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은 ‘위기’라는 단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현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의 식견에 빛을 던져주는 설명, 분석, 의견을 찾고자 지칠 줄 모르고 탐구한다. 세계는 정말 위기에 처한 것일까? 이보다 불확실한 것이 있을까? 2009년은 처참했다고 기억하는 것이 마땅한 해였다. 2010년과 2011년은 세계 정부를 만들기 위한 시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해가 되었다. 2012년부터 각 나라들은 제 갈 길을 갔다. 일부에게는 아주 좋은 일이었고, 또 다른 일부에게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제3세계 국가에는 절망적인 일이었다. 그런데도 세계가 진정 위기에 처한 것인지 확실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 p.12「머리말」중에서
1880년에서 1940년 사이의 기간에 우리의 삶에 수많은 중요한 기술적 혁신이 등장했다. 혁신의 긴 목록에는 전기, 전등, 강력한 기계, 자동차, 비행기, 가정용 전자기기, 전화, 대량 생산, 라디오, 텔레비전 등이 있다. 인터넷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삶은 1953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냉장고를 사용하며, 전등을 켠다. 정보 기술과 인터넷은 라이프스타일, 소비, 생산에 영향을 주기는 했으나, 자동차 산업이 그랬던 것처럼 대량생산 업계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 pp.43-44「1장 기술적 진보의 붕괴」중에서
시대를 바꾸는 변혁은 와해성 기술 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동시 등장을 기반으로 한다. 이 와해성 기술이 ‘기술 자체’와 ‘그 사용’, 즉 저자가 ‘전략적 활용’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 중요한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과학적 연구는 꾸준히 이어지며 발명의 속도 역시 꾸준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가 새로운 기술적 균형의 전조가 되는 일, 즉 새로운 경제 조직과 사회 조직의 토대가 되는 일은 특정한 시대에만 나타난다. 상징적인 시기를 꼽자면, 거기에는 와트의 증기기관이 발명된 1783년이 포함될 것이다. 지난 2세기 동안 와해가 인간 역사에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술적 진보로 이어진 사건들을 검토해보면, 기술적 진보의 성장, 그러니까 진보 자체가 이 특별한 와해의 시기에 등장했다는 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기술적 진보의 둔화도 회복으로 반전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도출된다.
--- pp.28-29「1장 기술적 진보의 붕괴」중에서
세계적인 규모로 고령 인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가 지금 막 마주하게 된 인간의 이 새로운 모험에 대해 다룬 글은 아직 없다. 단일 유형의 직업 훈련이 일생 동안 지속될 수 있을까? 응용 기술과 관련된 새로운 산업 부분, 다른 세대의 상대 소득, 그리고 그들 사이에 돈의 이동을 고려한다면, 노인들의 소비 습관은 어떻게 변화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은 우리 모든 사회가 직면한 문제이며 노령화의 끔찍한 저주에 빠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노령화는 세대 간 충돌의 발생과 그 이후의 확대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저주다.
--- p.66「2장 노령화의 저주」중에서
세대 간 충돌은 오늘날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통해 우리 사회의 대립과 불행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읽는 풍조가 시작된 것이다. 노동 시장에서 30~54세의 사람들과 나머지 사람들 간에 나타나는 균열에 대한 모든 접근법이 이 이론을 입증한다. 고전적인 시각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 의해서 사회 계층 혹은 사회 집단으로 분류되던 것이 성이나 연령으로 분류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사슬의 양 끝에 해당하는 25세 이하와 55세 이상의 활동 수준에 대한 철저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고려의 대상이 된 나라 모두에서 걱정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젊은 세대가 실업의 가장 큰 희생양이었다. 미국에서 15~24세의 실업률은 2000년의 9.3퍼센트에서 2013년 17.8퍼센트로 증가했으며 이는 세계적 재앙으로 퍼져 나갔다.
--- pp.88-89「2장 노령화의 저주」중에서
지난 30년 동안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이런 현상이 나타난 원인을 한 가지로 정확하게 설명할 길은 사실 없다.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사람과 가장 적은 돈을 버는 사람 사이의 격차가 아찔할 정도로 넓어지는 이유를 아무도 진지하게 설명할 수 없다. 세상은 그동안의 인류 역사에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터무니없을 정도의 불평등에 직면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소득을 올리는 ‘중산층’집단이 나타나는 것을 모두가 반겼던 시절이 있다. 그러나 어느새 일부 중산층에서 드물게 나타났던 소득과 유산의 격차가 끊임없이 확대되어서 몇몇 산업계의 거물들은 몇 세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엄청난 개인적 부를 이루었다. 날이 갈수록 유산을 통해 발생하는 부가 소득을 통해 발생하는 부보다 현저히 커지는 상황이다. 동시에 세계화에서 잊힌 희생자들, 개발도상국이나 아직 신생 개발도상국에 편입되지 못한 나라의 비숙련 노동자들은 생존에 극단적인 어려움을 경험하는 최저 생활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쯤 되면 인간의 역사에 자주 등장했던 반란의 움직임이 어딘가에서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다
--- pp.98-99「3장 불평등의 억누를 수 없는 폭발적 증가」중에서
이들은 1929년과 2007년의 위기에는 닮은 점이 있다는 데 주목했다. 사태가 불거지기 전조현상으로 소득의 불평등과 가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의 심각한 증가가 있었다. 여기에서 당연히 이러한 현상이 서로 연관되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두 경우에서처럼 부유한 사람들이 추가적인 수입의 많은 부분을 가난한 사람들과 중산층에게 빌려주고, 소득의 불평등이 몇 십 년 동안 늘어나면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늘어나면서 심각한 위기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이것은 연구 대상이 된 두 기간 동안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920년에서 1932년 사이 두 배가 되었고 1983년에서 2007년 사이에도 마찬가지였다.
--- pp.132「3장 불평등의 억누를 수 없는 폭발적 증가」중에서
위기는 1995년에서 2005년 사이 제조업이 선진국에서 소위 신흥 개발도상국으로 엄청나게 이전한 결과로 발생했다. 산업공동화라 불리는 전례 없던 이 현상은 낮은 투자 비용과 최대로 저렴한 가격에 끌린 서구 소비자들의 요구에 굴복한 결과이기도 했다. 중국인의 한 시간 노동 비용이 같은 수준에 해당하는 미국이나 유럽의 노동 비용보다 40배가 낮다는 보도가 이어지던 시기였다. 빨리 달려들어 이러한 기적을 활용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새롭게 생긴 실업자를 지원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결국 사회 복지 비용의 폭발적인 증가가 이어졌고, 무엇보다, 이 전례 없는 영향의 야만성 앞에서 세계 경제는 붕괴에 이르렀다.
--- pp.139-140「4장 산업공동화의 영향」중에서
20세기 후반 특유의 이러한 움직임이 끼친 영향은 OECD 국가의 산업 점유율 급락, 비숙련 일자리 수백만 개의 상실로 끝나지 않았다. 이 현상은 선진국이 전체 산업의 상당 부분을 상실한다는 의미에서의 산업공동화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서구는 지난 2세기 동안 누렸던 ‘지도자’의 지위를 잃었다. 서구는 이제 미래가 자신들에게 덜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 자체를 피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꼭 세계 경제 불균형의 씨앗을 안고 있는 형태, 우리가 경험했고 계속해서 경험하게 될 그런 형태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 pp.140「4장 산업공동화의 영향」중에서
더 놀라운 것은 그림자 금융의 발전이 2007년 금융 위기에도 전혀 둔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2013년 그림자 금융의 규모는 전통 은행권이 관리하는 자산의 절반에 이르는 71조 달러였다. 걱정스러운 장르의 혼합이다. 성과 없는 규제 시도, 특히 그것을 둘러싼 담론이 가하는 압박 때문에 주요 은행들은 비규제 금융 상품을 만들게 된다. 현재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또 한 번의 임박한 금융 위기의 위험은 규제에 있어 그 한계를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현재의 금융계와 관련된다. 이 문제에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체 금융이라는 방법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그림자 금융의 비중이 2012년 GDP의 거의 165퍼센트로 GDP의 95퍼센트에 불과한 은행의 비중보다 크다. 프랑스, 독일, 일본과 같은 다른 국가의 경우, 그 비중이 각기 GDP의 95퍼센트, 70퍼센트, 65퍼센트다. 영국의 경우 그림자 금융의 비중이 GDP의 350퍼센트에 이른다.
--- p.192「5장 탈금융화라는 환상」중에서
저축과 투자 사이의 균형만큼 경제학자들이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온 주제는 없다. 이것은 정치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다. 논의에 앞서 몇 가지 지적할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저축은 장래를 생각하는 신중한 선택이며 부르주아의 덕목에 가장 부합하는 동의어다. 하지만 저축과 자본의 축적 사이에는 작기는 하지만 차이가 있다. 부르주아는 이후 자신의 저축을 자본 축적의 끝없는 사이클에 재투자하는 사업가가 된다. 투자 혹은 고정 자본의 형성은 생산이나 가정 활동에 사용되는 내구재를 통해 기업이나 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저축이냐 투자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이르면 이 문제는 좀 더 민감해진다.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저축의 과다 가능성과 부족 가능성, 따라서 과소 소비와 과잉 소비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 p.217「6장 저축, 가장 희소한 자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