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눈앞에 이 여자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현의 심장이 지끈거렸다. 이 가느다란 팔이 다른 남자를 끌어안는다는 상상만으로도 머리에 피가 쏠렸다. 그녀를 바라보고, 마음에 품고, 다가가고, 따스한 손을 마주 잡고, 부드러운 입술에 키스하고, 아찔한 장미향을 듬뿍 들이켜고. 자신 외에는 누구도 싫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되었다.
“내가 전에 말했었죠? 채원 씨가 날 완전히 좋아하기 전까지 채원 씨의 끌림도, 망설임도.”
우현이 채원을 제 몸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혹시 모를 흔들림도 전부 모른 척해주겠다고.”
단단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고, 단호한 시선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렇게 말한 건, 이별 때문에 힘든 채원 씨를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난 원래 이기적이고 제멋대로라 기다리고, 배려하고, 마음 써주는 거 잘 못해요. 근데 채원 씨라서 기다리겠다고 한 거예요.”
조급한 듯 고조된 음성이, 하지만 확신에 찬 우현의 목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게 채원 씨 마음이 내게 올 때까지 뒷모습만 바라보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바보 같은 기다림은 이제 그만하겠다고.
“끌림도, 망설임도, 그리고 흔들림도 모른 척해주겠다고 한 말, 정정할게요.”
더 이상 착한 척, 모든 걸 이해하는 척, 상처만 다독거려주는 다정한 남자일 수는 없었다.
“나한테 끌리는 채원 씨 마음, 오려고 망설이는 마음. 더 이상 모른 척 안 할래요.”
그러다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 용서하지 말아요.”
자신에게 이런 말 할 권리, 없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다시 시작하자고, 돌아오겠다고 해도 받아주지 말아요.”
사랑하니까. 그래서 절대 놓칠 수 없으니까.
“울어도 여기서 울고, 웃어도 이 품안에서 웃어요. 그 사람은 안 돼요.”
아니, 나 아닌 다른 누구도 안 돼요.
“난 채원 씨 절대 놔줄 생각 없으니까.”
전에 없던 우현의 강렬한 시선이 그녀를 오롯이 바라보았다.
“내가 채원 씨 붙잡고 있어요. 그러니 내 손 잡고 똑바로 걸어와요. 나한테로.”
그가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 더 이상 채원을 끌어안을 때 늘 했던 실례합니다, 라는 매너의 말은 없었다.
“부탁 아니에요. 어차피 난 채원 씨한테 NO라는 대답, 들을 생각 없으니까.”
--- 본문 중에서
어제도, 일주일 전에도, 그리고 오늘도 늘 같은 마음으로 채원을 사랑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이 사랑을 가슴속에만 넣어두기 아쉬웠다.
“채원 씨.”
그래서 이름을 불렀다. 세 글자만으로도 그의 가슴을 뛰게 하는 여자의 이름을.
“우리도…… 저렇게 지낼래요?”
그리고 고백했다. 평생 당신의 손을 놓고 싶지 않다고.
“우리도 저기 저 젊은 연인들처럼 손을 잡고 바닷가를 함께 걸으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우현이 같은 모양의 외투를 걸치고 바닷가를 산책하는 연인을 가리켰다.
“저기 저 가족들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웃음을 터뜨리고.”
아이의 양손을 나누어 잡은 부모가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자 곧 꺄르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노부부처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나도 주름진 서로의 손을 마주 잡으며 그렇게 살아갈래요? 채원 씨랑 나, 둘이서요.”
진실된 마음을 차분히 털어놓는 우현의 음성이 조금 떨렸다.
“나는 그러고 싶어요. 채원 씨와 함께 웃고, 울고, 다투고, 그렇게 나이 들고 싶어요.”
그 음성에, 노곤한 시선에 채원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채원 씨가 말한 그 기적 같은 일, 내가 함께하고 싶어요. 나요, 우리가 함께 있는 이 기적 같은 시간들을 평생 감사하면서 살게요.”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눈동자에 달뜬 숨이 흘러나왔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 있을 수많은 미래의 시간에도 우리 같이 있어요.”
떨리는 목소리 안에 가득 담긴 진심. 잔잔하게 울리는 서로의 고동이 섞였다.
“얼굴도 몰랐던 첫사랑을 그려왔던 내 과거, 채원 씨 손을 잡고 사랑을 고백하는 지금, 그리고 50년이 더 지나도 곁에서 채원 씨만 바라볼 내 미래까지.”
깍지를 낀 두 사람의 손에 온기가 차올랐다.
“전부 채원 씨에게 줄게요. 하나도 남김없이. 그러니 채원 씨의 미래도 내게 줘요.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사랑을 가득 담은 눈동자가 서로를 응시했다.
“한채원 씨, 나와 결혼해주세요.”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