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화여고, 동성고등학교, 서울사대 부속고등학교 교사를 역임한 후, 서울대학교 강사와 연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편저로 《한 권으로 읽는 세계문학 60선》을 비롯 옮긴 책으로는 《가시나무새》(콜린 맥컬로), 《호밀밭의 파수꾼》(J. D. 샐린저), 《페이터의 산문》, 《르네상스》(월터 페이퍼), 《센토》, 《돌아온 토끼》(존 업다이크),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프랑스 중위의 여자》(존 파울스), 《20세기 아이의 고백》(토머스 로저스), 《가든파티》(캐서린 맨스필드), 《천형》(그레엄 그린), 《여기는 모스크바》(유리 다니엘), 《밤비》(펠릭스 잘텐), 《이솝우화》(이솝) 외에 다수가 있다.
“네가 황막한 처지에 놓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네 동료들은 어디 있는가? 보트에 열한 명이 타지 않았는가? 열 명은 지금 어디 있는가? 왜 그들은 구조되지 않고 너는 길을 잃기만 했는가? 왜 너 혼자만 뽑혔는가? 여기에 있는 게 나은가, 아니면 저 바다 속에 있는 게 나은가?” 그러자 나는 열 명은 바다에 있다고 대답하듯 바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모든 나쁜 상황은 그 속에 담긴 좋은 면, 그 나쁜 상황에 동반하는 더 나쁜 상황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 pp.77-78
아무 생각 없이 곡식 부스러기를 버린 것은 큰 비가 내리기 직전이었다. 거기에 내가 무엇을 버린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땅에서 푸른 싹이 몇 개 돋는 것이 보였다. 나는 본 적이 없는 어떤 식물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놀랍게도 유럽에서, 아니 나의 조국 영국에서 나는 보리와 똑같은 푸른 보리 이삭 십여 개가 자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것을 보고 내가 얼마나 놀라고 생각의 혼돈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 --- p.96
내가 몇 안 되는 식구들과 함께 앉아 식사하는 것을 보면 아무리 무뚝뚝한 사람이라도 웃음 지을 것이다. 이 섬의 왕이며 주인인 내가 앉아 있었다. 나는 내 백성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그들의 매달 수도 있고 잡아끌 수도 있고, 자유를 주거나 뺏을 수도 있었다. 그네들 사이에 반란은 있을 수 없었다. 하인들이 시중을 드는 가운데 왕처럼 혼자서 식사하는 내 모습을 보라! 앵무새 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귀염둥이라도 된 것처럼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자손을 불릴 짝을 찾지 못한 채 늙어 노망이 든 개는 늘 내 오른쪽에 앉았다. 고양이 두 마리는 각각 한쪽 탁자 끝을 차지하고 앉아, 내가 특별히 아낀다는 표시로 음식 부스러기를 던져주기를 기다린다. --- p.183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나를 겁먹게 한 대상에게서 멀리 떨어질수록 불안감은 더 커졌다. 이것은 그러한 상황의 본질에 반대되는 것이며, 특히 공포에 질린 모든 피조물들이 일반적으로 표출하는 현상과 반대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발자국에 대해 나 스스로 만든 공포심에 어찌나 당황했는지, 거기서 멀찌감치 도망쳤는데도 머릿속에 자꾸만 무시무시한 것들이 떠올랐다. 때로는 그것이 악마임에 틀림없다는 환상에 빠졌고, 이성도 이런 환상을 거들었다. --- p.192
잠시 뒤 나는 그에게 말을 걸고 그가 나에게 말하도록 가르치기 시작했다. 먼저 그의 이름은 프라이데이로 하겠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 금요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려고 붙인 이름이다.
요크의 중류 집안에서 태어난 크루소는 부모의 만류를 무릅쓰고 항해에 나섰다가 난파당한 후 브라질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브라질에서 성공적으로 농장을 개척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던 그는 바다에 대한 타고난 열망에 이끌려 다시 바다로 나서는데 그가 탄 배는 태풍을 만나 암초에 부딪치고 크루소 혼자만 생존한다. 절망에 빠진 것도 잠시, 그는 시련 가운데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타고난 근면과 성실함으로 곡식을 재배하고 염소를 키우며 이 무인도를 자신만의 왕국으로 건설한다. 성숙한 신앙인이 된 크루소는 섬에 상륙한 식인종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포로를 구출하여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영어를 가르쳐 하인으로 삼았으며, 그를 신앙의 길로 이끈다. 섬에 상륙한 지 28년째 되던 해, 크루소는 섬에 정박한 반란선에서 선장을 구해주고 드디어 프라이데이와 함께 영국으로 귀향한다. 바다로 나가기 전 자신이 일구어놓은 농장 덕분에 큰 부자가 된 크루소는 그 돈으로 신세진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으며 의리와 정의를 실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