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품에서 빠져나와 애써 환하게 웃으며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하는 도연을 보며 준성은 차고 있던 시계를 풀러 건넸다.
“왜?”
대 놓고 커플링은 하지 못하니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그녀가 선물한 커플 시계였다. 그녀는 분홍색 시계 줄이었고 그는 남색 시계 줄이었다, 차고 난 후로 한 번도 푼 적이 없는 시계였는데, 그것을 풀어서 건네니 기분이 이상했다.
“내 시간 너와 함께 흐를 거다.”
남색 시계를 그녀의 손목에 채워주고는, 도연의 손에 있던 시계를 끌러 그의 손목에 찼다. 멋들어지게, 남성스러운 분위기 가득 풍기게 차려입은 남자의 손에 분홍색 줄의 시계가 걸려있으니 언벨런스 했지만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네 시간은 나와 함께 흐를 거고”
“준성 씨!”
“한 달 뒤에 보자고요 사랑하는 도연 양?”
“알았어요, 조심히 다녀와요.”
준성이 다시금 아쉬움 가득 담긴, 하지만 언제 해도 감미로운 키스를 다시 한 번 하려고 할 때, 안의 상황을 뻔히 다 안다는 듯 유신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아쉽게도 긴 키스는 하지 못하고 살짝 입을 맞추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울
철환이 딸의 손을 한 번 더 힘주어 잡고는 그의 손에 건네주었다. 철환의 그 손길에 그녀의 눈에서 더 많은 눈물이 흘러 내렸다.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는 다는 말을 이때 처음 경험했다. 오로지 준성의 손에만 의지하여 단상 앞에 선 그녀다. 둘이 맞절을 하고 서자 주례가 시작 되었다.
“여러분 만파식적이란 시를 아십니까? 제가 그 시를 한 번 읽어 드리죠.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간격을 지키면서 외롭지 않게, 외롭지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두 개의 대나무가 묶이어 있다 서로간의 기댐이 없기에 이음과 이음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생기지, 그 빈자리에서만 불멸의 금빛 음악이 태어난다 그 음악이 없다면 결혼이란 악천후, 영원한 원생동물들처럼 서로의 돌기를 뻗쳐 자기의 근심으로 서로 목을 조르는 것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우리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놓이고 풍금의 내부처럼 그 사이로는 바람이 흐르고 별들이 나부껴, 그대여, 저 신비로운 대나무피리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가?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죽순처럼 광명한 아이는 자라고 악보를 모르는 오선지 위로는 자비처럼 서러운 음악이 흘러라. 이 작품은 ‘삼국유사’의 만파식적 설화를 참조하여 부부 사이의 참된 삶의 태도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대나무에 비유하여,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아내와 남편 간에 적당한 간격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죠. 화자가 강조하고 있는 ‘투명한 빈자리, 간격’이란 상대방(혹을 배우자)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식하면서 존경과 배려의 마음가짐으로 더불어 사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나는 도연이와 준성 군이 이런 부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 언제 한번은 도연이 준성 군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온 적이 있습니다. 둘 모두 세상에 서로가 곁에 있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더군요. 그렇게 웃는 일들만 가득한 결혼생활이 되게끔 서로에게 노력하시 바랍니다. 주례사가 길었죠? 둘의 행복을 빌며, 이만 마칩니다. 행복하세요.”
그 다음엔 동료들이 축가를 불러주었다. 도연과 평소 친한 한승기, 그리고 언제 또 둘이 준비를 했는지 준희와 재헌이「우리 사랑 이대로」를 함께 불렀다. 가끔 서로 눈을 맞추며 웃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축가를 들으며 준성이 도연에게 다정다감한 말을 속삭이며 눈물을 닦아주자 도연은 점차 진정되어 갔다.
“자, 그럼 오늘 밤 이 부부가 뜨거운 밤을 보낼 수 있는지 확인해 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사회자인 한호의 말에 모두가 열광했고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 울다 웃으면 어디 털 난다는데. 그거야 뭐 신랑만이 확인 할 수 있는 일이니. 오늘밤 확인해 보고 그 사실이 진짠지 보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신랑, 신부를 안아주세요.”
쓸 데 없는 짓 하지 말란 눈빛을 보냈지만 그에 굴할 한호가 아니었다. 도연이 한호의 결혼식에서 어떻게 했던가. 잘 못할 것 같다며 거절하는 도연에게 여자 친구가 사회보지 말란 법 있냐면서 그녀에게 사회를 보게 했다가 크게 당하고 말았다. 자꾸만 요구하는 부끄러운 주문에 신부는 결국 곤란의 울음을 터트렸던 것이다. 그때 도연의 짓궂음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도 묵묵히 그녀를 안아 들었다. 도연이 별로 무겁지 않아 다행이랄까?
“자, 그럼 하나에 앉고 둘에 일어서겠습니다. 구호는… 어떤 걸로 할까요? 좋은 말 추천 받습니다.”
여기저기서 별의별 말이 다 들려왔지만, 한호가 선택한 말은.
“하나에 ‘오늘 밤 홍콩 보내 줄게.’ 둘에 ‘나만 믿어.’ 우리 부끄럼쟁이 도연 양이 ‘아니, 내가 보내줄게’ 얘기할 때까지 계속 신랑 앉았다 일어났다 하겠습니다. 아무리 신부 가벼워도 계속하면 오늘 좀 무리일터. 신부, 잘 선택하시죠. 하나, 둘….”
도연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한호 저놈 분명히 복수하는 거다. 아, 그때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왜 그랬나 후회된다. 울리지는 말 것을.
“내, 내가 보내줄게.”
부끄러움에 고개를 그의 품에 깊숙이 묻으며 조그만 목소리로 얘기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