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왜 짐 형제(일란성쌍둥이)의 유사점이 법칙이 아니라 예외인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유전자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설정하고, 유전자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몇 가지 억측에 도전해야 한다. 첫 번째 억측은 유전자 단독으로 인간의 본질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즉, 유전자가‘인간의 청사진’또는‘생명의 책’으로서 유전의 유일한 메커니즘이라는 생각이다.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중심적인 생명관을 재고해야 한다. 유전자의 핵심 역할에서 나온 두 번째 억측은 유전자와 대대로 전해지는 유전적 운명은 바뀌거나 수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 억측은 환경적 요인이 우리 몸속 세포에 있는 유전자에 장기간 지속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며, 네 번째 억측은 우리 조상의 환경이 미쳤던 영향인 획득 형질을 우리가 물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 p.39, 서론
각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수천 혹은 수백 개의 유전자가 심장병 같은 대부분의 복잡한 형질에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유전자는 콘서트홀(우리 세포) 안에서 사용되는 오르간의 2만 5,000개 파이프와 같으며, 음악을 통제하려는 신비한 오르간 연주자(후성유전)에 의해 수백 개의 파이프가 열리고 닫힘으로써 조화롭게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심장발작 유전자’ 운운하는 것은 바흐의 푸가D단조에 단 한 개의 음이 사용되었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터무니없는 말이다. 많은 유전자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을 예측하기 힘들며, 소수의 유전자에서 일어나는 작고 미묘한 변화가 커다란 변화를 야기할 수도 있다. 여기서 후성유전과 메틸화의 특징이 드러난다. 흡연이나 체중 증가와 같은 위험요인의 자그마한 변화 때문에 다수의 유전자 안에서 일어나는 메틸화가 바뀌므로 그 기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p.98, 생명 유전자, 수명은 정해져 있을까?
열량제한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과일과 채소가 풍부한 식사와 많은 운동으로 더욱 건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하루에 16시간 굶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1944년의 네덜란드 기근과 그 후에 있었던 중국의 대약진운동 시기의 대기근에서 보았듯이, 극심한 식량부족은 다음 세대에 예측할 수 없는 후성유전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규모의 연구를 통해 담배를 끊는 것, 비만을 피하는 것, 적절한 운동이 생물학적인 노화를 5년 정도 늦출 수 있으며, 그와 대조적으로 만성 스트레스는 해롭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순환적인 단식과 운동을 통한 열량제한법이 자기 몸에 완벽하게 맞는지,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주는지의 여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설사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더라도, 우리가 독신으로 지내는 선충의 생활방식을 흉내 낸다고 해서 모두 150년을 살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 p.140, 비만 유전자, 뚱뚱한 것은 유전일까?
오늘날 자폐증의 치료가 낙관적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뇌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연하다는 최근의 발견 때문이다. 특수화된 부위가 뇌의 기능을 바꿀 수 있으며, 세포들은 후성유전적 변화에 의해 특수화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뇌졸중이나 외상 이후 뇌의 다른 부위가 신체의 다른 부위를 움직이는 일도 넘겨받을 수 있고, 맹인의 시각을 담당하는 부위가 청각이나 후각을 담당하는 것으로 바뀔 수 있다. 플로와 케이가 특출한 기억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뇌에서 다른 부위가 덜 사용되고 있거나, 정상적인 감각에서라면 홍수처럼 밀려들 산만한 신호들이 통제되면서 사소한 것이나 놀라운 수학적인 내용을 암기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 대단한 예술적 기교를 구사했던 특출한 정신능력자라도 자폐증상이 개선돼 뇌의 다른 부분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런 능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
--- p.165, 암 유전자, 유전자로 암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까?
일란성쌍둥이인 제니퍼와 로즈메리, 이들 두 사람의 배변습관과 식욕, 신진대사에 이토록 큰 차이를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엘렌과 에바 사이에는 또 어떤 유사점이 있기에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을까? 그것은 장에 있는 50만 개 정도의 세균 유전자와 수조 개의 미생물과 상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몸에 있는 미생물의 약 40퍼센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지만, 소수의 특정인에게 존재하는 세균도 많이 있으며 300만 개 이상의 세균유전자가 모인 독특한 유전자 집단을 형성한다. 이는 인간의 유전체보다 150배나 다양한 것이다. 이 유전자들은 탄수화물이나 당의 분해에서부터 지방과 비타민 합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거대한 부수적인 유전체를 하나 갖고 있는 셈이다. 이 유전체는 우리가 먹은 것을 걸러내고 대사를 하고, 그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방식, 그리고 단지 추측밖에 할 수 없는 다른 수많은 과정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p.196, 세균 유전자, 세균도 환경의 영향을 받을까?
하나의 세포인 수정란이 불과 몇 년 만에 걷고 말하고 배우고 사랑하고 생각하는 개체가 된다. 몸속에 있는 수십억 세포 각각에서 한 세트의 유전자가 정확한 타이밍에 수백만 가지의 상호조합을 통해 발현된다. 인체의 발달은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운, 정밀하고 미세한 공학의 협연이며, 그 결과물로 한 인간이 만들어진다. 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구세포precursor cell의 작은 세트가 분열하고 특수화되어 수조 개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특수한 신경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 영양이 필요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생후 3년이 정상적인 발달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이 모든 복잡한 과정과 프리드리히 황제의 실험은 모두 애착, 정서, 감각적 입력이 결여된 고아들은 절대로 회복되지 못하리라는 점을 시사한다.
--- p.307, 육아 유전자, 다시 불붙은 천성 대 양육 논쟁
부모가 중요한가라는 최초의 내 질문으로 돌아가면 답은 분명히 아직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중요한가하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정서적으로 애착을 느낄 상대를 갖지 못한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된다. 부모로부터 버려졌거나 안정감을 얻지 못한 아이들은 장애가 생긴다거나 사회적 문제를 겪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정상적인 육아 범위가 자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의심의 여지없이 과장돼왔다. 쌍둥이 연구는 어쩌면 그 반대쪽 끝에서 개인에 대한 환경의 영향을 과소평가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환경의 영향이 생각만큼 예측가능하지 않고, 가족이 공유하는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엄마의 근무시간, 수유 기간, 아빠의 적극성, 엄격한 정도, 포옹 횟수, 취침시간, 규칙적인 식사시간, TV 시청, 강제적인 독서나 숙제 감독 등이 자녀의 성장의 차이, 최종적인 성격 또는 행동에 장기적인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설명할 적절한 과학적인 증거가 전혀 없다.
--- p.312, 육아 유전자, 다시 불붙은 천성 대 양육 논쟁
이 책의 원제는 “Identically Different(똑같지만 다른)”이다. 우리는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와 외모, 그리고 웃는 방식이나 차를 마시는 방법 같은 무의식적 태도의 대부분이 어떻게 유전자에 의해 세밀하게 결정되는지 살펴보았다. 인간은 위험을 피하고 섹스 상대를 찾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한 미묘한 표정과 몸짓에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낯선 사람들은 쌍둥이가 무서울 정도로 닮았다고 생각하고, 형제자매도 낯선 사람들에게는 그들 자신이나 가족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표면적인 외모나 태도는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정체성과 성격에서의 진정한 차이를 왜곡한다. 어쩌면 우리의 유연성과 무작위성을 확보해주는 가소성 유전자들이 미묘하게 우리를 보호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소성 유전자는 변화하는 환경에 노출될 때 각 세대의 특성에 더 많은 다양성과 무작위성을 확보해준다. 이 다양성은 인간의 생존에 절대적이다. 다양성 없다면 인간은 기근, 전염병, 폭식, 자연재해에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함으로써 전멸해버릴지 모른다.
--- p.388, 유전자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