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부적절한 만남’으로까지 간주되던 광고와 예술의 만남이 최근 더욱 빈번해지고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 이른바 예술 마케팅 혹은 미학적 마케팅 등의 이름으로. 그 만남도 단순히 광고 속에 순수예술 작품을 활용하는 수준을 벗어나고 있다. 제품 디자인과 포장, 백화점 등 유통기관의 예술 행사 개최, 작품 발표 형식의 이벤트와 전시 등 마케팅의 각 단계에서 예술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굳이 예술 작품과 결합하지 않더라도, 광고 그 자체는 거의 모든 예술 장르가 융합된 일종의 종합예술이다. 예술계에서도 예술 작품에 대한 마케팅 전략이 도입되고 있고, 예술가의 브랜드화가 노골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이처럼 광고가 본질적으로 예술과 친연성이 있고, 순수예술과의 다양한 만남이 시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고와 예술의 관계를 진지하게 논구한 책은 이제까지 별로 소개되지 않았다. 배리 호프먼(Barry Hoffman)의 The Fine Art of Advertising: Irreverent, Irrepressible, Irresistibly Ironic (New York: Stewart, Tabori & Chang, 2002)을 옮긴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광고와 예술의 만남을 본격적으로 다룬,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다.
이 책은 서장을 포함해 모두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문제의식을 간략히 서술한 서장에 이어, 1장에서는 순수예술을 최초로 활용한 페어스 비누 광고 사례를 소개한다. 1장이 광고가 순수예술을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는 전략을 소개했다면, 2장은 순수예술 작품을 변형시켜 광고에 활용하는 아이러니 전략을 다룬다. 여기서 말하는 아이러니 전략은 요즘 우리나라에서 성행하는 패러디 기법과 매우 유사하다. 3장은 누드를 다룬 예술 작품이 광고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4장은 순수예술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모나리자가 왜 광고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지를 논의한다.
5장은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한 초현실주의 예술이 광고와 어떻게 만나는가를 살펴보고, 6장에서는 독일 바우하우스 출신의 망명 예술가들이 CCA(Container Corporation of America) 기업 광고에 대거 참여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기업 광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추적한다. 7장은 팝아트가 광고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논하고, 8장은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고 평가받는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 캠페인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9장은 팝아트 이후 키치적인 감수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최근 미국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광고를 작품의 중심 주제로 부각시키는가를 다룬다.
이러한 내용은 예술 마케팅에 관심 있는 광고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에게 전략적 안목을 키워줄 뿐 아니라, 광고나 예술에 관심 있는 대학생이나 일반인에게도 재미와 교양을 안겨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문화비평의 위계질서 속에서 광고와 예술 사이에 그어진 금은 매우 선명했다. 예술은 고급스럽고, 광고는 저급하다. 예술은 엘리트적이고 정치하게 다듬어졌다. 광고는 조야하고 대중적이다. 예술은 독창적이고, 광고는 파생적이다. 예술은 자신의 개인적 비전을 표현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창조된 산물이다. 광고는 제품을 판매하여 돈을 벌려는 사람들에 의해 창조된다. 예술은 그것이 표현하는 통찰력의 진실에 의해 정의된다. 광고는 뻔한 진실의 통찰력을 표현한다. 예술은 불편할 정도로 정직하다. 광고는 정직해야 할 경우에만 정직하며, 그나마도 종종 정직하지 못할 때가 있다. 예술은 영원하다. 광고는 덧없고 찰나적이다.
소비문화의 도래로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 책은 순수예술과 광고가 만나는 문화적 공간에 대해 새롭게 조명하려 한다.
이 책은 포괄적이면서 열린 질문 두 가지를 던진다. 광고주는 그들의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순수예술’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광고는‘순수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서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