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 입이 심심한가 보구나. 엄마가 뭐 좀 줄까?” 엄마가 종이성냥을 꺼내 조심스럽게 뚜껑을 젖히자 빨갛고 선명한 두 줄의 작은 성냥알이 모습을 드러낸다. 엄마가 늘 내게 주던 익숙한 것이었다. (……) 하나씩 하나씩, 나는 엄마를 위해 깔끔하게 한 갑을 다 먹어치웠다.
--- p. 44
엄마가 아빠와 싸움을 하고 우리를 자기 편에 세우고 싶어 하는 날이면, 우리는 어김없이 아빠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아직도 그게 어느 정도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아이였던 우리로서는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고 가족의 어두운 비밀과 그것에 따라오는 부끄러움을 삼켜야 했다.
--- p. 80
아빠는 나를 잔디 위에 내팽개치더니, 내 팔과 다리, 머리, 얼굴 위로 허리띠를 마구 휘두른다. 내 몸은 아빠가 제일 아끼는 허리띠로 낙인찍힌다. 딱딱한 가죽 모서리가 연한 살결 위로 선명한 루비 빛의 매 자국을 남긴다. 엄마는 현관문으로 빠져나가 차고로 숨어든다.
--- p.119
엄마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일에 필사적이었다. (……) 그러나 불길을 피한 몇 장의 사진들을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진실은 냉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엄마와 대니와 내가 화려한 장식이 가득 달린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앉아 있는 한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 그 속의 우리는 선물의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 그 모든 것들이 행복한 크리스마스의 증거라도 되는 듯 널려 있다. (……) 그러나 부어오른 내 눈은 그날 아침 벌어진 일을 숨김없이 말해준다. 그날, 엄마는 자살을 하겠다고 비명을 지르며 온 트레일러 안을 돌아다녔다.
--- p.122~123
가장 무겁게 걸려 있는 기억은 언제나 가장 쉽게 떠오르는 법이다. 그런 기억들은 누군가의 삶을 영원히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을 겹겹이 접힌 주름 속에 감추고 있다. 모두 털어버린 후에도, 그런 기억들은 영혼의 옷자락 속에 영원한 주름으로 남는다. (……) 내 방 문의 플라스틱 손잡이가 천천히 끼이익 열린다. 엄마가 문간에 유령처럼 서 있다. 복도의 불빛이 엄마 뒤에서 빛나고, 엄마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있다. 엄마는 발꿈치를 들고 내 침대로 오더니 몸을 돌려 앉는다. 그때 나는 엄마의 입 속에서 권총을 발견한다. 엄마의 입술은 냉장고 위에서 내린 45구경 권총의 총구를 물고 있다. (……) “너희는 내가 죽기를 바라지 않니?”
--- p.133~136
내가 심하게 울면 울수록,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리고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단 일초도 살 수 없는 나의 아름다운 엄마는 울음을 거둔다. 그리고 얼마 후, 울음을 뚝 그친다. 엄마는 내 이불을 정돈하더니, 입고 있는 면 셔츠에 코를 푼다. (……) “얘, 씨씨, 들어줘서 고맙구나.”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 장전된 권총과 함께 매트리스 한 귀퉁이에 나를 남겨둔 채, 엄마 자신의 얼굴처럼 엄마의 인생으로 상처 입은 내 얼굴을 남겨둔 채.
--- p.138~139
“……머리가 아파요.” 엄마는 이런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저런, 여기 편두통약 하나 줄게.” 엄마는 가방 바닥을 마구 헤집으며 더듬거리더니, 작은 약병 하나를 꺼낸다. “여기 있다, 얘야. 아무래도 두 알을 먹는 게 좋겠다.” 엄마는 밝게 미소 짓는다. 엄마는 지금 여기서, 내가 아픈 바로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옳은 약으로 나를 치료하고 있는 것에 짜릿한 기쁨을 느낀다.
--- p.144~145
사람이 부작용 없이 얼마나 오래 굶을 수 있을까? 만약 모든 주위 사람들이 당신이 아프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하는 모든 검사가 정말로 당신을 아프게 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열세 살이라면, 그런데도 당신은 스스로가 아프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아마 아프지 않은 사람도 아프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엄마의 말이 맞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 나는 늘 피곤하다. 이렇게 늘 힘이 드는 걸 보면, 뭔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 p.175
나는 인생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나는 아빠의 관자놀이에 총을 들이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안다. 다른 사람의 손에 죽을 것이라는 예감이 어떤 것인지도 안다. 내 몸이 묶이고 잘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알고, 탈출이 어떤 것인지도 안다. 사람들이 씌워놓은 덫에 갖히는 것과 그곳을 빠져나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안다. (……) 나는 드넓은 대양의 한편에 서서, 인생이 주는 모든 진실과 아름다움과 사랑을 넓게 뻗은 두 팔로 받고 있다. 마침내 나는 순수하고 하얀 평화를 되찾았다.
--- p. 370~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