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화장실을 단순한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장소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은 사람들이 화장실 밖에서 지켜야 하는 규범과 역할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는, 무대 뒤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카힐은 공중화장실이 “무대 위에 섰을 때 청중으로부터 쏟아지는 부담스러운 눈길에 의한 행동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작으나마 휴식을 얻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여직원이 상사에게 야단을 맞았을 때 울면서 뛰어가는 곳이 화장실이고, 재잘대며 마음껏 수다를 떠는 곳도 화장실이다. 남자들도 자신이 유지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때, 즉 창피함을 느꼈거나 욕을 퍼붓고 싶을 때 화장실로 피신하여 편안하게 담배를 피우며 마음을 달래곤 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후위영역은 대중 앞에서의 연기를 준비하는 발판의 기능을 한다. 화장실 또한 이러한 기능을 담당한다. 사람들은 자기표현의 ‘수선실’인 화장실에 가서 머리를 빗거나 옷을 추스르고, 이빨 사이에 무엇이 끼었나 점검하며 화장을 고치는 등 자신의 공적 이미지 개선을 위한 행동들을 수행한다. 특히 여성들이 짝을 지어 들어가서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누는 등 특별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화장실을 후위영역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이 계급별로 화장실을 따로 분리해서 만드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경영자와 종업원들, 교사와 학생들, 장교와 사병들은 각기 다른 화장실을 사용한다. 성별에 따른 화장실의 분리 역시 생리학적 기능뿐 아니라 자기표현의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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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로드햄 클린턴은 매우 어려운 자기표현상의 선택에 직면해 있었다. 대부분의 다른 대통령 후보나 그들의 아내들은 겪지 않았던 어려움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능력 있고 의지가 강하며 야심 있고 강건한 성격을 소유한 여성으로 살아왔다. 그녀는 성공한 변호사로서 100대 미국 변호사에 들 정도였다. 남성이었다면 경탄할 만한 일이었지만, 독립적이고 거침없이 말하며 성공을 거둔 여성에 대해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1992년 대통령 선거 캠페인 기간 중에 공화당은 힐러리를 “부엌보다 회의실에 들어가기를 좋아하는 여권주의자”라며 공격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처함과 동시에 남편의 정치적 열망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는 많은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도록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좀더 부드럽고 여성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머리 모양과 눈화장, 의상을 바꾸었다. 또한 자기 집 부엌에서 과자 굽는 모습을 공개하고, 외동딸인 첼시의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사진도 찍었다. 남편의 선거 캠페인에 나가서는 군중들에게 남편을 소개하는 대신 여느 후보자 부인들처럼 뒤에 앉아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는 역할을 했다. 힐러리가 취한 이런 행동들에는 자신뿐 아니라 남편의 이미지를 관리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선거 참모들은 주장이 강한 아내의 모습이 두드러지면 클린턴이 무기력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 아내가 남편에게 할 일을 말해 줄 것 같은 이미지는 남편을 나약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며 그의 능력과 권위를 깎아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힐러리의 자기표현에는 다시 변화가 생겼다. 그녀는 백악관의 서쪽 건물에 있는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고, 대통령은 그녀에게 의료보험개혁특별위원회를 맡겼다. 또한 그녀는 내각 임명에도 드러내놓고 개입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힐러리를 비판했지만, 왜 총명하고 능력 있는 여성이 남편의 당선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전통적인 여성상을 가장해야만 했는지 근본적인 이슈를 문제 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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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타인이 갖는 이미지에 신경 씀으로써 그 사회에 어울리는 규범과 한계 안에서 행동하게 된다. 거꾸로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부적절한 행동 때문에 결과적으로 비난을 받거나 배척당하는 등 부정적 반응을 얻기 쉽다.
어느 누구도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남의 생각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상상해 보자. 장례식장은 웃고 떠드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할 것이고, 사무실에서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철 안에서는 사람들이 너나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목욕은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미지 관리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면접시험이나 첫 번째 데이트는 순조롭지 못할 것이다. 설혹 처음에는 그런 태도가 용납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일이나 친구, 또는 부부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특히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면 자신을 상대방에게 적절히 드러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상대방에게 자신에 관한 정보를 적절히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미지 관리의 역효과도 있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칠지 너무 걱정하거나, 필요치 않은 상황에서조차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느라 애쓴다. 이미지 관리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일의 성과를 올리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으며, 불안감을 조성하거나 자신과 타인에게 좋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자기표현 또는 이미지 관리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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