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은 가혹했다. 노인은 늙어서 죽고, 새 생명들은 태어난다. 카틀레야가 죽고 난 뒤, 베아트리체가 태어났다. 그리고 노재상은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다. 비나는 가슴을 채우는 기이한 울렁거림을 느꼈다. 루크레티우스가 의아한 듯 물었다. “표정이 이상하네. 그 정도로 코르넬리우스에게 의지했었나, 당신이?” 비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실감이 나서 그래.” “실감?” “그래. 내가 정말로 이 세계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실감.” “…….” “당신을 선택하고, 리체를 낳았지. 그때 이미 절절히 느꼈는데, 이제 또 느낌이 달라. 카틀레야 때와 달리 코르넬리우스의 죽음은 자연사니까. 이 세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게 된 기분이야.” 비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내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고 또 죽겠구나, 하는 실감을 했어. 바로 당신의 곁에서.” 그녀의 미소는 더없이 단단하고 또 무거웠다. 대해의 가운데에서 함선이 내리는 닻처럼 묵직한 미소. 그것이 막 다시 일어나려던 루크레티우스의 불안감을 지그시 눌러 주었다. “그래.” 루크레티우스는 마주 웃었다. 전이라면 아마도 여기서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담았다가, 아내에게 등짝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꽤 학습이 빠른 남자다. 이 상황에서 가장 어울리는 대답을 잘 알았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