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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왕을 꾸짖다

선비, 왕을 꾸짖다

: 상소로 보는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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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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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년 09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484쪽 | 849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1223325
ISBN10 89912233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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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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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시여 제발 고려에서 어린 소녀들을 빼앗아오지 마십시오〉 -이곡(李穀)
고려의 풍속을 보면, 차라리 아들을 별거하게 할지언정 딸은 내보내지 않으니, 이는 옛날 진(秦)나라의 데릴사위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봉양하는 일은 전적으로 딸이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딸을 낳으면 애정을 쏟고 근실히 돌보면서 얼른 자라나 자기들을 봉양해 주기를 밤낮으로 바라 마지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 딸을 품 안에서 빼앗아 사천 리 밖으로 내보내고는, 그 발이 한번 문밖으로 나간 뒤에는 종신토록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그 심정이 지금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고려에 사신으로 가는 자들은 모두 처첩을 욕심내고 있으니, 대저 사신으로 나가는 목적은 장차 황상의 은혜를 선포하는 동시에 백성의 고통을 물어서 파악하고 그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서 재물과 여색만을 탐욕스럽게 구하고 있으니, 이런 일은 금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한 해에 한두 번씩 일어나기도 하고, 한 해 건너 한 번씩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렇게 해서 데려가는 어린소녀의 숫자가 많을 경우에는 4, 5십 명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일단 선발이 되면 부모와 친척이 서로 모여 통곡하면서 울기 때문에 밤낮으로 곡성이 끊이지 않으며, 급기야 국경에서 떠나보낼 적에는 옷자락을 부여잡고 땅에 엎어지기도 하고 길을 막고서 울부짖기도 합니다.

(해설)
이 상소는 고려판 정신대로 불리는 공녀(貢女)제도를 폐지시킨 역사상 가장 가치 있는 상소이다.
당시 고려에서는 공녀제도 때문에 어린나이에 일찍 결혼시키는 조혼의 풍습이 생겨날 정도였다. 이곡은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였는데, 원나라가 고려에서 강제로 어린 소녀들을 공출해 감으로 이를 보다 못해 중국의 언관(言官)을 대신해서 원나라 황제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상소문의 애절한 사연을 읽은 원나라 황제는 감동을 받아 결국 이곡이 청한 대로 고려에서 어린 소녀들을 데려오는 것을 그만두게 하였다. --- 본문 중에서

〈언문(諺文) 창제의 부당함을 아뢰옵니다〉-최만리(崔萬理)
언문(諺文)을 창제하는 것은 지극히 신기하고 묘하여 만물을 창조하시는 것과 같은 천고에 훌륭한 일이오나, 신 등의 좁은 생각으로는 오히려 우려되는 일이 있사와 간곡한 정성으로 감히 뒤에 나열하오니 전하께서는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우리 조선은 조종 때부터 지성으로 중국을 섬겨 한결같이 중국의 제도를 따라서 시행하여 왔는데, 이제 막 글이 통하고 법도가 중국과 같이 되어가는 마당에 언문을 새로 창제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만일 중국으로 흘러들어가 혹시라도 비난하여 말하는 자가 있으면 어찌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겠습니까?
예부터 중국은 그 땅이 넓어 전국의 기후와 풍토는 비록 달랐으나 그 지역의 말에 따라 따로 문자를 만든 적이 없사옵니다. 오직 몽고(蒙古), 서하(西夏), 여진(女眞), 일본(日本)과 서번(西蕃) 같은 나라들이 각기 그 나라의 글자가 있사오나 이는 모두 오랑캐들의 일이므로 따로 더 말할 것이 없사옵니다. 옛말에 ‘중화의 영향으로 오랑캐를 변화시킨다.’는 말은 있어도, 중국이 오랑캐로 인해 변한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역대로 중국에서도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은나라 기자(箕子)의 남긴 풍속이 있다.’고 하며 문물과 예악을 중화에 견주어 말하였는데, 이제 따로 언문을 만드는 것은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이적과 같아지려는 것으로서, 이른바 신기롭고 향기로운 영약인 소합향(蘇合香)을 버리고 쇠똥으로 만든 말똥구리의 당랑환(螳螂丸)을 취함이오니 어찌 문명의 큰 결함이 아니오리까. -중략(中略)-
신라 설총(薛聰)이 만든 이두(吏讀)는 비록 촌스러운 말이기는 하나 모두 한자를 빌어서 어조(語助)사에 사용하였기 때문에 한자는 원래대로 두고 서로 분리시킨 것이 아니므로, 하급 관리나 관청에 딸린 하인들도 이두를 익히려면 먼저 한자를 익힌 연후라야 이두를 쓸 수 있어 이로 인하여 문자를 알게 되는 자가 자못 많사오니 학문을 흥기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물며 이두는 시행한 지 수천 년이나 되어 관청의 장부나 문서로 하는 계약서 등에 아무런 방해됨이 없사온데, 어찌 예로부터 시행하던 폐단 없는 글을 버리고 따로 촌스럽고 상스러운 무익한 글자를 창조하려 하시옵니까? 만약 언문을 시행하오면 관리가 되려는 자들은 오로지 언문만을 배우려 하고 유학을 학문하는 한자는 돌보지 않기 때문에 관리들은 둘로 나누어질 것이옵니다. 언문만을 배워 출세하려 한다면 후배들이 이러한 것을 보고 생각하기를, 27자의 언문만으로도 족히 입신(立身)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할 춰이니 그들이 무엇 때문에 노심초사하여 성리(性理)학을 궁리하려 하겠습니까?

〈세종의 비답(批答)〉
그대들이 ‘음(音)을 사용하고 글자를 합한 것이 모두 옛 글에 위배된다.’ 하였는데, 설총의 이두 역시 음이 다른 것이 아니냐? 또 이두를 제작한 본뜻이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 함이 아니하겠느냐? 만일 그것이 백성을 편리하게 하는 것이라면 지금의 언문 또한 백성들을 편리하게 하려는 것이다. 설총은 옳다고 하면서 그대들이 모시는 임금의 하는 일은 그르다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해설)
조선은 명나라를 존중하며 송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건국을 하였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이민족 국가에 대하여 중국과 같은 글자를 사용하는 동문 정책을 펴오고 있었다. 이것은 중국의 문화와 제도를 본받고 중국을 따라하도록 권하는 것이었다. 마치 일제가 강제로 우리에게 일본문자를 쓰고 창씨개명을 강요하였듯이, 문서로서 명령하고 다스리기에 매우 편하다는 논리였다. 조선은 이소사대로서 중국을 섬겨오던 터라 이것을 어기고 언문을 창제하는 것은 독립을 주장하고 자주적인 국가를 주장하는 것으로 중국과의 외교관계에 마찰을 초래할 수 있는 큰 일이었다. 이에 최만리 등 신하들은 그것을 우려하여 임금에게 상소를 올린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한글은 위대한 조선의 문자라고 칭하지 않았고, 관공서나 외교문서에서도 조선이 망할 때까지 끝내 사용되지 않았다. 세종의 언문 문자정책은 그래서 순수한 일반 백성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하여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뜻의 훈민정음(訓民正音)으로 하였다. 그리고 훈민정음을 공포하는 서문에 그 뜻을 분명히 밝혔다. 위대한 우리의 한글이 창제에 비하여 그 서문이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바로 당시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최만리가 상소에서 제기한 문제는 조선의 어문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었으며, 세종의 입장에서도 언문 창제는 시급한 일이었다. 그러나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의식하여 나라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신하의 정성스러운 뜻이 담겨 있고,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 성리학의 정치 이념을 구현하려는 충직한 뜻도 담겨 있었다. 최만리가 이소사대를 취하고 한자를 고수한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었으니 오늘날의 입장에서 흑백논리로만 평가하여 최만리 등을 맹목적 사대주의자로 비판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 본문 중에서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조식(曺植)
전하의 나랏일이 이미 그릇되었고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으며 하늘의 뜻은 이미 떠나버렸고 민심도 이반되었습니다. 비유하자면, 백 년 동안 벌레가 그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이미 말라버린 큰 나무가 있는데,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어느 때에 닥쳐올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 지경에 이른 지가 오래입니다.
자전(慈殿)께서는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한 외로운 아드님이실 뿐이니, 천 가지의 천재(天災)와 억만 갈래의 민심을 어떻게 감당해내며 무엇으로 수습하시겠습니까?
이런 때를 당해서는 비록 재주가 주공(周公), 소공(召公)을 겸하고, 지위가 정승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또한 어떻게 손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한 보잘것없는 몸으로 초개와 같은 재주를 가진 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위로는 만에 하나도 위태로움을 붙들 수 없고, 아래로는 털끝만큼도 백성을 보호할 수 없으니, 전하의 신하 노릇하기가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조그만 헛된 이름을 팔아서 전하의 관작을 얻어 그 녹을 먹으면서도 그 녹에 맞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또한 신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예로부터 권신이 나라를 마음대로 했던 일이 있기도 하였고, 외척이 나라를 마음대로 했던 일이 있기도 하였으며, 부녀자와 환관이 나라를 마음대로 했던 일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서리(胥吏)가 나랏일을 마음대로 했던 일이 있었다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정권이 대부에게 있어도 옳지 못한데 하물며 서리에게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당당한 제후의 국가로서 조종(祖宗)의 2백 년의 업적에 힘입고 많은 공경대부(公卿大夫)들이 앞뒤에서 서로 인솔하여 천한 서리에게 정권을 돌린단 말입니까?

(해설)
이 상소는 조식을 조선 선비사회에 일약 스타로 만들어 놓은 상소이다.
“자전(慈殿)께서는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한 외로운 아드님이실 뿐이니, 천 가지 백 가지의 천재(天災)와 억만 갈래의 민심(民心)을 어떻게 감당해내며 무엇으로 수습하시겠습니까?”라는 과격한 구절 때문이었다.
당시 실권을 휘두르고 있던 문정왕후에 대한 비판은 조정에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문정왕후는 인종이 재위 8개월 만에 죽고 명종이 12살의 나이로 즉위하자 모후로서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때 남동생 윤원형(尹元衡)이 권력을 쥐게 되자, 대윤(大尹)이라고 하는 윤임(尹任) 일파를 몰아내는 을사사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윤원형과 문정왕후의 사주를 받고 있는 조정의 권력가들도 조식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가 벼슬을 던져버리고 은거의 뜻을 내세우며 올리는 상소였고, 선비의 상소를 가지고 문제 삼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퇴계 이황은 “대개 상소문은 원래 곧은 말을 피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모름지기 자세하고 부드러워야 하며 뜻은 곧으나 말은 순해야 하고, 너무 과격하여 공손하지 못한 병통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아래로는 신하의 예를 잃지 않을 것이요, 위로는 임금의 뜻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남명의 소장은 요새 세상에서 진실로 얻기 어려운 것이지만, 말은 정도를 지나 일부러 남의 잘못을 꼬집어 비방하는 것 같았으니 임금이 보시고 화를 내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 본문 중에서

〈관기 초월의 상소〉 - 평안북도 용천(龍川) 기생 초월(楚月)
가선대부승지 겸 예조참판, 사간원대사간 심희순(沈熙淳)의 첩이요, 평안도 청북 용천기생 초월이 엎드려 올리나이다. 신의 일생 기구하고 팔자가 궁박하여 신의 어머니 뱃속에 밴지 칠 삭 만에 아버지가 죽고, 낳은 지 한 해 만에 또 어머니마저 잃어 기저귀 찬 적자(赤子)로 젖맛도 모르고 형제도 없이 고고히 단신 무의무탁한 처지가 되어 곧 외사촌 댁에 수양녀가 된지 어언 십여 년이 되었나이다. 그 무정세월 속에서도 차츰 몸이 닦여져 온 터에 천만 꿈밖의 일로 집 어른인 심희순이 병오년 봄에 서장관(書狀官)을 봉명(奉命)받사와 중원 땅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신을 첩으로 삼았던 것이옵니다.
그런데 전하께옵서 일개 창녀의 몸에 성애를 과람이 내리사 숙부인(淑夫人)이란 직첩이 새긴 홍패(紅牌)마저 내려주셨으니, 이를 받들던 날 모골이 송연하고 먹고 자는 일이 안정이 안 되어 마치 살얼음을 밟는 듯한 느낌이었사옵니다. -중략(中略)-
전하께옵서는 귀를 스치는 바람처럼 신의 말을 스쳐듣지 마시기를 바라옵니다.
먼저 신의 부군(夫君)이 지은 죄부터 아뢰겠나이다. 재상의 손자요 사족의 아들로 사람됨이 덜하고 가난한 선비를 업수이여길뿐아니라 옛글을 배우지 않아 콩과 보리, 어(魚)와 로(魯) 자를 분별하지 못하옵니다. 지각이 없고 소견이 어두워 의사가 통하지 않으니 밥그릇이 높으면 생일인줄 알고 동녘에 해가 뜨면 날이 바뀐 줄 알뿐입니다. 이 같은 위인이 마음 둔 데는 높아 스무 살도 못 되어 과거에 급제하고 채 백날이 못 차서 대간 옥당(玉堂)에 올라 성은이 망극함에도 다만 국록만 탐내고 부모의 길러준 은혜는 돌보지 않으면서도 축첩만 일삼아 집안에 음률(音律)이 그치지 않고 건달 가객(歌客)과 벗 삼아 성찬으로 밤낮을 가릴 줄 모르옵니다. 재상 심상규의 손자로 벼슬이 하늘처럼 높으니 아무도 감히 당해낼 수야 없지만 나라가 위태로운데 세간의 질고도 도무지 모르고, 크고 작고 무겁고 가벼운 일과 옳고 그르고 길고 짧고 먼저 해야 할 일 뒤에 해야 할 일에 전연 몰지각하옵니다. 국록을 축내는 큰 도적이 비단 이 한 사람 뿐이오리까? 지아비의 죄는 천 번 죽어도 오히려 가볍고,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으며, 천만 번 칼로 찌르고, 만 번을 귀양 보내도 오히려 못 다할 듯 하온데 이 어찌하오리까?-중략(中略)-
어사출도에 대해서 말씀드리옵니다.
어사란 해진 옷을 입고 찌그러진 갓을 쓰고 종적을 감추고 곳곳을 몰래 다녀 탐관오리가 백성의 피와 기름을 빠는 것과 간사한 향임(鄕任)과 간악한 아전이 국고를 도둑질하는 것과 젊은이가 노인을 업수이여기는 것과 불효하고 우애 없는 것과 그른 일로 송사를 일으키는 것과 터무니없는 이득을 노린 장사치와 노름꾼, 불량배를 낱낱이 살펴서 출도 후엔 죄줄 것은 죄주고 벌줄 것은 벌줘서 큰 죄인은 먼저 베고 뒤에 보고를 올리는 선참후계(先斬後啓)가 당연한 법이었사옵니다. 그러나 요즈음 어사는 역마를 타고 포졸을 거느리고 마패를 노출시키고 본색을 드러내 뭇사람이 알게 하옵니다. 강산누각과 기암절승지, 이름난 절간을 찾아 활개를 펴고 놀이를 일삼으니 가는 길마다 그 고을에서 알아차리고 극진히 대접하니 이러한 어사는 보내지 않는 것보다 못하고 백성들에게는 도움은커녕 해만 끼치옵나이다.
고을의 일만 번거롭게 만들고 볼기나 때려 본관으로 데려간다고 으름장을 놓아 재물을 빼앗으며, 정작 억울한 일이 있어도 송곳 꽂을 땅도 없이 가난한 사람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큰 허물이 있어도 일백금만 가지면 죽을 사람도 곧 살려낼 길이 어사로 통한다는 것이 상식이옵나이다. 부자는 면제되고 가난한 자만 재앙을 입게 되니 이런 원통한 일이 있사오리까?

(해설)
초월의 상소문은 2만 1천여자의 방대한 것으로 천한 몸에 내린 숙부인의 직첩이 과분하다 쿇여 반려하는 상소문에 곁들여 당시의 시폐를 뼈저리게 서술한 것이다. 신변에서 직접 겪은 일들이기에 사실감이 있고, 나이어린 여자의 서술이라 솔직하며, 천한 여자이기에 반사회적이며, 반상에 때 묻지 않았기에 애국적이며, 나이나 신분에 비해 신랄함이 비길 데 없이 매섭다.
이 상소문은 조선 상소문의 이채로서 그 내용의 구성이나 당대의 시폐를 묘사한 서사와 진솔하고 과감한 표현은 한 시대를 울린 초선 말기 최고의 문제작이다. 자기의 남편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출발하여 임금에 이르기까지 조정의 모든 관료들의 부패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당대 최고의 사회고발 상소이다. --- 본문 중에서

〈한일합방을 건의하는 상소〉-이용구(李容九)
대체로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때는 너무 멀어서 말할 것이 못되지만 두 나라의 역사를 상고해보면 그 종족을 둘로 가를 수 없게 된 지가 오랩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백마강에서 당나라 군사와 싸워서 패배하게 되자 백제도 마침내 망하게 되어 한국과 일본은 마침내 각각 자기 영토를 지켜왔으나 사신들은 서로 왕래하였고 농업과 상업을 서로 교류하였습니다.
고려가 원나라 군사를 이끌고 일본을 침략하고 그 변경 백성들을 살육하였을 때에 변경 백성들이 화가 나서 복수한다고 하면서 사사로이 전선(戰船)을 정비하여 중국 연해를 침략하였고 우리나라 또한 해마다 그 여독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왜구가 있기 시작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 실지로 왜적을 배척하는 풍조가 일어난 것은 임진전쟁(壬辰戰爭) 이후부터입니다.
근래에 와서 일본의 천황폐하는 하늘이 낳은 사람으로서 나라를 창시하는 운수를 받아 안고 만대를 한 계통으로 내려오는 조상의 덕을 빛내고 2,500년을 계승해오는 공덕으로 건국의 큰 사업을 물려받아서 그 믿음과 의리는 태산(泰山)과도 같고 북두성(北斗星)과도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청나라 에 망하지 않은 것이 어찌 천황의 덕이 아니며, 우리나라가 러시아에 먹히지 않은 것이 또한 어찌 천황의 인덕으로 인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왜인을 배척하는 기풍이 없어지지 않고 있어서 매번 은덕을 원망으로 갚으면서 일본을 배척하는 것만 일삼고 있으니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어찌 짐승 같은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지금 합방해야 한다는 것으로 우리의 여론이 기울어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백성들의 양심이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라고 점차 깨닫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해설)
우리가 알고 있는 친일파들에게도 선진적인 각성은 있었고, 그들은 한결같이 국제정세에 밝은 자들이 많았다. 일본의 강제 침략이 없었더라도 군함 한 척 없는 나라로서 강대국의 식민지를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이들의 상소는 한결같이 강력한 전함을 앞세운 뛰어난 과학기술과 선진적인 문명을 보면서 도저히 우리 독자적인 힘으로는 저 강대국들의 힘에 대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와는 반대로 강대국 맞서서 개화를 반대하고 쇄국을 고수하며 상투를 틀고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어도 내 머리는 자를 수 없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다.
이 상소문은 당시의 친일파들과 잘못된 지식인들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한일합방을 분개하던 선비들의 글과 비교해서 어떠한가? 이 암울한 시대에 절망한 선비들은 나라가 망하자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을 한 선비들이 속출하였지만, 이용구의 상소문은 친일 내각에 힘을 실어 결국은 한일합방을 이루게 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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