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세계 곳곳의 투쟁과 대응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어디서나 우리는 이런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대중의 건강이 위태로울 때 노동자와 지역주민은 독성 화학물질 사용과 노출, 보건 정보에 대한 “알 권리”를 요구하며, 기업은 “영업 비밀”과 “독점적 정보”를 주장하며 대응하는 모습.
· 기업은 독성 화학물질이 해롭다는 “증거”가 노동자들에게 없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건강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연구는 거부하는 모습.
· 노동조합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전자산업 고용주들의 편견과, 그에 맞서 적절한 노동조건과 존중, 그리고 피해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요구하는 노동자들.
· 제품 생산 때문에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의 환경이나 건강에 어떤 문제가 생기건 상관없이, 단지 광고를 통해 “녹색” 이미지를 선전하며 거대한 전자제품 소비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확보,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의 모습.
·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맹목적으로 공약했기 때문에, 혹은 첨단기술의 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대중이 알게 되면 “경제 기적”의 권위가 훼손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 문제들을 공론화시킨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정부의 모습.
2006년에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이 책은 첨단기술 발전의 “그늘”에 맞서, 특히 전자제품 생산에 의한 노동보건과 환경보건 문제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전 세계 민중들의 역사와 경험을 최초로 한 곳에 모아낸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용기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세계 곳곳의 수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암을 일으킨 노동 조건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 ‘페이즈 투PHASE Ⅱ’라는 모임을 조직하고, 얼마 남지 않았던 여생을 모두 바쳤던 스코틀랜드 반도체 공장 노동자 헬렌 클락Helen clark의 이야기.
· 전자회사들이 식수원을 오염시켰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기업들이 책임을 다하며 미래의 환경오염을 예방하도록 하는 엄격한 법을 신설하기 위해 지역사회를 조직했던 산 호세San Jose의 가정 주부 로렌 로스Lorraine Ross(그녀의 딸은 오염된 물 때문에 심각한 심장 기형을 갖고 태어났음)의 이야기.
· IBM에서 일하다가 암에 걸린 뒤 회사가 그들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책임지도록 요구했으며, 첨단기술 산업에서 세계 최대 규모로 집단 발생한 암 문제의 진상을 규명하도록 용감히 대항했던 노동자 알리다 에르난데즈Alida Hernandez의 이야기.
· 타이완 RCA 공장에서 심각한 직업병을 얻어 고통받았으며, ‘타이완 산업재해 피해자 협회TAVOI’와 함께 사업주를 상대로 정의를 요구하는 투쟁을 조직했던 수백 명의 노동자들 이야기.
· 누구도 통제할 수 없고 지속가능성도 없는 현재 전자산업의 지구적 생산과 폐기 시스템의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서 미국이 유해한 구식 전자제품(전자폐기물)을 중국으로 내다버리고 있는 이야기.
한편 이 책에는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근본적인 변화를 앞당기고 있는 투쟁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담겨 있습니다.
· 일찍이 전자산업의 요람이었던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에서 고통받아온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을 조직하여,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일깨우고 실천했던 ‘산타클라라 노동안전보건센터SCCOSH’와 ‘실리콘 밸리 독성물질 방지연합SVTC’의 이야기.
· 델Dell 컴퓨터 회사에 대중적 압력을 가하여 기업의 정책을 변화시켰던 ‘컴퓨터 되가져가기 운동CTBC’의 델 캠페인.
· 전자산업체들이 보다 지속가능한 행위를 하도록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을 기반으로 투쟁을 조직해온 스코틀랜드, 멕시코, 태국, 인도, 타이완 등 세계 곳곳의 경험들.
· 전자산업의 적대적인 반노동조합 경영 관행에 맞서 노동 현장에서 책임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노동조합들의 이야기.
· 생산자 책임확대제EPR를 통해 친환경 설계를 중시하는 정책을 늘려 전 세계적으로 생산의 본질을 변화시키고 제조업자들이 제품 수명주기를 늘리도록 파급 효과를 낳고 있는 이야기.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저 거대한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꽃같은 나이의 젊은이들이 백혈병으로 툭툭 쓰러지고 있는데, 피해자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회사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만 하고, 정부는 아무 얘기도 해줄 수 없다고만 하는 답답하고 이상한 상황. 우린 반도체 공장의 현실을 알 수 있는 자료라면 무엇이든지 찾고 싶었고, 찾아야만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실리콘 밸리 독성물질 방지연합SVTC 홈페이지를 발견했고, 그 곳을 통해 이 책을 찾았다.”
“반가웠다. 이 책은 누구도 얘기해주지 않았던 반도체/전자 산업의 현실을 자세히 들려주고 있었으니까. 반도체와 전자제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얼마나 해롭고 위험한 화학물질들을 사용하고 있는지. 그런 공장들이 세워졌던 지역들이 환경오염으로 얼마나 고통받아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불임과 유산, 암으로 쓰러져왔는지. 이런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보다 인간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에게 반도체/전자 산업 자본이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
그리고 무서웠다. 몇십 년 전에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시작하여 영국, 동유럽,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거쳐 온 그 이야기들이 지금 한국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책위원회”는 깨달았다.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은 백혈병 뿐 아니라 수많은 질병을 겪고 있다는 것을. 삼성만이 아니라 다른 반도체 공장들에서도 똑같은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반도체공장만이 아니라 다른 전자산업 공장들의 작업환경에도 그리 다르지 않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굳건히 지켜온 “디지털 강국”, “삼성공화국”의 침묵이 이제 서서히 깨지고 있다는 것을. 그 뒤로 “대책위원회”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세기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영국의 그리녹에서 까닭도 모르는 채 암으로 쓰러져간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21세기 한국의 반도체 노동자들과 꼭 같다. “반도체 공장에 오래 다니면 아이를 낳지 못 한다”는 입소문에 두려워하고 실제로 불임과 유산에 고통받은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아메리카와 유럽, 아시아 어디에서나 다르지 않다.
전자산업의 경쟁력은 “NUNS(No Union, No Strike-무노조 무파업)”에 있다는 외국 기업주들의 이야기도, 무노조 정책을 고수하기 위해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마저 제멋대로 짓밟고 있는 삼성의 경영진과 꼭 닮았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해고나 물리적 폭력으로 보복하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전자회사들 이야기를 읽으면, 몇 년 동안 회사의 탄압에 맞서온 한국의 “시그네틱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사연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