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누군가의 부인을 “학처럼 늘씬한 여자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다 말고 언짢은 말투로, “네에, 네, 나는 멧돼지 같고요” 하고, 학처럼 아름다운 여자의 흉을 봤다. 난 어머니가 싫었다. 글쎄 내가 보기에도 그 사람은 정말 쭉 뻗은 것이 예뻤는걸. 난 언제까지나 그 사람을 바라보고 싶었는걸.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친구에 대해서, “그 애는 얼굴이 못생겼더구나. 앞으로 엄청 고달플 거다”라고 말하곤 했다. 난 아버지도 싫었다. 그렇지만 난 친구라도 예쁜 아이인 쪽이 좋았다. 나랑 비슷한 정도면 그래도 낫다. 나보다 예쁘지 않은 아이에게는 짜증이 났다. 난 예쁜 아이가 좋은데, 예쁜 아이를 봐도 짜증이 났다.
더 커서, 난 연애란 예쁜 사람만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예쁘지 않은 사람도 연애를 하는 것이었다. 예쁘지 않은 사람이 연애를 하면 음란하게 보였다. 그래서 예쁘지 않은 사람이 연애하는 것을 보면 불쾌했다. 그래서 나는 그저 가만히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연애를 했다. 나 자신이 멋있어진 기분이었다. 단숨에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에 물었다.
“나, 예뻐?”
“얼굴 같은 거 난 신경 안 써”
하고 그 사람은 말했다. 나는 기쁘고 분했다.
그 사람은 내가 연애한 사람과 결혼했다. 나한테 “얼굴 같은 거 신경 안 써”라고 말한 사람과. 난 울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아 그래, 어쩔 수 없지, 글쎄 그렇게 예쁜걸 뭐. 게다가 다정한 눈을 하고 있었는걸. 그러고 얼마 지나서 울었다. 아주 조금. 아무도 밉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쓸쓸해서 울었다.
이시다는 파를 닮았다.
파의 뿌리 같은 머리를 가늘고 긴 몸 위에 얹고, 파의 잎 같은 다리를 휘청휘청 앞뒤로 움직이면, 그것이 이시다가 걷는 모습이다. 때때로 파 전체를 신문지로 싼 것 같은 코트를 입는데, 그때는 아직 여물지 않은 야쿠자 똘마니로 보인다. 게다가 새카만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니 정말 어느 조직에 속한 젊은 양아치인가 싶다. 물론 나는 실제로는 그런 젊은 양아치를 한 명도 아는 바가 없으니 실제로 조직에 속한 사람은 좀 더 건실하고 빈틈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발코니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저거, 에게 해라고. 웃음이 절로 나오네. 아무한테도 말 안 했지만, 내 새 그림책, 앞으로 10만 부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따라잡는다니까. 앗하하하. 사쿠라가오카의 은행에서 매일 달그락달그락거리며 컴퓨터가 내 통장의 0을 늘리고 있을 거다. 앗하하. 언제 죽어도 좋아. 여기는 돈 쓸 일도 없으니 더 좋네.
나는 곰 우리 앞에서 곰 사진을 찍었다. 곰은 거의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두 발로 일어서거나 우리를 신기한 듯이 보거나 했다. 그러다가 풀썩 양다리를 앞으로 뻗고 앉아 하품을 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달려가 다른 곰과 치고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이서 하늘을 쳐다보고 쿠오오 쿠오오 울부짖었다. 온몸의 가죽이 굼실굼실 펄럭였다. 그러고는 따분하다는 듯이 털썩털썩 네발걸음으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온천욕을 하는 할아버지 같은 얼굴을 하고 눈을 멀뚱멀뚱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늘 신문을 보면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재를 재떨이 바깥에다 털곤 했었지. 나는 노상 “봐요, 재는 재떨이 안에다 떨어야죠” 하고 잔소리를 했다. 난 그 사람의 얼굴이 좋았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밖에 나갔을 때는 키 크고 좀 잘생긴 그 사람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이거 내 거야 하는 얼굴을 하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난 물에 비친 달을 휘젓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데도 나는 깔깔 웃으면서, 이걸 어쩌지, 귀찮게 됐네, 난 고등학교 정말 싫었는데 하는 생각을 한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불편할 것 없었던 고등학교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연락책이야.”
“탁월한 총무였으니 어쩔 수 없지.”
이건 꽤나 대담한 어림짐작이다.
“어머, 너 잘도 기억하는구나.”
내가 생각해도 놀랍다. 맞혔다.
“정말이야. 그래도 드디어 끝났어. 정말이지 그야말로 이건 경험해본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말해줘도 모를 거야. 우리 집은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둘 다 치매가 왔어. 두 분이 차례로 죽을 때까지 8년 걸렸어. 치매가 겹친 기간이 1년 반. 하나는 밖으로 튀어나가지. 순찰차 부르는 사이에 다른 하나가 응가를 벽에 문질러 바르지.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니까. 하지만 다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거짓말 같아.”
“넌 시아버지였으니까 정말 힘들었을 거야. 나는 친정엄마. 놀랐던 게, 글쎄 손님이 와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나 싶더니 엄마가 옷을 홀랑 벗고 서 있는 거야. 그래도 신통하게 두 손으로 앞은 가리고 있었어.”
“어머나, 가리는구나. 그렇게 돼도.”
가오루는 굉장하다. 첫째로, 키가 173센티미터인 것이 굉장하다. 그 장신을 당당하게 한껏 꾸미는 것이 훌륭하다. 싸구려 티셔츠에서부터 잇세이미야케까지를 종횡무진 누비는데, 머리는 대담하게 1.5센티미터 길이로 자른 빠글빠글 파마머리다. 패션모델로 보이지 않는 건 머리가 조금 크기 때문인데, 따라서 얼굴도 크고 그래서 입술도 당연히 거대하다 해도 좋다.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 큰 입술에 착실히 립스틱을 바른다.
아오야마 거리를 황새걸음으로 휙휙 걸어가면 시골 촌놈은, 과연 도쿄야, 멋있는 여자가 있어, 하며 관광버스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감탄하게 마련이다. 돈 씀씀이도 대단하다. 55만 엔을 갖고 나가 20년대의 스팽글 달린 꿈같은 앤티크 드레스를 한꺼번에 세 벌을 사온다.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가도 돼?” “언제?” “지금.” “아니, 일은 어쩌고?”
가오루는 전화 너머에서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지금 갈게.”
인간이란 한심하고 딱하며 삐딱하고 종잡을 수 없는 존재라서, 이런 전화가 걸려오면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온몸에 힘이 넘치기 시작한다. 나는 갑자기 기운이 넘쳐서 냉녹차를 만들고 냉장고의 멜론을 꺼내 의욕적으로 자른다.
173센티미터의 여자는 불량한 선글라스를 끼고 현관으로 들어왔다.
“미안. 아무리 해보려 해도 일을 할 수가 없는 거야.”
선글라스를 벗으니 눈이 붓고 붉어져 있다.
“뭐 마실래? 녹차가 좋을까, 커피로 할까?” “다 필요 없어.” “멜론도 있는데.” “필요 없어.” “어떻게 된 거야?” “아키라가 바람을 피웠어.”
좋았어. 기대했던 대로다.
“그게 말이지, 아키라가 아니라 그 여자 쪽이 아키라를 건드리는 모양이야. 아키라가 난처한가봐. 갈팡질팡이야.”
피 솟고 살 떨리는 굉장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나 웬걸, 덩치 큰 가오리가 느릿느릿 천천히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아-함 아-함 아-함 하고 하품이 나오려고 한다.
“끔찍한 얘기지. 그 여자는 이름이 아오야마 유미코래. 프랑스어 번역을 하면서 완전히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 결혼 생각은 없지만 아이는 갖고 싶다고 한대. 그것도 아키라의 아이를 원한다는 거야.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해?”
“정말 너무하네.”
하지만 나는 소파 위에서 그 피 솟고 살 떨리는 드라마를 들으면서도 이제는 몸이 옆으로 축 늘어져서 쿠션을 끌어안는다.
마치코는 미국 회사에 다닌다.
“너, 영어 가르쳐줄래?” “좋아” 우리 집의 지저분한 3평짜리 방에 나는 친구를 한 명 더 불러서, “디스 이즈 어 펜”을 시작했다. “안 돼, 다시.” “아아아-, 한 번 더” 하고 마치코는 제법 엄격하다.
“미스 오가타? 하우 올드 아 유?” “아임 서티포-. 앤드 하우 올드 아 유?” 돌연 마치코는 탕 하고 책상을 치고, “돈트 애스크 미” 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와아, 대단하다. 깜박 하고 말할 만도 한데, 절대로 자기 나이 말 안 하네.”
신은 마치코를 버리지 않았다. 교양, 지성, 사회적 지위, 감성 나무랄 데 없는 남자가 마치코의 연인이 됐다.
“그 사람, 이상해.”
“왜?”
“오면 바로 날 만지고 싶어 해.”
“당연하지.”
“어라-, 모두 그래?”
“당연하지요.”
“글쎄, 마치 그것만을 위해서 오는 것 같다고.”“좋잖아. 고마운 일이야.”
“나는 좀 더 로맨틱하게 하고 싶은데.”
“예를 들면?”
“음악을 황홀하게 듣는다든가.”
“음악을 황홀하게 들으면 만지고 싶어질 텐데.”
“징그럽잖아.”
“글쎄, 징그러운 짓을 하고 싶어서 연인을 만드는 거 아닌가?”
‘여차’ 할 때에 ‘남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차’ 할 때를 위해 남자는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 마치코의 유일한 철학이며 신념이며 사상이며 결의이며 강박관념이며 알기 쉽게 말하면 입버릇이다.
“미국인 훈남한테서 식사 초대를 받았어. 이게 웬일, 하고 의욕이 넘쳐서, 회사 휴가 내고 미용실에 가고 온 집안을 뒤집어놓으면서 옷 골라서 거울에 비춰봤더니 말이야, 가슴이 좀 부족한 거야. 그래서 브래지어를 두 개 했어. 그리고 멋지게 호텔 오쿠라에서 풀코스로 식사를 했어. 식사가 끝나자 방에서 술 마시자는 거야. 좋-아, 좋-아 하고, 신이 나서 방까지 갔어. 당연히 분위기가 그럴듯해졌는데, 난 헉 하고, 집에 갈래요 하고 서둘러서 돌아왔어. 완전 실수였어.”
“뭐가?”
“브래지어를 두 개 했잖아. 하나만 했어야 했는데.”
“아이고, 브래지어 두 개는 됐고, 기요시는 어떡할 거냐고 기요시는?”
“여기서 기요시 얘긴 왜 해? 뭐 어때? 나 좋다는 사람 있으면 신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아, 그 사람이 이번에 홍콩에 같이 가자고 하는데, 그 사람 브래지어 한 개면 지난번하고 다른 거 알아차릴까?”
알게 뭐냐.
“네가 부끄럽다고? 좀 더 근본적인 걸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해, 난.”
“근본적인 거라니 뭘?”
아-아-아-.
말해줄까? 넌 인색함과 욕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어. 한 번쯤 선물을 가져와 봐. 아니 한 번쯤 랩에 1회 분량의 녹차라도 싸서 가져와 본 적 있어? 몇 십 년이나 밖에서 밥 먹을 때 넌 내게 밥 한 번 사주는 건 고사하고 네가 먹은 밥값도 낸 적이 없어. 넌 뭔가 호르몬 부족으로 정서가 메말라서 남자한테 빠지지도 못하고, 그런데도 아예 연애감정이란 게 없어서, 그걸 별로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아 분해라. 내 월 수입의 세 배는 되는 월급을 받잖아. 한 번쯤 나한테 밥을 사라고.
“하지만 계속 자유롭게만 살다 보면 가끔은 어디엔가 매이고 싶어. 난 헌신하는 타입이야.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그야말로 이루 다 쓸 수 없을 만큼 남아돌아. 그런데 기요시는 뭐든 스스로 하는 사람이라 내가 헌신해서 해줄 게 없어. 나 남자가 그렇게 부지런한 거 좋아하지 않아. 남자답게 그냥 떡 하니 버티고 있어주면 좋겠어. 내가 헌신할 수 있게. 아-아- 헌신하고 싶어라.”
“그렇게 남아돌면, 나한테 헌신해. 난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으니까.”
“어머, 싫어. 어이없어.”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