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7년 02월 15일 |
---|---|
쪽수, 무게, 크기 | 444쪽 | 750g | 152*224*30mm |
ISBN13 | 9791160071139 |
ISBN10 | 1160071136 |
발행일 | 2017년 02월 15일 |
---|---|
쪽수, 무게, 크기 | 444쪽 | 750g | 152*224*30mm |
ISBN13 | 9791160071139 |
ISBN10 | 1160071136 |
화보 옮긴이의 글 038 감사의 글 042 프롤로그: Au revoir 046 01 고향을 떠나다 051 02 커리어의 시작 073 03 마침내 프로가 되다 091 04 브루타뉴에서 보낸 18개월 105 05 나의 꿈과 마르세유 123 06 마르세유를 떠나다 139 07 블루스가 되다, 2004-2005 161 08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2005-2006 177 09 ‘드록신’의 탄생, 2006-2007 191 10 모스크바, 2007-2008 205 11 두 감독, 하나의 트로피, 2008-2009 223 12 안첼로티와 최고의 시즌, 2009-2011 239 13 AVB와 RDM, 2011-2012 14 뮌헨에서의 어느 밤 275 15 중국과 터키에서의 모험, 2012-2014 299 16 첼시로 돌아오다, 2014-2015 319 17 전쟁을 멈추다 343 18 월드컵과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359 19 가슴 아픈 만남들 371 20 나의 가족, 나의 사람들 387 21 나의 자선사업 403 22 하나의 세계 421 23 이제는 어디로? 429 부록 1 나의 베스트 5-5-3 436 부록 2 커리어 마일즈스톤 438 부록 3 클럽 커리어 레코드 |
출간 당시에 이 책이 나왔다는 걸 몰랐고, 첼시에 대한 내 애정도 많이 식었구나 하는 마음과
이미 초판 분량이 다 나갔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 책을 사지 않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모든 해외축구 경기가 중단되고
일상이던 축구가 박살난 말도 안되는 지금 상황에, 이 책이 떠올랐다.
여러 곳을 검색하다 YES24의 특전 문구가 보였고
고객센터에 문의해본 결과 주문하시면 책과 랩핑되어 온다는 답변을 받자마자
바로 주문해서
이렇게 왔다...
완전 두꺼운...
이것이 '드록복음'
일단, 자서전이지만 본인의 과오를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 멋지다.
04/05 시즌부터 06/07 시즌까지 저질렀던 다이빙(헐리우드 액션)에 대해서도 잘못된 일이라고 쓰고 있고, 07/08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의 퇴장은 '이제 첼시에서 뛰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라 생각했던 걸 언급하며 본인의 책임이었다고 반성한다. 08/09 시즌의 오심에 쌍욕을 했던 것조차 욕설 자체는 잘못이었다고 인정한다.
드록바가 처음 첼시에서 뛰었던 년도부터 첼시팬이였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04/05 시즌부터 시즌 복기를 드록바와 함께 하는 느낌이었으니까. 예전보다는 첼시에 대한 애정이 식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15년 동안 봐왔기에 잊은 줄 알았던 것 뿐이었음을 이 자서전이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무리뉴, 스콜라리, 안첼로티, 빌라스보아스, 디 마테오... 수많은 감독들이 오고 가고를 반복했던 첼시에서 선수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던 게 정말 좋았던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05/06시즌까지는 '뽀록바'라는 멸칭으로 불렸던 드록바가 '신'이라 불리게 된 순간까지의 여정과 당시의 감정, 행동들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에서, 첼시 팬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코트디부아르 내전을 정말로 멈춘 전설적인 에피소드는 '전쟁을 멈추다' 문단에서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사진이 모두 권두부분에만 있다는 것이다.
챕터 이미지를 한 장으로만 돌려쓰고 있는데, 권두부분의 사진 모음이 어릴 적 부터 디디에 드록바 파운데이션까지 시간순으로 되어있어서 팬이라면 큰 단점까지는 아닐 것이다.
포토북은 권두부분의 사진 중 알짜배기만 핸드북 형식으로 만들어 놓은 건데 이게 완전 마음에 든다!
마지막으로 사진의 드록바 파운데이션 로고만 봐도 알겠지만
이 책을 사면 드록바의 인세만큼 드록바 파운데이션에 기부까지 할 수 있다.
세계 평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축구를 전쟁에 비유합니다. 하지만 축구로 전쟁을 끝낸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드멘, 드록신, 검은 예수라 불리는 코트디부아르 축구 대표선수 디디에 드록바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이던 그때... 코트디부아르는 2002년부터 정부군이 남부, 반군이 북부를 장악하며 내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2006년 전쟁이 계속되던 어느날 코트디부아르는 드록바의 활약으로 역사상 첫 월드컵 진출 티켓을 따냅니다. 기쁨의 그 순간 드록바는 생방송 인터뷰 중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으며 "여러분 일주일 만이라도 전쟁을 멈춰주세요"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드록바의 간절한 인터뷰 후 일주일간 총성은 정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드록바는 조국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뛰었지만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선 재단을 설립 국제 사회에 종전을 호소했고 매년 자신의 연봉까지 기부했습니다. 기자가 드록바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조국은 어떤의미 인가요?" "내 심장은 언제나 조국과 함께 뜁니다. 내 조국의 주장 완정을 달고 뛴다는 사실만으로도 나 자신이 늘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2007년 정부와 반군 사이의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5년간 끌어오던 내전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록바는 자신의 돈 60억으로 코트디부아르의 내전 피해 지역 중 한 곳에 병원을 짓고 병원에 온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속해 있던 팀의 첼시의 구단주 아브라모비치를 설득하여 코트디부아르 아이들을 위한 유소년 축구 클럽도 만들었습니다. "그는 내가 맡아본 선수중 단연 최고이며 첼시 역사상 최고의 영입이자 최고의 가치를 지닌 선수입니다" -현 맨유감독 주제 무리뉴- "코뿔소를 막을수 있는 방법은 그라운드에서 찾을 수 없었다" -현 아스날 감독 아르센 벵거- "그 동안 수많은 트로피를 받았지만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가져다 준 그 순간이 나에게는 가장 큰 트로피입니다" -디디에 드록바- 드록바는 사무엘 에투와 함께 2000년대 아프리카 축구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이며 그냥 단순한 축구 선수가 아니라 축구로 내전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다준 축구로 세상을 바꾼 진정한 영웅입니다.
코트디부아르. 지도를 펼쳐 들곤 이름조차 낯선 이 나라의 위치를 확인한다. 아프리카
대륙 어딘가에 있겠거니.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 그리고 가나. 주변에
있는 나라들을 검색하는 족족 ‘내전’, ‘내분’ 등의 연관어가 튀어나왔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코트디부아르 또한 비슷한 길을 걸었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난 이 나라를 한 축구선수를
통해 알게 됐다. 그의 이름은 디디에 드록바, 한 때 ‘드록신’이라고도 불렸던 바로 그 선수다. 그는 전성기를 잉글랜드의 첼시 FC라는 팀에서 보냈다. 박지성이 뛰고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응원하던 나에게 첼시는 애증의 감정을 갖도록 만든 팀이었다. 막대한 자금을 풀어 세계 최정상의 선수를 사들이는 첼시를 이길 방도는 없는 듯했다. 프로의 세계는 원래 그런 것이요, 자본의 힘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첼시를 통해 배웠다.
당시 드록바는 첼시의 주축 멤버였다. 동시에 그는 코트디부아르라는 나라를 대표하고도 있었다. 아프리카의
축구 강국이라고 하였을 때 나이지리아나 카메룬, 가나 등이 곧잘 언급되는 반면 코트디부아르를 떠올리는
경우는 그때까진 없었다. 월드컵 진출 자체가 요원해 보이는 이 나라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 등장한 것
역시도 드록바의 힘이 크다. 하지만 그가 널리 주목 받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드록바가 내전을 멈췄다? 개인의 힘이 아무리 크다 하여도 인간의 내면에 깃든 증오의 감정마저 잠재울 정도일까 싶다. 운동은 운동일 뿐이다. 정치와의 결부는 위험하다. 하지만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정치적이지 아니 한 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운동
역시 정치일 수 있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독재정권이 국민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해 활용하는
것 중 하나가 스포츠다. 중국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대만은 올림픽 등에서 하나의 국가로 인정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스포츠 스타의 말 한 마디가 끼친 영향이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그는 위험한 지역 한복판을 찾아가 둥근 축구공을 차기도 했다. 그가
당시 품었던 믿음이 어떠한 것이었을지 알고픈 마음이 일었다.
호날두,
메시 등의 선수들을 볼 적마다 나는 천부적인 재능에 대해 떠올린다.
“능력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왜 재능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자신도 재능 넘치는 음악가였던 살리에르는
천재 모차르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기만 했다. 드록바와 같은 인물은 축구계의 모차르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내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으며 성장했고, 프로팀
입단과 동시에 주목 받았을 것이라는 나의 짐작과 드록바의 인생은 전혀 달랐다. 참으로 어린 시절 프랑스로
넘어온 그는 가족과 오랜 기간 떨어져 지냈다. 축구 자체를 늦게 시작했고, 티에리 앙리 등이 이미 월드컵 무대를 밟고 있을 때 그는 ‘르망 UC 72’라는 2부
리그 팀에 속해 있었다. 부상 또한 잦아 충분히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틈이 없을 듯했다. 그의 축구 인생은 저절로 주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예와도 같았다.
1978년생인 그의 나이는 마흔 살이다. 그 또래 선수들은 이미 대부분이 은퇴해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더 이상 유럽에서 뛰지 않는다. 미국
프로축구, 그것도 2부 리그 팀인 피닉스 라이징이 그의 소속
구단이다. 얼마 전 그는 LA갤럭시 리저브와의 경기에서 32m 장거리 프리킥 골을 터뜨렸다. 지금 첼시로 복귀해도 주전감이라며
사람들은 그의 플레이에 경외감을 보였다. 그가 걸어온 길도 위대했지만,
지금 모습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는 그렇게 거대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