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떨어진 악마도 저희끼리 굳게 단결하거늘, 생물 가운데 이성을 지닌 인간만이 하늘의 은총 입을 희망 있는데도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는구나. 하느님은 평화를 선포하셨는데, 인간은 서로 미움과 적대와 투쟁만을 일삼고, 서로를 멸망시키려고 잔인한 전쟁 일으켜 대지를 황폐케 하는구나. 서로를 적으로 돌리지 않더라도 지옥의 적 얼마든지 있어 인간의 파멸을 밤낮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이(알면 우리도 단결할 터이거늘)!
--- p.73
무릇 인간도 천사도 가리지 못하는 것이 위선이라, 그것은 하느님 아닌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하느님의 묵인 아래 하늘과 땅을 두루 돌아다니는 유일한 악이다. 가끔 ‘지혜’가 깨어 있어도 ‘의혹’이 지혜의 문간에서 잠들고, 자기 임무를 ‘단순’에게 맡기는데, 이때 ‘선’은 악이 뚜렷이 보이지 않으면 악이라 생각지 않는다.
--- p.134
“그가 지금 얼마나 행복하며, 또한 그의 행복을 어떻게 할지는 그의 힘에 달려 있다고, 즉 그의 자유의지, 자유롭지만 변하기 쉬운 그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가르치라. 자신에 차서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경고하고, 지금 그에게 닥친 위험과 그 위해를 가하려는 자가 누구인지, 얼마 전 하늘에서 떨어져, 한때 자기가 누리던 복된 처지에 있는 자를 떨어뜨리고자 음모를 꾸미고 있는 적이 누구인지를 그에게 알려주어라. 폭력으로? 아니다. 폭력이라면 막을 수 있으리라. 위해는 바로 속임수와 거짓말을 통해 올 것이니, 이를 그에게 알려라. 미리 충고하고 경고해두지 않으면, 스스로 죄를 범하고도 뜻밖의 일이라고 변명할 터이니.”
--- p.201~202
“정의롭고 올바른 판단력에 근거한 자기평가보다 더 유익한 것은 드물다. (…) 그녀와 사귈 때는 그대가 보기에 고상하고 매력적이며, 인간답고 이성적인 것을 늘 사랑하라. 사랑하는 것은 좋으나 정욕은 경계하라. 참다운 사랑이 거기엔 없느니라. 사랑은 생각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넓게 하고, 이성에 바탕을 두어 지혜로우니 그대가 육체적인 쾌락에 빠지지 않고 하늘의 사랑으로 오를 수 있는 사다리가 되느니라. 그대의 배우자가 짐승들 속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 p.341~342
아담과 하와도 이처럼 나뭇잎으로 부끄러운 부분을 나름대로 가리긴 했지만 마음은 불안하고 편치 않아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눈에서 비 오듯 눈물이 쏟아질 뿐 아니라 마음속에서 분노, 증오, 불신, 의혹, 불화 같은 강렬한 감정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지금까지 조용하고 평화롭던 그들의 마음을 세차게 뒤흔들어 어지럽혔다. 이성이 지배력을 잃자 의지가 그 명령을 듣지 않고, 둘 다 육욕에 굴복하니, 본디 아래에 있던 육욕이 지위를 빼앗아 지존한 이성 위에 군림하고 강력한 주권을 주장하게 되었다.
--- p.397~398
“일반적으로 자연법상, 모든 능동자는 언제나 대상의 수용능력에 따라 행동하지 그 한도를 넘어서까지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은 내 상상처럼 곧바로 감각을 빼앗는 일격이 아니라 오늘 이후(이미 내 몸 안과 밖에서 그 움직임이 느껴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비참이다. 이것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아, 그 두려움이 또다시 방비 없는 내 머리에 요란한 소리 내며 덮쳐 오리라. 이제 죽음과 나는 서로 영원히 끌어안은 채 한 몸이 되었다. 그리고 나 혼자 저주받은 것이 아니니, 나로 인해 모든 자손이 저주받으리라.”
--- p.440~441
“이 시대는 힘만을 숭상하고, 힘만을 용기와 영웅적인 자질이라 부르느니라. 전쟁에 승리하고 국민을 복종시키고 무수한 인명을 살육하고 전리품을 가져가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되고, 이러한 영광 때문에 파괴자, 인류의 역병으로 불려 마땅한 자가, 위대한 정복자, 인류의 보호자, 신, 신의 아들로 불리도다. 이러한 것이 지상의 명예와 영광이 되면, 진정 명예로운 것이 침묵 속에 묻히고 마니라.”
--- p.487
“이 땅에서 폭력과 전쟁이 끝날 때 이로써 만사형통하고 인류가 평화 속에서 행복한 나날 오래도록 누리기를 바랐으나 당찮은 소망이었도다. 전쟁이 파괴를 부르듯 평화는 부패를 부르도다.”
--- p.491
“하느님은 사람 위에 사람을 주인으로 두시지 않으셨다. 인간이 인간에게 예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도록 주인이라는 이름은 그분만이 지니고 계시다. 그런데 이 찬탈자는 수탈의 칼끝을 인간에게 겨누었을 뿐만 아니라 그 탑으로 하느님을 포위하며 도전하였다.”
--- p.502
“모든 별의 이름과 모든 천사와 모든 심연의 비밀과 모든 자연현상, 곧 하늘과 공중과 땅과 바다에 이루신 하느님의 위업들을 알더라도, 또한 이 세상의 모든 부와 모든 지배권과 한 나라를 다 얻더라도, 오직 그대의 지식에 걸맞은 행위를 더하고, 행위에 믿음을, 믿음에 덕을, 덕에 인내와 절제를, 절제에 사랑을, 다른 모든 것의 영혼인 자비라는 이름의 사랑을 더하라. 그러면 그대 이 낙원을 떠나도 싫지 않을 것이니, 그대 마음속에 훨씬 행복한 낙원을 갖게 되리라.”
--- p.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