메스를 들이댄다. 반면 “꿈의 성장점을 다친” 채로 “악마도”에 갇혀 “지겹도록 길고 긴/탈옥의 꿈을” 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기계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인형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나만이 갖고 있는/비밀이 가득한 창고”에 자물쇠를 채우며, 진정한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끝없는 부끄러움과 반성으로 이끈다.
시집의 시들은, 악마도 속에 살면서도 여기가 악마도인 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낡아빠진 카스트 제도를 앞 다투어 비판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카스트 제도를/목마르게 열망”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부여한다. 불행한 현실 속에서 끝없이 절망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교실이데아’를 꿈꾸는 시인의 목소리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박완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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