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풀이 약초이듯이, 그래서 사람의 병을 치유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이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약초이구나. 그래서 다른 이의 삶에 치유의 구실을 해야 하는 것이구나. 그럼으로 내가 살아내는 삶이 비록 하잘 것 없고, 실패와 아픔, 실수와 상실의 연속이라고 해도, 반드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교훈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이구나. 그러기 위해서 사람은 독특한 체험, 자기만의 남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구나. 내가 얻어낸 한 잎 풀의 철학이다.
그림이 있는 풍경
그 여자는 그림을 좋아합니다. 마흔이 갓 넘어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서 세 아이 키우기를 20여 년. 넉넉한 살림이 아닌데도 좋아하는 그림을 위해서는 천금 같은 돈을 내놓습니다. 저의 손아래 동서입니다. 지난 IMF 때 금리가 연 25퍼센트가 되자 차액만큼 이자 소득을 얻기 위해서 제 집을 전세 주고 작은 집을 얻어 갔습니다. 이사하는 것을 거들려고 갔었는데, 좁은 공간이라 그림들을 몇 점씩 포개서 벽을 따라 죽 세워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아끼는 것만 거실 중앙에 걸어놓았습니다. 2호, 4호, 5호짜리 작은 그림들이었습니다.
“이 그림들이 어떤 건데 이렇게 소중하게 거누? 귀하고 유명하고 비싼 것들이야?”
내가 물었습니다.
“그런 것 묻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바라만 보세요.”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쓸데없는 생각하면 그림이 보이지 않아요.”
민망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림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림을 감상할 줄도 모르지요. 생각해보면 그리 궁색한 살림도 아니었는데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문화적 환경을 만들어주시지를 않으셨습니다. 넓은 대청마루에 조부모님의 사진과 액자라고도 할 수 없는 큰 사진틀에 이것저것 스무 장가량의 사진을 넣어 걸어놓았을 뿐입니다. 나는 그림을, 아니 예술을 접하면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림을 모르는 것이 이런 성장 환경 때문인가 자문해보곤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내 아이들을 보면요.
그 애들은 한 술 더 뜹니다. 예술을 모르면 야만인이 되는 세상인데도 제 자식들에게 음악도 미술도 가르치지를 않습니다.
“싫어하는 걸 왜 강요합니까? 억지로 시키는 것 말이에요. 부모들의 문화적 허영일 수 있어요.”
문화적 허영? 그러나 그림을 보며 감동을 감추지 못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나는 인생에서 귀한 무엇을 놓치고 사는 자신을 발견하며 무언지 모르지만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곤 합니다.
“아무 생각 마시고 그림만 보세요.”
동서가 가만가만 말을 합니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그림들을 바라보았습니다.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세 작품이 모두 한 작가의 것이었습니다. 파랑, 노랑, 분홍 연두의 색들이 파스텔보다 짙게 칠해져 있는데, 형태는 그려져 있지 않고 곱디고운 색깔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색깔뿐인 그림을 자꾸만 보니 모자를 쓴 여인이 나오고, 갓 피어난 장미 한 송이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화사하고 맑고 밝고 따뜻한지 한참을 보고 있는 사이 이윽고 내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인중 신부님이라고,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인데 그곳에서 더 유명하셔요. 성화(聖畵)의 대가인 안젤리코의 후계자가 되시는 분이에요. 이 분이 창조해내는 칼라는 정신과 치료에도 쓰여요. 오직 색으로 최고의 미를 창출하신답니다.”
귀국 전시회가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무리를 하면서 제일 작은 것을 구입했답니다.
“신부님의 그림을 보면 슬픔이 달래져요.”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황홀할 정도로 밝고 따뜻한 색들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그녀의 작은 거실을 그렇게 넓고 풍성하게 했는지 깨닫게 되었고, 남편을 먼저 보낸 후 어린 삼 남매를 키워낼 수 있었던 힘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나는 틈이 나면 동서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림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녀도 내 마음을 아는 듯 차 한 잔만 탁자에 놓고 제 일을 합니다. 밝고 따뜻하고 명랑한 기운이 서서히 내게 찾아오고, 그녀의 거실 가득히 햇살이 퍼지는 느낌이 들 때면, 그럴 때면 가당치 않은 욕심 하나가 햇살이 퍼지듯 내 안에 퍼집니다.
‘아아, 저 그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차 한 잔 나누는 것으로 충분히 남에게 기쁨을 주는 그림 같고 싶구나.’
나는 오늘도 그 집을 다녀왔습니다. 금리가 낮아져 더 이상 이자 소득의 의미가 없기에 제 집으로 들어간 그녀의 이삿짐을 함께 풀며 그림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인생에서 귀한 무엇 하나 놓치고 살았던 것을 찾은 듯했습니다. 다시는 그림을 모른다는 말을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