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이 고아처럼 혼자 있는 순간에 그 모든 기적이 일어난다. 기도가, 독서가, 꿈이, 여행이, 용서가, 치유가 우릴 발견한다. 그리고 차례차례 손을 잡고 먼 길을 걸어, 우릴 낯설지만 안락한 곳에 데려다 놓는다.
먼 별과 교신하는 것처럼 이것은 신비롭고 은밀한 대화다. 나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일들이 나만 알게 일어나는 사건. 지난 17년 간 나를 기민한 형사처럼 출동시켰던 그 사건들 속으로 당신을 끌어들이려는 것이 이 책의 음모다.
--- p.7
마음은 우리 안을 여행한다. 신경을 타고, 근육을 타고, 피에 섞여서, 혹은 뼈에 스며서.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고 즐거운 기분을 자주 느꼈던 사람의 몸은 느낌이 좋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고 뭔가를 해주고 싶다. 하지만 우리 몸은 슬픔에 더 민감해서, 기쁜 기억보다 서글펐던 마음들을 더 알뜰히 구석구석에 쌓아놓는다. 두피에도, 목에도, 어깨에도, 날개뼈 사이에도, 팔 안쪽의 오목한 부분에도, 꼬리뼈에도, 무릎에도, 발바닥에도. 우리를 한때 휩쓸고 지나갔던 불안과 슬픔들은 그런 곳들에 가만히 고여 있다가 때때로 흐느껴 운다. 그래서 당신도 나도 문득 이유 없이 슬픔을 느낀다. 별일 없던 날의 새벽 잠결에 문득 서러워지고, 무심히 밥을 먹다가도 뜬금없이 허무해서 한숨 쉬는 존재인 것이다.
--- p.18
“이 노을을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꼼꼼히 외워뒀다가 틈날 때마다 다시 외워야 해. 그래야 잊어버리지 않지. 무용수들이 스텝을 외우듯이, 배우가 대사를 외우듯이, 이 감동을 외우게.”
그 많던 감동의 순간들은 어디로 갔는가? 이 평화를, 이 즐거움을 잊지 않으리라 했던 다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삶에 대한 감사로 어깨를 들썩이던 순간들과 죽어서도 꺼지지 않을 것 같던 사랑의 불꽃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외워뒀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외워두고 틈날 때마다 다시 외웠어야 지금도 내 것으로 남아 있을 텐데. 그저 그때 느끼고 밑 빠진 독처럼 잊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시들한 마음자리로 돌아와버린 것이다. 그래서 ‘아, 내 삶은 너무 지리멸렬해.’라며 또 다른 감동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즐거움도 암기과목이라네. 외우지 않으면 즐길 수가 없어. 가슴 벅찬 순간이 오거든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그 순간 속에 머무르면서 그 느낌을 몸에 붙여야 해. 외워질 때까지 기쁨 속에서 나오지 말고 머물게.”
--- p.61
“그래요. 당신이 다섯 살 때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녀석’이라고 말한 사람은 당신의 아버지였어요. 하지만 그 후 30년 동안 그 말을 수천, 수만 번 되풀이해 들려준 사람은 당신 자신이지요. 타인은 그 어느 누구도 당신 스스로가 하는 것만큼 당신을 집요하게 괴롭히지 못해요. (중략)
그 혼잣말은, 비유하자면 마음의 벽지 같은 것이에요. 벽과 천정에 빈틈없이 도배되어 그 공간의 분위기와 느낌을 결정하는 게 벽지죠. 그런데 그 벽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늬가 보여요. 똑같은 패턴의 자잘한 무늬들이 끝없이 연결되어 있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특정 상황에 맞닥뜨리면 언제나 똑같은 말들을 하고, 그 말들을 들은 뒤엔 늘 하던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무늬가 그 사람의 느낌을 결정하죠.”
--- p.79
나는 그에게 평소 궁금했던 걸 또 한 가지 물어보기로 했다.
“보통 ‘한 일’보다는 ‘하지 않은 일’ 때문에 후회한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니까 어차피 후회할 거라면 한 번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정말 그런가요?”
그는 유쾌한 농담을 들은 것처럼 웃었다.
“물론 아니지요, 하하하…. 사람들, 정말 귀여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당장은 ‘저지른’ 일을 후회하고,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엔 ‘저지르지 못한’ 일을 후회한다. 하지만 여기엔 미묘한 시간과 마음의 역학이 작용한다.
--- p.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