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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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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1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496쪽 | 721g | 153*224*30mm
ISBN13 9788932019918
ISBN10 8932019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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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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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노선정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마인츠 대학, 베를린 훔볼트 대학과 자유대학, 콘스탄츠 대학에서 고전그리스어와 라틴어, 천주교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현재 베를린에 체류하며 자유 통·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우리 아이 마음은 건강할까요?』 『언어란 무엇인가』 『헤겔』 『제로배럴』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 등 다수가 있다. 그리고 『예수와 공자Jesus und Konfuzius』(한국어판 최기섭, 김형기 지음)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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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엔 이른 아침부터 로베르트가 우리를 깨웠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 방에 서서 무엇인가를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맨 처음 내 눈에 들어온 장면은 미하엘라의 허벅지였습니다. 미하엘라가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난─너무나도 크게 틀어놓은─라디오 소리를 들었습니다.
로베르트의 목소리, 요란한 전등 불빛, 일기예보─갑자기 난 글을 쓰고 싶은 유혹에 넘어갔던 것을 몹시 후회했습니다. 이제야 난 로베르트가 뭐라고 떠드는지 이해했습니다.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나는 그 사건을 다시 글쓰기에 빠져들었던 데 대한 혹독하면서도, 그러나 정당한 벌이라고 여겼습니다. 난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 위까지 뒤집어썼습니다.
“이젠 아무도 시위에는 나오지 않겠네.” 미하엘라가 투덜거렸습니다. 나중에 나는 인도 위를 걸어가는 그녀의 구두굽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남아 장벽이 무너진 것이 온통 내 책임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내가 너무 늑장을 부렸기 때문에, 내가 얼른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우물쭈물했기 때문이었으니까요. 난 이렇다 할 행동의 근처에라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건 6 대 3의 경기인 셈이고, 후반전에 말도 안 되는 다섯번째 골인을 당한 경우인 것입니다. 다 끝난 경기! K.O. 참패! --- p.208

난 그 노래를 여러 번 불렀습니다. 나중엔 숫자를 셌습니다. 인생이 끝날 때까지라도 숫자를 셀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난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다녔습니다. 그 어떤 비명 소리나 늑대의 울부짖음도 그 순간 갑자기 들려온 귀뚜라미 소리보다 더 내 피를 얼어붙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난 정말로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다고 확신했습니다. 바로 옆 잔디에서. 난 귀를 기울였고 숨을 멈추고 다시 귀를 기울였습니다. 적막은 귀뚜라미를 둘러싸고 있는 보석과도 같았습니다.
“휴” 하고 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휴!” 바로 이 순간 난 내가 뭘 원하는지 깨달았습니다. 그건, 그 어떤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내 인생이었습니다. 난 내 인생을 돌려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내 기억에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내가 너무나 일찍 내줘야 했던 내 인생이었습니다. 내가 행했던 모든 것들은─난 이미 그걸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인생이 아니라 조악한 오해였던 것입니다. 방황 그리고 망상!
만일 그동안 줄곧 나라고 믿어왔던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 어떤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해도 좋았습니다! 난 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새로운 인생을 위해서라면 난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난 권총을 손에 쥐었습니다. 감촉이 따뜻했습니다. 한참 동안 난 그것을 꼭 쥐고 있다가 내게 있던 모든 힘을 다해 그것을 멀리 던져버렸습니다. 내가 나의 참 인생과 바꿀 수 있는 물건이라곤 오직 그것뿐인 것 같았습니다. 난 그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적막이 내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적막이 귀를 꽉 채웠습니다. --- pp.258-259

눈 쌓인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에서 내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었다고 말씀드린다면, 당신은 그런 내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아니, 정말 그랬습니다. 네, 맞습니다. 내 오른쪽 눈이 너무도 아팠기 때문에 울고는 있었지만 사실 난 행복이 느꺼워 운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그걸 설명드려야 할까요?
고통이 나를 깨웠던 것입니다! 그날 밤 십자로에 갔던 이후, 그리고 트로클 아주머니 댁을 방문한 이후로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를 난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난 내 낡은 인생을 등 뒤로 보낸 것입니다. 아니, 더 좋은 표현이 있습니다. 지금에서야 난 비로소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 옛날 원죄를 저지른 이후, 난 언제나 시간이 아까워 벌벌 떨었고 단 한순간이라도 무엇인가에 쫓기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날마다, 매 시간마다 좀더 많은 글을 쓰기 위해, 좀더 많은 문학을 위해, 좀더 많은 작품과 명예를 획득할 목적으로만 살았던 것입니다.
이제야 드디어 난 예술로부터, 문학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그것들과 함께 시간으로부터도 해방되었습니다. 살기 위해서, 즐기기 위해서, 더 이상 창조를 해야겠다는 당위 때문이 아니라, 문득 난 그렇게 거기 그냥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로베르트와 미하엘라가 있었고 눈과 공기, 저 멀리에는 개가 짖는 소리가 있었고 거리의 소음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난생처음으로 지구에 착륙한 후 이 세상 한가운데에 와 있는 사람인 듯, 그렇게 난 그 모든 것들의 인상을 받아들였습니다. 아아, 니콜레타, 당신이 나를 이해하실까요?
가벼운 마음으로, 해방과 행복을 맛보며 난 로베르트를 뒤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오버뢸다에서 개 한 마리가 우리에게 뛰어왔을 ?, 로베르트와 미하엘라가 내 뒤에 숨었을 때, 난 미친 듯이 짖어대는 그 개의 목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곧 내 무릎에 몸을 부비며 눈을 감게 했습니다.
--- pp.31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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