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분명하게 말해둘 게 있는데, 난 누구도 언짢게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소. 단지 인간에게 ‘평정심’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을 뿐이지. 천국에 간다 해도 우리 내면의 평화를 깨뜨리는 요소가 반드시 있을 거요. 실제로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불안의 씨앗을 품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내 그림에 등장하는 기괴한 동물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꿈속에서 봤음 직한 형상에서 연상된 것들이에요. 그건 우리 생애 마지막 순간에 죽음을 마주하며 만나게 되는 이미지, 우리는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이미지에요. 15-16쪽. 히에로니무스 보스
내가 받은 교육, 가치관, 꿈 등 모든 것이 현실과 부딪치기를 꺼리게 했습니다. 나는 프랑스의 모네, 고갱, 카유보트와는 다릅니다. 내 내면 세계는 그리스·로마 시대, 중세를 향한 꿈의 기억과 상징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프랑스 화가들의 관심사와는 전혀 다르지요. 이제 환갑이 지난 이 나이에도 나는 여전히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 채색 유리와 소묘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련이 만발한 정원 연못 앞에 이젤을 세울 때 어떤 그림을 그릴 것 같습니까? 내 영감의 원천은 근본적으로 문학에 있습니다. (장엄한 어조로) 예술가는 세속의 모든 관심사에 초연하고, 현실과 거리를 둘 줄 알아야 합니다. 20쪽 에드워드 번 존스
복잡하게 말하지 맙시다. 내가 이론가도 아닌데… 단지 내가 아는 것은 이거요. 들판에 내린 눈에 드리운 그림자를 눈으로 보면 푸른색을 띠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내에서 그 장면을 상상하고 그리는 사람은 절대로 그런 사실을 알 수가 없어요. 회화는 완벽하게 물질적인 매체로 여기서 사용하는 언어는 모두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대상입니다. 추상적이고 보이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은 회화의 영역에 속하지 않아요. 44쪽. 귀스타브 쿠르베
나는 루이 필립 왕의 7월 왕정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제2공화국의 열렬한 지지자였는데, 이 코르시카 꼬마의 대용품이 나타나 대중을 현혹하는 꼴을 보니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지요. 1852년 루이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자 모든 게 이전과 똑같이 되풀이되더군요. 내 머리 위로 또다시 검열의 칼날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난 다시 사회 풍자로 방향을 틀었죠. (...) 코로 씨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요? 고마운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년 전부터 국가가 주는 쥐꼬리만 한 연금이라도 없었다면, 나는 지금 끼니 걱정까지 해야 할 처지가 됐을 겁니다. 다행히도 친구들이 여러모로 날 도와주는데, 작년에는 뒤랑 뤼엘 화랑에서 대대적으로 내 회고전도 열어줬습니다! 언론에서도 하나같이 호의적으로 보도해줬고, 빅토르 위고 선생이 준비위원장까지 맡아주셨죠. 하지만 애석하게도 전시회가 성공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군요…. 그래요, 돌아보면 성공이란 깨지기 쉬운 그릇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죠. 56쪽. 오노레 도미에
궁극적으로 빛 자체는 내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빛은 단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 정신적 차원의 강렬함을 암시하고 강조하는 수단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나는 항상 통일성을 추구해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이렇게 강조하는 통일성이 제리코에게는 부족합니다. 통일성은 내 회화 철학의 근간을 이룹니다. 요즘은 전체적인 분위기에 더 신경을 씁니다. 그림에서 음악이 들리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지요. 조르주 상드는 내가 화가도 시인도 아닌 음악가라고 합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쇼팽이 내 그림을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귀로 들었다고 했다는 말도 합니다. (갑자기 침울해지며)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을까요? 내가 삶에서 받은 가장 깊고 큰 상처는 고독입니다. 피할 수 없는 고독 말입니다. 그것은 내게 부과된 천형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 세상 누구도 이런 끔찍한 형벌에 희생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65쪽. 외젠 들라크루아
나는 항상 그림의 장식적인 측면과 철학적 원칙이 조화를 이루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내가 회화에서 요구하는 것은 (나비파의 주요 이념인) 원근법에 개의치 않는 이차원적인 평면성, 순수하고 선명한 색채, 단순화한 구성입니다. 이런 원칙에 바탕을 두고 나는 현대 생활을 묘사한 작품에서부터 종교적 감성이 충만한 작품, 지극히 개인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까지 자유롭게 그릴 수 있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거칠고 차가운 사실주의 화풍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독일 화가 오토 딕스가 그린 예쁘장한 꽃다발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어떤 소재도 다룰 수 있습니다. 왜냐면 내 회화 언어는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르누아르도 나와 같은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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