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바르뷔스(Henri Barbusse, 1873-1935) -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1895년 시집 『흐느끼는 여자들 』을 발표, 말라르메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최초의 소설 작품은 『애원하는 사람들 』(1903)로 인간 내면의 진실과 외부 현실 사이의 모순에 따른 갈등을 그려내 ‘인간 실존 탐구’라는 주제의식의 발단을 보였다. 바르뷔스가 독자들로부터 열광적인 호흥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옥 』(1908)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이후 소설 『포화 』(1915)를 발표, 프랑스의 초고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다. 말년에는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광명 』, 『입에 물린 칼 』등 정치적 성격을 띤 작품들을 펴냈으며 1935년 모스크바 여행 중 사망했다.
역자 : 오현우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서울대학교 불문과 교수를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 』,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 』, 『배덕자 』, 『법왕청의 지하도 』, 스탕달의 『적과 흑 』, 다비의 『北호텔 』, 장 콕토의 『무서운 아이들 』, 기 드 모파상의 『안개낀 母像 』등이 있다.
벌써 늦은 시각이다. 오늘은 이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작정이다. 해질 녘 나는 거울 한구석과 마주하고 앉아 있다. 어둠이 침입해 들어오기 시작한 무대에서 나는 내 이마의 윤곽과 둥그스름한 내 얼굴과 깜빡거리는 눈꺼풀 밑에서 내 시선을 본다. 마치 무덤 속으로 들어가듯 그 시선을 통해 나는 내 안으로 들어간다.
--- 본문 중에서
연인들이란 언제나 미쳐 있죠. 그걸, 당신 자신이 말씀하셨어요. 제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에요. 그처럼 많은 지식과 지성을 가진 당신은 제게 말해주었죠. 두 사람의 대화자란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는 장님이며 거의 벙어리라고, 그리고 뒹구는 두 연인이란 바람과 바다처럼 서로 낯선 것이라고. … 귀를 기울여 들을 때는 거의 들리지 않고, 들릴 때는 거의 이해되지 않죠. 연인들이란 언제고 미쳐 있어요.
--- 본문 중에서
희망이란 바라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오. 다시는 기도도 없소. 기도 또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오. 왜냐하면 그건 하나의 절규로서 올라가고 우리를 버리기 때문이오. … 다시는 미소도 없소. 미소란 언제고 반쯤은 슬픈 게 아니오? 사람은 오직 자기의 비애, 불안, 미래의 고독, 멀리 달아나는 자기의 고뇌에 대해서만 미소 짓는 것이오. 미소란 지속되지는 않소. 미소는 본래 죽어가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