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지상에서 겪는 고통에 대한 유일한 보답으로서 ‘행복’이나 ‘만족’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마음 상태를 부여받는다. 아슈케나시가 낯선 여인과 함께 석 달 남짓 살았을 무렵, 그 ‘행복’이나 ‘만족’이 실제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기 시작하였다. 아슈케나시가 체험한 것은 분명 ‘행복’이었지만, 그것은 이상하게도 결코 쾌적하다고 일컬을 수 없는 불편하고 복잡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행복의 열기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평일에도 아침 일찍부터 진종일 연미복과 실크해트 차림으로 돌아다니듯, 왠지 과장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 p.131
인간은 선함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야, 안간힘을 쓰며 생각을 더듬었다. 언어라는 태고의 소재 속에 많은 낱말들이 이리저리 뒤엉키고 들러붙어 있어서 낱말 하나하나를 어렵게 떼어내야 했다. 낱말들은 모두 본래의 의미, 생명력을 기생충처럼 빨아먹는 관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낱말들을 서로 분리시켜서 하나하나 깨끗하게 청소하고 소독해야 했다.
인간은 선함이 아니라 죄를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아슈케나시는 천천히 생각을 파고들었다. 수첩을 꺼내어, 속기하듯 빠르게 대충대충 쓰는 평소의 필치가 아니라 학생들처럼 둥글둥글한 필치로 정성껏 이 말을 기록했다. --- p.197
“너는 무엇을 수호하느냐?”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물었다.
“질서……? ‘질서’가 오로지 하나의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질서, 관계, 그것은 하나의 기슭, 아마 낮의 측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낮의 측면에서 생겨나 낮의 일부를 이루는 다른 측면, 밤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이 밤의 측면 없이 생명은 존재하지 못하며, 낮이 만들어내고 짜 맞추는 모든 것은 이 밤의 측면 안에서 해체된다…….” --- p.209
“그렇습니다, 제가 오로지 이런 이유에서 모든 것을 했다고 인정합니다. 저는 최선의 것을 원했으며, 더없이 명확하게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글을 당신의 뜻에 맞게 삶의 언어로 옮겨보고 싶었지요……. 애석하게도 그것은 가능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말들이 부족합니다. 말들은 조야하고 미비하며, 원래의 것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합니다……. 깨어 있을 때나 꿈을 꿀 때나 항상 그들은 제 뒤를 바짝 쫓아왔습니다……. 마치 귓가를 맴도는 멜로디 같았지요,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것에 저항했으며, 그것을 밀쳐버리고 책을 꺼내들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심지어는 스포츠도 해보았고 급진 사회주의 정당에도 가입했습니다……. 참 우스꽝스러운 짓이었지만, 그때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게다가 저는 그것이 죄라고 믿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두려웠습니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이상했습니다.”
아슈케나시는 흡족하게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 일의 육체적인 면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육체적인 면은 결국 극복해야 하는 부수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선善, 헌신, 사랑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고 믿었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 pp.254~255
“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제가 아까 호텔에서 그랬듯이, 인간은 이따금 순간적으로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살면서 근본적인 원칙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원칙 대신 살과 근육으로 이루어진 것, 대부분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만을 얻습니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더 좋은 품질을 얻습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당신께서는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소한 일들, 자질구레한 일과 공식적인 일, 사람을 붙잡고서 놓아주지 않는 회의……. 제가 결코 평온을 누리지 못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평온은 언제나 겨우 잠깐 지속되었을 뿐입니다……. 한번은 자욱이 깔린 안개를 헤치고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길모퉁이에서 가스등이 타오르고 있었는데, 안개 속에서 불꽃을 크게 날리며 가물거렸습니다. 그때 저는 부족한 것 없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겨우 30분 계속되었을 뿐입니다……. --- pp.255~256
“…… 제가 손을 잡았을 때, 그 여인은 애석하게도 뿌리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을 붙잡았습니다. 다만 저는 한낱 여자 때문에 파멸할 가치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지요……. 그러나 그 여인은 너무 어설프게 행동했습니다……. 저는 당신하고 다른 약속이 있다고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아슈케나시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구었다.
“제발 말씀해주십시오.”
잠시 후, 상냥하게 격려쿇듯 조용히 물었다.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 p.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