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개념이 처음 학문적으로 사용된 것은 애덤 스미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사용한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용어 때문이었다. 1776년 스미스는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인간은 천국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게 되었을 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생필품과 편의품의 생산증대와 소비증대를 추구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역설했다. 또 그는 ‘국부의 증대’는 분업생산 방식, 자아존중(이기심), 재산소유, 자유경쟁, 시장경제로 달성된다고 주장했다. 개인이 각자의 이해에 따라 판단하여 규제를 받지 않는 자유시장에서 경쟁을 하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작용하여 시장 참가자들의 이익과 국부의 증진을 이루고,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공익도 최대화된다고 주장했다.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경제인’은 매우 현명하고 합리적이지만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으며, 언제나 자신에게 최대의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는 행동을 하기를 원할 뿐 아니라 그 방법도 알고 있다. 즉 자신의 경제적 이익, 즉 부(富)의 증가를 가장 높은 가치로 삼고 행동한다. ‘경제인’은 경제적 만족만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경제적 지위, 경제적 특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성공은 곧 경제인 모델의 성공을 대변한다.
그러나 제1차 대전(1914~1918)과 대공황(1929~1939)을 경험하면서 서유럽 사람들은 그때까지의 인간 모델과 사회 모델인 ‘경제인’과 ‘경제인 사회’가 자유와 평등을 달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쟁과 실업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에 빠진다. 그 틈을 이용하여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최상의 것이자 자율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인간 모델로서 ‘영웅적 인간’ 모델을 제시했다.
---pp. 27-28‘역사에 따른 인간 모델의 변화’ 중에서
개개인들은 제1차 대전과 대공황을 경험함으로써 자본주의 그리고 공산주의의 신조에 대한 믿음의 붕괴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이 두 재난은 개인들로 하여금 기존의 제도, 기관, 원칙들을 변하지 않는 자연법칙으로 받아들이도록 한 일상생활을 파괴했다. 갑자기 개인들은 사회라는 표면 뒤에 있는 진공 상태에 노출되었고, 앞서 말한 사회적 원자들이 되었다. 유럽의 대중은 사회 속의 자기 자신이 합리적이고도 분별력 있는 권력에 의해서 통치되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이고도 비합리적인 악마의 세력에 지배되고 있음을 인식했다.
전쟁은 그 경험을 통해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이 비합리적인 괴물의 세계에 살고 있는 있음을 졸지에 일깨워주었다. 다시 말해, 사회 속에서 인간은 평등하고도 자유로운 구성원이고 각자 자신의 장점과 노력에 따라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사회개념이 환상이었음이 증명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공황은 비합리적이고도 예측할 수 없는 세력들이 평화기의 사회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갑자기 개인은 영구적인 실업의 위협에 놓이게 되고, 한창 일할 때이거나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산업 쓰레기 더미에 내동댕이쳐지는 위협에 처할 수 있음을 경험하게 했던 것이다.
---p. 66 ‘제1차 대전과 대공황이라는 악마’ 중에서
1946년 제2차 대전 직후 토지를 경작하는 일본 인구는 거의 60퍼센트였지만 지금은 8퍼센트로 떨어졌으며, 그것도 노령의 여자들뿐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가난한 소작농 판잣집을 탈출하여 도시로 나아가는 현상은 끝났다. 오늘날 소작농 판잣집은 비어 있고 노동은 사람이 아니라 트랙터가 대신하고 있다. 지중해 국가들은 지금도 잠재적 실업인구와 완전 실업인구가 여전히 많지만, 서부 및 북부 유럽은 더 이상 그들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서부 및 북부 유럽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수는 이제부터 감소할 것이고,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더 이상 정착하지 못할 것이다.
1976년 당시의 드러커는 젊은 사람들은 장기간의 정규교육을 받게 되므로, 육체 작업이 아닌 ‘지식 작업’에 적합한 노동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전통적 분류방식의 노동력, 즉 육체 노동력(특히 수공업)은 향후 25년간 매우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노인인구는 급속히 증가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1935년 미국이 처음으로 전국적으로 사회보장 제도를 실시할 무렵 65세 이상 인구 1명당 미국의 노동인구는 9명이었다. 1980년의 통계수치로 볼 때 미국 노동력이 전례 없이 폭발적인 수준으로 증가한 상황에서도, 65세 이상 인구 1명당 미국의 노동인구는 3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1985년이 되면 1명당 2.5명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노인 컀구의 부양 문제는 차츰 선진국의 첫 번째 관심사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당시 드러커는 은퇴연령을 연장함으로써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무렵 미국에서는 정년 연장을 위한 입법을 이미 준비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적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단지 나이 제한 때문에 일을 못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처사라는 점이다.
이미 많은,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많아질 노인 인구는 은퇴하기를 싫어한다. 대체로 은퇴를 두려워하는 지식근로자에게 그것은 각별한 진실이다. 그 반면 지루하고도 고된 노동을 오래 한 육체근로자는 은퇴를 고대할 것이다. 하지만 은퇴시기를 연장하는 것은 상황을 다소 호전시킬 뿐 결코 문제의 해결은 아니다.
---pp. 137-138 ‘인구 문제’ 중에서
50년 전만 해도 ‘피고용자’라는 말은 영국이나 미국에서 법률적인 용어로만 쓰였다. 그 당시 일반사람들은 ‘자본과 노동’ 또는 ‘경영자와 노동자’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다. 같은 의미의 독일말 ‘공동작업자(Mitarbeiter)’는 잘 사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피고용자’라는 말은 하층의 사무직을 뜻하는 것으로, 스페인어로 ‘고용된 자(employado)’ 또는 독일어로 ‘월급쟁이(Angestellter)’와 같은 의미였다. ‘피고용자’라는 표현은 어색한 말이기도 하면서 확실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같은 의미를 가진 모든 외국어 단어들이 그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최근의 일일 뿐만 아니라 어색하게 사용되고 있다.
피고용자라는 말이 쓰이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런 현상을 표현하는 적절한 설명도 없다. ‘피고용자’를 정의한다면, 고용기관의 일을 하고 돈을 받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피고용자’의 가장 큰 단일집단은 돈을 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미국 성인의 두 사람 중 하나는 비영리 조직의 ‘무보수 피고용자’로 일하는데, 그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세 시간 정도는 무보수로 일을 한다. 그들은 분명히 ‘스태프’이고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원봉사자이지 돈을 받지 않는다. 사실상 ‘피고용자’로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은 법률적인 관점으로는 고용기관에 고용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고용된(self employed)’ 자영업자인 것이다.
100년 전만 해도 고용되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고, 조직이라든가 ‘상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공장노동자 아니면 가정의 하인이나 하녀들이었다. 제1차 대전 전까지 모든 선진국에는 공장노동자들이 수적으로 훨씬 더 많았다. 그들은 가게점원이나 판매인 등이었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영업자’처럼 일했다. 그리고 1913년 각 나라마다 가장 큰 단일집단은 자작농이든 임차농이든 자신을 위해 스스로 땅을 경작하는 농부들이었다.
오늘날 선진국에서 ‘농부’는 소수의 집단이다. 가정부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60~70년 전 ‘독립적’으로 일하던 사람들은 지금은 피고용자 또는 자영업자가 되었다. 그들은 교육받았고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표현하는 어떤 단어가 필요하지만 아직 적당한 것은 없다. ‘자영업자 사회’라는 말이 생길지는 의문이다.
잠정적으로 PCS의 ‘피고용자’를 정의해 두고 넘어가야 하겠는데, “피고용자란 조직에 고용되어야만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두자. 그들이 보수를 받는가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이런 사람들이 ‘자영업자’가 되면 그들은 조직에다가 용역을 제공하거나 조직을 통해 용역을 제공하기 때문에 자기의 역할을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영국의 국립보건원에 소속된 의사, ‘독립적 의료활동’을 하는 미국의 개업의, 회계사와 감사인, 프리랜스 지휘자 또는 기악 솔로이스트 등이다. 이런 사람들은 임금(salary)을 받지 않는 대신 ‘수수료(fee)’를 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 발휘는 마치 그들이 급료대장에 등록되어 있는 종업원과 같이 조직에 대한 접근 여부에 달려 있다.
수입, 교육, 사회적 지위가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일과 역할을 수행하는 능력은 한층 더 조직에 대한 접근 여부에 의존한다. PCS가 ‘조직의 사회’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PCS는 ‘피고용자 사회’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다른 방법이다.
---pp. 188-190 ‘피고용자 사회 또는 자영업자 사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