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저자 소개 김영봉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으며 한문학을 전공하였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졸업했으며,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한때 《경향신문》 교열부 기자를 지냈으며 오랫동안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연세대학교 강사와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위원 및 강사를 겸하고 있다. 대학 외에도 여러 한문 교육 기관에서 경서, 한시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특히 한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옛글 읽기> 칼럼을 월간 《샘터》에 5년간 연재하면서 염량세태를 비판하는 신랄함으로 인기를 모았다. 《김종직 시문학 연구》《궁궐의 현판과 주련》(공저) 등의 저서와 《월정집》《미산집》《점필재집》등 많은 번역서가 있다.
거백옥은 공자도 칭찬해 마지않은 춘추시대의 현인이다. 그런 사람도 늘 뒤돌아보면 지난날이 잘못투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쉰 살에 그랬다는 것은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말이고, 《장자(莊子)》에서는 그가 예순 살 동안 예순 번 변화했다고 하였다. 그만큼 해마다 잘못을 깨닫고 새롭게 변화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위 글은 꼭 쉰 살 되는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흔히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는 여러 가지 결심을 세운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만큼 정신적으로 한층 성숙한 언행을 닦자고 다짐함일 것이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까지는 못 하더라도 ‘연신우연신(年新又年新)’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 p.17~18
남이 나를 사람대접해도 나는 기쁘지 않고 남이 나를 사람대접하지 않아도 나는 두렵지 않으니,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대접하고 사람답지 않은 사람은 나를 사람대접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나는 또한 나를 사람대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나를 사람대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사람다우면서 나를 사람대접하면 기뻐할 만하고 사람답지 못하면서 나를 사람대접하지 않으면 역시 기뻐할 만하다. 사람다우면서 나를 사람대접하지 않으면 두려워할 만하며 사람답지 않으면서 나를 사람대접하면 역시 두려워할 만하다. _이달충의 [애오잠] 중에서 --- p.43
연암 박지원은 《허생전》, 《양반전》 등의 소설로 유명한 실학자이다. 특히 《예덕선생전》, 《마장전》, 《광문자전》 등을 통해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풍자하고 인간의 진실성 회복을 역설하였다. 이 글에서도 그러한 실학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옛날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흔히 양반 또는 선비들이 합리성이나 실질보다는 대의명분이나 겉치레를 더 중시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유학에서는 원래부터 명분보다는 실질을 중시했다. 내용과 형식이 잘 어우러져야 군자라고 할 수 있지만, 부득이할 때는 ‘차라리 촌스럽더라도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논어》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 것이 문제이지, 원래의 본질이 문제는 아닌 것이다. 연암과 같은 태도가 선비 정신을 대변한다. --- p.59~60
“듣자니 큰 집을 ‘옥(屋)’이라고 하고 작은 집을 ‘사(舍)’라고 한다는데, 옥(屋) 자는 ‘시체(尸)가 이른다(至)’는 것이고 사(舍) 자는 ‘사람(人)이 길하다(吉)’는 것이니 큰 집이 화를 받고 작은 집이 복을 받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것은 가히 ‘글자의 예언’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_김정국의 《사재집》 중에서 --- p.64
안자는 공자가 가장 총애하던 제자였다. 공자가 가르친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만 하여 마치 어리석은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가 배운 내용을 실천하는 것을 보면 그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자는 그가 어리석은 것 같지만 어리석지 않다고 하였다. 우리말에 잔꾀를 모르고 우직하기만 한 사람을 ‘고진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들어보기도 어렵고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다. 일부 인터넷 사전에서는 고집 있는 사람, 꽉 막힌 사람으로 풀이하고 ‘좋은 뜻이라고도 나쁜 뜻이라고도 하기 어렵다’는 이상한 언급을 하였다. 이어지는 풀이에서는 ‘옛것을 지키며 진실하고 성실하게 사는 성격의 소유자를 일컫는다’고 하였으니 이 이상 좋은 뜻이 어디 있겠는가. 가치관이 전도된 세상이라 좋은 것을 좋은 줄 모른다. 순우리말처럼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古眞’이란 한자어이다. 《노자》에서는 ‘큰 기교는 졸렬한 듯하다(大巧若拙)’고 하였다. 같은 어법으로 ‘큰 지혜는 어리석은 듯하다(大智若愚)’고 할 수도 있다. 간지(奸智)가 판치는 세상에 한번쯤 음미할 만한 말이다. --- p.74~75
공자께서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한 것은 정치하는 사람을 경계시킨 것입니다. 이런 말은 범연하게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 책 중에 가혹한 정치에 대해서 논한 것이 많지만 이 말처럼 통절한 것은 없습니다. 유종원이 [포사자설(捕蛇者說)]을 지었는데 그것은 이 글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뼈를 깎는 듯한 고통으로 여기는 것으로 가혹한 정치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후세의 임금들이 누가 이 글을 보지 않았겠습니까만, 그래도 가혹한 정치가 많으니 그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읽을 때는 알지만 읽고 난 후에는 곧 종이 위의 빈말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_《승정원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