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은 왜 위인을 만들지 못하는가? - 우리는 위인을 만들 줄 모른다. 이 사람이 올려 세우려 하면 저 사람이 헐뜯고, 이 당파에서 올려 세우려 하면 저 당파에서 깎아내린다. 그러다 보니 온전한 사람이 없다.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세웠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시켰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반대로 잘못된 점만 부각시킨다. 그러면 세상에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나?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고, 신일 터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장점도 있을 수 있고, 약점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서양에 가면 웬 위인이 그리 많은가? 공원이고 광장이고 건물이고 간에 이러한 위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들도 먼지를 털어 보면 온전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10명의 대통령이 있었으나 하나같이 완전한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국가는 짧은 시간 안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지도한 사람이 있었을 것 아닌가? 100%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70%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나머지 30%는 국민이 채워 넣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한국 사람은 왜 위인 만들기를 잘하지 못하는가?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과거제도를 통해서 길러진 능력주의 때문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남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가 잘났으니 남을 인정할 까닭이 없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 근?현대사가 격동의 역사이어서 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이념이 자주 바뀌고, 가치 기준이 자주 변했다. 이념과 기준이 바뀌면 평가도 달라진다. 일제를 거치면서 친일파 논쟁에 휩쓸리고, 제국주의 침략을 받았기 때문에 자주와 사대가 대결했다. 냉전을 경험하다 보니 친공과 반공이 대립했다. 이 때문에 각각 다른 기준으로 역사적 인물을 재단하다 보니 온전한 사람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견은 조율되어야 한다. 국론이 분열되면 되는 일이 없다. 지금처럼 남남갈등이 심해서야 어떻게 경제가 발달하고 통일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 요즈음처럼 통섭이 강조되는 때도 드물다. 통섭의 예를 우리는 역사적 위인들로부터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위인이 꼭 서양에만 있으란 법이 없다. 우리 역사에도 위인들이 많다. 다만 찾아보지 않았을 뿐이다. 이에 나는 우리 역사 속에서 위인 찾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인물 20여 사람을 연구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가계와 행적을 자세히 추적해 봤다. 그랬더니 의외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았다. 특히 영의정을 지낸 분들에서 그러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