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은봉 광주대 교수는 시집 해설에서 김화정 시인의 시세계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들’이라고 했다. 이는 시인이 세계의 모든 존재들을 제 자신을 포함하는 공동체의 소중한 일원으로 파악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br/><br/>종이 울린다 겨울 햇볕이 킁킁 유리창을 비빈다 교장선생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순찰을 도신다 후다닥 놀란 아이들,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동백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여러분 자리에 앉으세요! 앉으세요!”<br/><br/>베란다에는 등받이가 떨어진 낡은 나무 걸상이 하나 있다 다리굽이 닳았지만 아직은 단단하다 소국들이 키를 고르며 걸상 위에 앉는다 커다란 유리병에 담긴 아이들이다 각기 노랑, 주홍, 하얀 저고리를 입고 있다<br/><br/>체조시간이다 동백 선생님 목에는 예쁜 꽃망울 호루라기가 걸려 있다 “푸른 손 위로 아래로 흔들흔들, 이제 숨쉬기 하고” 쌩쌩 위로 물 올리면 음악시간이다 “주홍색은 소프라노, 노란색은 메조소프라노, 하얀색은 알토입니다” 향기가 구름처럼 피어오른다<br/> <br/>동백 선생님의 열정에 벌 서는 개구쟁이가 있다 두 손 들고 서 있는 게발선인장이다 빨간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 맺혀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랑초 꼬마들이 깔깔깔 웃는다 눈이 오자 아이들 따뜻한 집 안으로 들어간다<br/><br/>소사 아저씨인 관음죽이 교실 문을 잠근다 어두워지는 교실에는 나무 걸상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쿨럭쿨럭 교실이 기침을 한다 어깨동무 눈동자를 닮은 별 하나, 둘렁렁렁 나무 걸상 주위에 모여든다.<br/>-「베란다 교실」전문<br/><br/>시에 등장하는 자연의 사물은 의인화 되어 있다. 시인이 자연을 이처럼 의인관으로 파악하는 것은 나날의 삶에서 그와 같은 체험을 하기 때문이다. 안식과 평화를 주는 자연의 공간은 그에게 애호와 사랑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제 자신의 시와 함께하고 있는 파괴되고 해체된 자연에 대해 시인이 안타까움과 연민, 절망과 공포 등의 복합적인 정서를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br/><br/>나무들 어두움 속에 몸 숨긴다 서서히 한 몸이 된다 그 숲 한가운데 아가리 쳐들고 선 타워 크레인, 숲의 어두움마저 하얗게 삼키고 있다.<br/>-「명암」전문<br/><br/>위의 작품은 “숲 한가운데 아가리 쳐들고 선 타워 크레인”을 절망과 공포의 정서로 형상화하는 데 초점이 있다. “숲의 어두움마저 하얗게 삼키고 있”는 것이 이 시에서의 “타워 크레인”이다. 이때의 “타워 크레인”이 성장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산천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자본주의 문명을 상징한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자연을 제재로 한 또 다른 시의 세계도 보여주고 있다.<br/><br/>실핏줄이 터진 거다<br/>맨드라미 꽃눈이다<br/><br/>장독가에 서 있던 꽃, 그 붉은 빛에 빠져든 나는 겹겹의 꽃망울 손으로 쓸어내리곤 했지 ‘맨드라미 까만 씨가 송송 맺히면 추석이란다’ 어머니 말하셨지 해마다 추석이 오면 타향에 사는 자식들 지지배배 돌아왔지 깨알 탱탱한 아이들 웃음소리, 그림자들, 돌담에 올라앉은 보름달이 가로등보다 밝았지 어머니 가슴엔 해마다 맨드라미꽃 피었지 <br/><br/>빨간 눈에 인공눈물을 넣고 늙은 어머니처럼 눈 깜박여 본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맨드라미 꽃눈! 매번 깜박여도 붉은 신호등 바뀌지 않는다 이 경고는 무슨 뜻일까 푸른 하늘 쳐다보며 나는 목이 마르다 보름달보다 더 밝고 아름답게 한 가을로 익혀낼 거다 타오르는 내 눈망울은 맨드라미 꽃눈이다.<br/>-「맨드라미 꽃눈」전문<br/><br/>시인에게는 자연의 사물이 단지 객관상관물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사물들을 통해 사랑을 배우기도 하고 그리움을 배우기도 한다. “차밭에 내려앉은/푸른 하늘”에서 “산자락에 층층이 포개진/사랑”을, “한겨울 내내 붙들어놓은/그리움”(「녹차」)을 연상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자연의 사물들로부터 삶의 진실을 깨닫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이루는 상호 교섭은 시인의 시세계가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다. 자연과 함께 공동체의 세계를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 제재에 인생을 비유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시 창작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김화정 시인은 초목과 산천과 천기의 운행에 인생을 비유하는 방식으로 인간에 대한 자신의 순정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주특기이다.
그는 매화, 복사꽃, 맨드라미, 소국, 동백, 게발선인장, 차꽃, 구절초, 장미, 왕벗나무, 진달래꽃, 억새, 밤나무꽃, 꽃무릇, 봉선화 등 구체적인 꽃을 시의 소재로 많이 채용하는데, 그럴 때 시가 빛을 발한다. 그러니 이 시집은 독자에게 건네는 한 아름의 풍성한 꽃다발이라고 해도 좋겠다. 특히 김 시인의 꽃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서정의 문채(文彩)에서는 가족사로부터 유전된 “눈물의 이야기”가 내면화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참말로 산 것 같이 산다냐?”라는 인생에 대한 질문에서 그것은 잘 가늠이 된다. 이런 질문을 하는 시인은 이 시집에서 어느덧 가을의 낙엽처럼 “뿌리의 길을 더듬고 있는” “쭈그러진 몸”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실상은 누구에게나 “산 것 같이” 살지 못하고 “비눗방울”처럼 떠다니다가 꺼져버리는 것이 인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화정은 “억새의 뼈마디에서” “낙엽 흩날리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시인이다. 이런 시인과 함께 “구겨진 종이상자”와 같은 인생이 마저 꺼져버리기 전에 자사호에서 우려낸 감로다를 마시며 시와 삶을 논하고 싶은 것은 나만의 바람이 아니리라.

공광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