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영혼을 끌고 시대의 벼랑을 넘어가는 그
외로운 영혼을 끌고 시대의 벼랑을 넘어가는 그의 발걸음은 눈물겹다. 역사의 부름 앞에 한 번도 몸을 피하지 않은 채 응답하고 서 있는 그의 투쟁은 견결하다. 그런데도 그의 시는 서늘하다. 그리움이 메밀꽃밭처럼 출렁이고, 시심이 젖은 꽃잎처럼 촉촉하다. 슬픔과 분노가 속수무책으로 흘러넘치는 이 야만의 시대에 따뜻한 시인 한 사람 내면 깊은 곳에서 불러내어 길마다 동행하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오랜 농성과 시위와 수배와 연행과 폭력 속에서도 싸움꾼으로 마모되어 가지 않고, 시인으로 돌아오곤 하는 그의 여린 시심과 맑은 눈빛에 경배한다. 그래서 그를 더욱 신뢰하게 된다.
도종환(시인)
눈물에 인색해진 세상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는 사나이
이수호는 빈들에 부는 바람이다. 형체 없이 움직이는 힘이다. 자국을 남기지 않는데도 그 자취는 사라지지 않는다. 높은 산을 태연히 넘고 깊은 강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건너편 나루터에 어느새 누구보다 먼저 이른다. 가던 길 멈추게 하는 바위에도 온화하게 스며들고 때로 이름 없는 풀잎으로 솟아나 민초(民草)의 노래를 온 몸으로 부른다. 역사의 자갈밭을 맨발로 걷다가 상처투성이가 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잔잔한 웃음을 끝내 잃지 않는다. 눈물에 인색해진 세상에서 그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 사나이다. 그 가슴에 또한 무슨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에 이토록 뜨거운 시를 토해내는가? 자기를 살라 어둔 밤 촛불이 되는 사람이여, 갈대숲 흔들리는 날 우리의 그리움이 되는 이여.
김민웅(성공회대 교수)
고통의 골목골목을 맨발로 묵묵히 쓰러지듯 걸어간 자만이 쓸 수 있는 시
이수호의 시는 아프다. 그의 시를 읽으면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에 강하게 머리를 맞은 듯하고 연약하나 날카로운 풀잎에 깊숙이 살을 베인 듯하다. 그의 시에서 전해져오는 맑은 통증은 참고 견딜 수 있을 듯하기도 하고 그만 견딜 수 없어 땅바닥을 나뒹굴게 하기도 한다. 그의 시 곳곳에는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초들의 고통의 눈물이 먹물처럼 번져 있다. 누가 이 먹물 같은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이수호는 시로써나마 이 눈물을 닦아주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을 것이다. ‘더 낮은 데로’ 찾아가는 순수한 한 줄기 바람 같은 그로서는 시를 쓰지 않고는 하룻밤인들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시는 그만이 쓸 수 있는 체험적 구체의 소산이다. 이 시대의 고통의 골목골목을 맨발로 묵묵히 쓰러지듯 걸어간 자만이 쓸 수 있는 시다. 나는 그의 시가 상처 많은 우리의 비극적 삶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모성의 손길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수호 시인과 함께 대구계성중학교를 다니던 그 고운 시절이 그립다.
정호승(시인)
전태일 엄마에게 이수호는 그저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한결같은 사람”
내게 이수호는 시인이 아닙니다. 시집을 두 권, 세 권 낸다 할지라도 이 전태일 엄마한테 이수호는 시인이 아닙니다. 물론 이수호는 노동운동가가 아닙니다. 전교조 위원장을 하든 민주노총 위원장을 하든 내게 이수호는 노동운동가가 아닙니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을 하든, 그보다 더 높은 일을 하든 내가 아는 이수호는 정치가도 아닙니다. 배움 없이 거리에서 여든이 되도록 쌈밖에 할 줄 모르는 이 전태일 엄마에게 이수호는 그저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한결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이수호는 칭찬을 한다고 해서 오만하지 않고, 비판을 한다고 해서 도망가지 않는 사람이다.자리를 차지하려고 바동거리지 않고, 낮고 궂은 자리라 해서 피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 사랑의 마음을 갖고 찾아가고, 사랑이 필요한 곳에 미약한 힘이라도 되려고 기꺼이 한 사람이 되어 찾아간다.
이소선(여사)
이수호의 바발은 사람의 꿈을 바투(현실)로 빚어내는 꽃
나는 찰(시)이란 한낱 겨드랑이에 닫혀 조물락대는 따슴이어선 안 된다. 스스로 열고나서는 한데. 비바람에 꺾이고 깡추위에 얼어터지면서도 쭈빗하고 돋히는 살갗 같은 한데의 꽃이어야 한다. 입때껏 그런 생각을 해왔었다. 그러나 이참부터는 그따위 어설픈 나발 따위는 엎어버려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러면 참짜 찰이란 무엇이드냐. 알맥(노동)이다. 그것도 쓰잘(물건)만 만들어내는 한미적(단세포) 같은 알맥이가 아니라 목숨 아닌 것과 맞짱을 떠 끝내 이겨버리는 사람의 꿈을 바투(현실)로 빚어내는 꽃이 곧 찰이라는 것을 이수호의 바발(작품)을 읽으면서 비로소 깨우쳤음을 털어놓는다.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