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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드록바 자서전 : 헌신

[ 초판 종료 ]
리뷰 총점10.0 리뷰 3건 | 판매지수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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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44쪽 | 750g | 152*224*30mm
ISBN13 9791160071139
ISBN10 116007113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화보
옮긴이의 글 038
감사의 글 042
프롤로그: Au revoir 046

01 고향을 떠나다 051
02 커리어의 시작 073
03 마침내 프로가 되다 091
04 브루타뉴에서 보낸 18개월 105
05 나의 꿈과 마르세유 123
06 마르세유를 떠나다 139
07 블루스가 되다, 2004-2005 161
08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2005-2006 177
09 ‘드록신’의 탄생, 2006-2007 191
10 모스크바, 2007-2008 205
11 두 감독, 하나의 트로피, 2008-2009 223
12 안첼로티와 최고의 시즌, 2009-2011 239
13 AVB와 RDM, 2011-2012
14 뮌헨에서의 어느 밤 275
15 중국과 터키에서의 모험, 2012-2014 299
16 첼시로 돌아오다, 2014-2015 319
17 전쟁을 멈추다 343
18 월드컵과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359
19 가슴 아픈 만남들 371
20 나의 가족, 나의 사람들 387
21 나의 자선사업 403
22 하나의 세계 421
23 이제는 어디로? 429

부록 1 나의 베스트 5-5-3 436
부록 2 커리어 마일즈스톤 438
부록 3 클럽 커리어 레코드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코트디부아르에서 보낸 유년기와 프랑스로 이주해서 보낸 청소년 시절 및 초기 선수생활

그 시절에 나는 선생님들과 따로 노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무도 나와 놀아주는 소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나는 외국에서 온 아웃사이더였다. 그 소년들 사이에는 무의식적으로 인종차별과는 다른(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상대를 무시하는 감정에서 비롯된 배타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피부 색깔부터 다른 소년들과 달랐고, 그들은 나와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어떤 소년 중에는 내 피부가 정말 검은색인지를 확인해보겠다며 내 살을 문질러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와 같은 상황은 내가 학교를 옮길 때마다 발생했다.

그때가 1998년의 여름이었다. 나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됐다. 나는 나와 같은 나이의 앙리가 프랑스에서 전에 없던 뜨거운 열기 속에 열린 프랑스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앙리는 이미 스무 살의 나이에 세계적인 슈퍼스타였고 국가대표팀 주전 공격수 자리를 확보한 선수였다. 반면 나는 깁스를 한 채 소파에 앉아 배달시킨 피자를 먹고 있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저런 망할 놈’ 같은 생각이 아니었다(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저 ‘나도 저 자리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고 ‘언젠가는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라고 생각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라, 이 바나나 먹는 놈아.” 물론 모든 갱강의 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편지의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고 슬퍼서 오랫동안 그 편지지를 내 두 손에 쥐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축구계에서 처음으로 인종차별을 겪는 순간이었다.

마르세유에서의 드록바

우리는 8월에 이미 오스트리아 빈을 꺾고 챔피언스리그 조별 라운드에 진출했다. 우리와 같은 조에 속한 팀들은 파르티잔 벨그라데, 포르투,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였다. 그리고 우리의 첫 번째 경기는 레알 마드리드의 홈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렸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믿기 어려울 정도로). 주장 라울, 지단, 호나우두, 피구, 카시야스 그리고 그해 맨유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데이비드 베컴까지.

그날은 내가 무리뉴 감독과 처음 만난 날이었다. 그는 경기가 끝난 후 터널로 날 찾아와서 프랑스어로 나에게 나처럼 축구를 하는 사촌이 없느냐고 물었다. “아, 사실 아프리카에 저보다 훨씬 잘하는 형제들이 많습니다.” 내가 농담을 꺼냈다. “언젠가 내가 자네를 영입할 여유가 생기면 꼭 자네를 영입하겠네.” 그는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다.

드록바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마르세유를 떠난 과정

마르세유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크리스토프 부셰 회장을 만나서 난 절대 팀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2년 후, 3년 후라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어디로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 그건 잘 알겠네. 하지만 2년 후, 3년 후에도 그 제안이 그대로 유지될지는 잘 모르겠구먼.” 부셰 회장이 대답했다.

날 영입한 이후에 조세 무리뉴 감독은 알려지지도 않은 프랑스 공격수에 그렇게 많은 돈을 썼다며 비판을 받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래에 드록바가 첼시를 떠난 후에 이 영입에 대해 판단하라.”

첼시 입단 초기 드록바와 첼시 팬들의 갈등

그날 경기 막판에 맨시티 수비수 리차드 던과 내가 엉키며 넘어졌다. 나는 그를 지나서 드리블을 하려고 했고 그는 균형을 잃고 넘어지다가 손으로 내 얼굴을 치고 말았다. 그의 손가락이 내 눈 바로 앞까지 닿을 정도였다. 나는 너무 아파서 경기를 계속하기가 어려웠다. 눈이 퉁퉁 붓기 시작했고 일어나기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잠시 그라운드에 누워서 고통을 참고 있었다. 그러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관중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야유를 보내는 팬들이 맨시티 팬들뿐 아니라, 첼시 팬들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내가 나의 소속팀 팬들에게 야유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내 경기력이 형편없어서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나는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해서 뛰고 있었다.

드록바와 첼시의 운명을 바꾼 한 남자의 문자 메시지

여전히 영국 미디어나 팬들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 시절, 흔들리던 내 마음을 잡아준 한 사람이 있었다. 무리뉴 감독은 내게 늘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줬고, 다른 팀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거의 혼자의 힘으로 나를 첼시에 남도록 설득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프랭크 램파드였다. “드록바, 나는 네가 첼시에 남았으면 좋겠어. 우리 같이 리그도 우승하고, 언젠가는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차지해야 하잖아!”

스콜라리, 히딩크, 안첼로티, AVB 감독 등에 대한 드록바의 생각

“자네는 내 팀 구상에 없네.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다시 뛰지 못할 거야. 그러니 팀을 떠나고 싶다면 지금 그렇게 하게. 에이전트에게 연락해. 마침 지금 1월이잖아. 1월 말까지 새 팀을 구하고 떠날 시간이 있네.“ 나는 그(스콜라리 감독)가 나를 기용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나를 팀에서 제거하고 싶어 했다. 그가 영입하고자 했던 선수는 인터 밀란에서 뛰고 있던 공격수 아드리아누였다.

“자네는 공격수다. 경기장 전체를 뛸 필요 없어. 슈팅할 수 있는 포지션에 있으면서 득점을 노리게.”그의 다른 전술,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법 덕분에 나는 활기를 되찾았고 다시 경기에 나서 골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 능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히딩크 감독 밑에서 활기를 되찾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히딩크 감독이 부임한 후 4경기에서 연승했다. 첼시는 다시 좋은 분위기를 타기 시작했다.

안첼로티 감독은 경질되기 이틀 전에 나를 찾아와서 말했다. “드록바, 너와 같이 일해서 즐거웠다. 몇몇 일들에 대해 의견이 맞지 않은 것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것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결정은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알고 있습니다. 그게 축구죠.”

“내가 바라는 단 한 가지는 무슨 일이든 내게 미리 알려달라는 것이다. 내가 어떤 경기에서 뛰지 않는 것은 괜찮지만, 나는 경기 시작을 앞두고 팀 시트를 보고서야 내가 뛰지 못 한다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실망을 하게 된다. 걱정하지 말고, 이유를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나에게 미리 알려만 달라”고 말하곤 했다. 감독과 선수 간의 소통. 그것이 내가 거친 모든 감독에게 내가 요구했던 유일한 것이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것이지만, 그 간단하게 보이는 것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드록바와 첼시 최고의 순간, 챔피언스리그 우승

나는 골키퍼를 바라보지 않고 아래를 본 상태로 주심을 잠시 올려봤다. 그는 곧 휘슬을 불었고 나는 두 걸음을 걸으며 슈팅하는 척했다가 잠시 멈췄다. 아주 짧은 찰나에 나는 골키퍼가 왼쪽으로 향하는 것을 눈치채고 오른쪽으로 슈팅을 시도했다. 사실, 그것은 슈팅이라기보다는 구석으로 패스하듯 정확히 볼을 보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볼은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의 결승골을 넣는 순간이었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나는 10번, 20번을 말했다. 그 한마디만이 골을 넣은 후 내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었다. 나는 곧바로 체흐에게 달려갔다. 바로 그가 우리에게 우승을 안겨준 사람이었다. 그 많은 페널티킥을 막아내면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내 페널티킥 직전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면서. 나는 가장 먼저 그와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이게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기분이구나. 항상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겠어.’ 나는 피치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테리, 램파드, 체흐를 만났고 그들에게 고맙다고, 그들과 함께 뛸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너무 행복해서 그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드록바의 중국행

상하이에서 보낸 몇 달 동안, 축구적인 관점에서 그곳에서의 나의 경험은 아주 긍정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시즌이 끝날 무렵, 클럽 주주들 간의 이해관계로 인한 충돌이 생기면서 우리의 급여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기 시작했다. 외국인 선수들은 물론이고, 우리보다 훨씬 더 급여를 제때 받는 일이 중요했던 중국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드록바의 첼시 컴백 배경

무리뉴는 직접 입을 열고 나를 다시 영입하는 이유가 감정적인 것이 아닌, 내가 여전히 유럽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그런 말은 나에겐 정말 행복한 것이었다. 내게 첼시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다. 첼시는 곧 나의 고향이었고, 나는 무리뉴 감독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그와 다시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할 순 없었다. 그 결정은 아주 단순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드록바가 코트디부아르 내전을 멈추게 한 연설

“북부에 사는, 남부에 사는. 중부에 사는, 서부에 사는 나와 같은 코트디부아르의 모든 국민 여러분. 우리는 오늘 여러분에게 코트디부아르가 함께 같은 목표를 위해 뛰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월드컵 진출이라는 목표 말입니다. 우리는 여러분께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나라에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여러분께 부탁합니다.”
나는 내 주변에 있는 모든 동료들에게 무릎을 꿇어달라고 요청하고 나 역시 그렇게 한 뒤 말을 이었다.
“여러분께 부탁합니다. 아프리카의 가장 풍족한 나라인 우리가 이렇게 전쟁으로 갈라질 수는 없습니다. 제발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투표를 해주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점점 더 나아질 것입니다.”

드록바의 미래

나는 스스로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늘 나의 뿌리를 잃지 않고 겸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고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감사한 일들이다. 나는 삶이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를 알고 있고 인생이 얼마나 빠르게 변할 수 있는지도 알며 다른 사람들의 눈에 나의 인생이 어떻게 보이든지, 내가 얼마나 많은 돈과 명성을 쌓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나의 삶을 통해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축구에 나의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누구도 내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래에 사람들이 나에 대해 ‘드록바는 좋은 선수이기도 했지만 영리해서 축구를 통해 다른 걸 할 줄도 아는 선수였다’고 기억했으면 한다.

* 특별 출연 : 맨유의 박지성

나는 하프타임에 몸을 풀고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토레스를 대신해서 경기에 투입됐다. 그리고 경기장에 들어가자마자 유효슈팅을 시도하며 판 데 사르를 괴롭혔다. 그리고 후반전 27분에 나는 에시앙의 패스를 가슴으로 트래핑한 후 강하게 슈팅을 날려서 맨유 골문을 갈랐다. 마침내 내가 첼시에 희망을 안겨준 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제대로 세리머니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내 골이 나온 바로 직후의 공격에서 맨유의 박지성이 골을 터뜨리면서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챔피언스리그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희망을 꺾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대회이자, 우리의 구단주가 그토록 우승을 염원하고 있는 그 대회에서.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드록바와 함께라면 어떤 전쟁에도 나갈 수 있다.” - 조세 무리뉴

디디에 드록바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선수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공격수로 뛰고 있던 2004년 첼시에 입단해서 두려움을 모르는 폭발적인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리며 첼시에 2012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한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같은 2012년, 첼시 팬들은 팬 투표를 통해 그를 첼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선정했다.

이 자서전에서 디디에 드록바는 그에게 영감과 열정을 주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섯 살의 나이에 부모를 떠나 프랑스의 삼촌 집으로 이주했던 과정에 대해서, 또 르망, 갱강, 마르세유 등에서 뛴 선수생활과 첼시에서 거둔 영광, 마지막으로 자신이 선수로서 겪은 성공과 실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는 또 자신의 아내 랄라와 자녀들에 대해서, 또 램파드, 테리, 체흐를 비롯한 첼시 동료들과 조세 무리뉴 감독과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그는 축구선수로서의 높은 명성만큼 아프리카의 인권에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다. 2007년, 그는 코트디부아르의 교육과 건강문제 해결을 위해 디디에 드록바 파운데이션을 설립했다. UN 친선대사이기도 한 그는 2005년에는 코트디부아르 공영방송을 통해 내전을 중지해달라는 호소를 통해 휴전을 이끌어내며 자국민들에게, 또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옮긴이의 말

한국의 축구팬들에게 ‘드록신’이라고 불리며 널리 사랑 받았던 디디에 드록바. 신이라고 불린 한 축구선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은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다른 것은 모두 둘째 치고 우선 시원시원하고 재미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디디에 드록바 자서전은 재미있다’가 될 것 같다.

드록바는 이 책에서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나온 오심에 대한 불만으로 TV에 욕설을 했던 장면에 대해서, 또 맨유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심지어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를 눈앞에 두고)에서 상대 수비수인 비디치의 뺨을 때렸던 그 상황의 배경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또 자신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다이빙 논란’과 본인의 잔류의지에도 불구하고 마르세유를 떠나고 첼시로 이적했어야만 했던 상황에 대해 ‘아주 솔직하게’ 설명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디디에 드록바의 비상한 ‘솔직함’ 덕분에 이 책에는 말 그대로 그의 모든 커리어와 그가 전성기를 보냈던 첼시의 황금기 및 프랑스, 중국, 터키 등의 축구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런 점까지 고려해볼 때 이 책은 드록바의 전성기를 두 눈으로 직접 본 축구팬들은 물론, 그의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으나 첼시라는 팀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축구팬들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_ 이성모

회원리뷰 (3건) 리뷰 총점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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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포토리뷰 제발 첼시 팬이면 헌신 좀 읽읍시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포*롱 | 2020.04.0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출간 당시에 이 책이 나왔다는 걸 몰랐고, 첼시에 대한 내 애정도 많이 식었구나 하는 마음과이미 초판 분량이 다 나갔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 책을 사지 않았었다.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모든 해외축구 경기가 중단되고일상이던 축구가 박살난 말도 안되는 지금 상황에, 이 책이 떠올랐다.여러 곳을 검색하다 YES24의 특전 문구가 보였고고객센터에 문의해본 결과 주문하;
리뷰제목


출간 당시에 이 책이 나왔다는 걸 몰랐고, 첼시에 대한 내 애정도 많이 식었구나 하는 마음과

이미 초판 분량이 다 나갔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 책을 사지 않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모든 해외축구 경기가 중단되고

일상이던 축구가 박살난 말도 안되는 지금 상황에, 이 책이 떠올랐다.


여러 곳을 검색하다 YES24의 특전 문구가 보였고

고객센터에 문의해본 결과 주문하시면 책과 랩핑되어 온다는 답변을 받자마자

바로 주문해서 



이렇게 왔다...



완전 두꺼운...

이것이 '드록복음'



일단, 자서전이지만 본인의 과오를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 멋지다.


04/05 시즌부터 06/07 시즌까지 저질렀던 다이빙(헐리우드 액션)에 대해서도 잘못된 일이라고 쓰고 있고, 07/08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의 퇴장은 '이제 첼시에서 뛰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라 생각했던 걸 언급하며 본인의 책임이었다고 반성한다. 08/09 시즌의 오심에 쌍욕을 했던 것조차 욕설 자체는 잘못이었다고 인정한다.


드록바가 처음 첼시에서 뛰었던 년도부터 첼시팬이였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04/05 시즌부터 시즌 복기를 드록바와 함께 하는 느낌이었으니까. 예전보다는 첼시에 대한 애정이 식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15년 동안 봐왔기에 잊은 줄 알았던 것 뿐이었음을 이 자서전이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무리뉴, 스콜라리, 안첼로티, 빌라스보아스, 디 마테오... 수많은 감독들이 오고 가고를 반복했던 첼시에서 선수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던 게 정말 좋았던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05/06시즌까지는 '뽀록바'라는 멸칭으로 불렸던 드록바가 '신'이라 불리게 된 순간까지의 여정과 당시의 감정, 행동들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에서, 첼시 팬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코트디부아르 내전을 정말로 멈춘 전설적인 에피소드는 '전쟁을 멈추다' 문단에서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사진이 모두 권두부분에만 있다는 것이다.

챕터 이미지를 한 장으로만 돌려쓰고 있는데, 권두부분의 사진 모음이 어릴 적 부터 디디에 드록바 파운데이션까지 시간순으로 되어있어서 팬이라면 큰 단점까지는 아닐 것이다.


포토북은 권두부분의 사진 중 알짜배기만 핸드북 형식으로 만들어 놓은 건데 이게 완전 마음에 든다!


마지막으로 사진의 드록바 파운데이션 로고만 봐도 알겠지만



이 책을 사면 드록바의 인세만큼 드록바 파운데이션에 기부까지 할 수 있다.

세계 평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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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전쟁을 멈춘 사나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r*******4 | 2019.01.2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흔히 축구를 전쟁에 비유합니다. 하지만 축구로 전쟁을 끝낸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드멘, 드록신, 검은 예수라 불리는 코트디부아르 축구 대표선수 디디에 드록바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이던 그때... 코트디부아르는 2002년부터 정부군이 남부, 반군이 북부를 장악하며 내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2006년 전쟁이 계속되던 어느날 코트디부아르는 드록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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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축구를 전쟁에 비유합니다. 하지만 축구로 전쟁을 끝낸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드멘, 드록신, 검은 예수라 불리는 코트디부아르 축구 대표선수 디디에 드록바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이던 그때... 코트디부아르는 2002년부터 정부군이 남부, 반군이 북부를 장악하며 내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2006년 전쟁이 계속되던 어느날 코트디부아르는 드록바의 활약으로 역사상 첫 월드컵 진출 티켓을 따냅니다. 기쁨의 그 순간 드록바는 생방송 인터뷰 중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으며 "여러분 일주일 만이라도 전쟁을 멈춰주세요"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드록바의 간절한 인터뷰 후 일주일간 총성은 정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드록바는 조국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뛰었지만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선 재단을 설립 국제 사회에 종전을 호소했고 매년 자신의 연봉까지 기부했습니다. 기자가 드록바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조국은 어떤의미 인가요?" "내 심장은 언제나 조국과 함께 뜁니다. 내 조국의 주장 완정을 달고 뛴다는 사실만으로도 나 자신이 늘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2007년 정부와 반군 사이의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5년간 끌어오던 내전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록바는 자신의 돈 60억으로 코트디부아르의 내전 피해 지역 중 한 곳에 병원을 짓고 병원에 온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속해 있던 팀의 첼시의 구단주 아브라모비치를 설득하여 코트디부아르 아이들을 위한 유소년 축구 클럽도 만들었습니다. "그는 내가 맡아본 선수중 단연 최고이며 첼시 역사상 최고의 영입이자 최고의 가치를 지닌 선수입니다" -현 맨유감독 주제 무리뉴- "코뿔소를 막을수 있는 방법은 그라운드에서 찾을 수 없었다" -현 아스날 감독 아르센 벵거- "그 동안 수많은 트로피를 받았지만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가져다 준 그 순간이 나에게는 가장 큰 트로피입니다" -디디에 드록바- 드록바는 사무엘 에투와 함께 2000년대 아프리카 축구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이며 그냥 단순한 축구 선수가 아니라 축구로 내전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다준 축구로 세상을 바꾼 진정한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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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멈춘 사나이, 디디에 드록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q*****2 | 2017.09.2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코트디부아르. 지도를 펼쳐 들곤 이름조차 낯선 이 나라의 위치를 확인한다. 아프리카 대륙 어딘가에 있겠거니.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 그리고 가나. 주변에 있는 나라들을 검색하는 족족 ‘내전’, ‘내분’ 등의 연관어가 튀어나왔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코트디부아르 또한 비슷한 길을 걸었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난 이 나라를 한 축구선수를 통해 알게 됐다. 그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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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 지도를 펼쳐 들곤 이름조차 낯선 이 나라의 위치를 확인한다. 아프리카 대륙 어딘가에 있겠거니.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 그리고 가나. 주변에 있는 나라들을 검색하는 족족 내전’, ‘내분등의 연관어가 튀어나왔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코트디부아르 또한 비슷한 길을 걸었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난 이 나라를 한 축구선수를 통해 알게 됐다. 그의 이름은 디디에 드록바, 한 때 드록신이라고도 불렸던 바로 그 선수다. 그는 전성기를 잉글랜드의 첼시 FC라는 팀에서 보냈다. 박지성이 뛰고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응원하던 나에게 첼시는 애증의 감정을 갖도록 만든 팀이었다. 막대한 자금을 풀어 세계 최정상의 선수를 사들이는 첼시를 이길 방도는 없는 듯했다. 프로의 세계는 원래 그런 것이요, 자본의 힘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첼시를 통해 배웠다.

당시 드록바는 첼시의 주축 멤버였다. 동시에 그는 코트디부아르라는 나라를 대표하고도 있었다. 아프리카의 축구 강국이라고 하였을 때 나이지리아나 카메룬, 가나 등이 곧잘 언급되는 반면 코트디부아르를 떠올리는 경우는 그때까진 없었다. 월드컵 진출 자체가 요원해 보이는 이 나라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 등장한 것 역시도 드록바의 힘이 크다. 하지만 그가 널리 주목 받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드록바가 내전을 멈췄다? 개인의 힘이 아무리 크다 하여도 인간의 내면에 깃든 증오의 감정마저 잠재울 정도일까 싶다. 운동은 운동일 뿐이다. 정치와의 결부는 위험하다. 하지만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정치적이지 아니 한 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운동 역시 정치일 수 있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독재정권이 국민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해 활용하는 것 중 하나가 스포츠다. 중국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대만은 올림픽 등에서 하나의 국가로 인정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스포츠 스타의 말 한 마디가 끼친 영향이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그는 위험한 지역 한복판을 찾아가 둥근 축구공을 차기도 했다. 그가 당시 품었던 믿음이 어떠한 것이었을지 알고픈 마음이 일었다.

호날두, 메시 등의 선수들을 볼 적마다 나는 천부적인 재능에 대해 떠올린다.

능력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왜 재능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자신도 재능 넘치는 음악가였던 살리에르는 천재 모차르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기만 했다. 드록바와 같은 인물은 축구계의 모차르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내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으며 성장했고, 프로팀 입단과 동시에 주목 받았을 것이라는 나의 짐작과 드록바의 인생은 전혀 달랐다. 참으로 어린 시절 프랑스로 넘어온 그는 가족과 오랜 기간 떨어져 지냈다. 축구 자체를 늦게 시작했고, 티에리 앙리 등이 이미 월드컵 무대를 밟고 있을 때 그는 르망 UC 72’라는 2부 리그 팀에 속해 있었다. 부상 또한 잦아 충분히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틈이 없을 듯했다. 그의 축구 인생은 저절로 주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예와도 같았다.
1978
년생인 그의 나이는 마흔 살이다. 그 또래 선수들은 이미 대부분이 은퇴해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더 이상 유럽에서 뛰지 않는다. 미국 프로축구, 그것도 2부 리그 팀인 피닉스 라이징이 그의 소속 구단이다. 얼마 전 그는 LA갤럭시 리저브와의 경기에서 32m 장거리 프리킥 골을 터뜨렸다. 지금 첼시로 복귀해도 주전감이라며 사람들은 그의 플레이에 경외감을 보였다. 그가 걸어온 길도 위대했지만, 지금 모습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는 그렇게 거대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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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첼시 팬이면 헌신 좀 읽읍시다. 첼시팬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일명 '드록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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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롱 | 20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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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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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4 | 2018.06.28
평점5점
책 디자인도 깔끔하고 내용도 마음에 드네요 사진첩도 잘받았습니다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m*******1 | 2018.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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