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은 참 추웠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을 갈무리해가던 정월 보름날 아침, 나는 얼어터지는 손을 비비며 우리 집 왕골논에 차려진 꽃상여 앞에서 타오르는 모닥불에다 철없이 떡을 구워먹었다. 집에서는 “아이고! 아이고!”하는 곡소리가 내 귓전을 파고들었건만, 어린 나는 유독 속이 없었나보다. 간밤에는 헛간에 안치된 꽃상여가 무서워 뒷간에도 가지 못했다. 이제 아버지가 영영 내 곁을 떠나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째서 그렇게 속이 없었을까. 그 날 따라 바람은 참 사나웠다. 아버지를 태우고 갈 상여가 상여틀에 묶이기도 전에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쓰러지고 뒤집히고, 왕골논 곳곳에 꽂혀 있던 명절이며 하얀 상여꽃도 날아갔다. 아버지가 누우신 널(관)이 우리 왕골논으로 나왔고, 그제야 나는 무엇인가 홀린 듯 “아부지! 아부지!”하면서 먹던 떡을 내동댕이쳤다. 형은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상여 앞에 서서 산모퉁이로 사라지고, 울다 지친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질질 끌려 집으로 가더니 이내 아버지의 묵은 옷을 들고 나와 왕골논, 내가 떡을 꿔먹던 그 불에다 던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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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나는 명상에 대한 책을 끼고 살아간다. 날마다 똑같은 문장을 읽고, 내 자신하고 비교하며 마음을 비우려고 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돌아서기만 하면 불안하고 초조한 생활의 궤도 속으로 다시 들어오고야 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명상가들이 가르쳐준, 가장 편안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편안하고 즐거웠던 순간들…… 그건 놀랍게도 모두 다 어린 시절의 기억뿐이다. 먹거리도 넉넉하지 않았고 늘 일과 함께 살았으면서도, 그 가난했던 시절이 가장 아름답게 살아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놀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놀이에 푹 묻혀서 살았던 그 시절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나라는 인간은 애당초부터 출세니 명예니 돈이니 하는 것들하고는 거리가 먼 족속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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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일하다가 지쳤을 때, 소나무 밑에 누워보라. 소나무의 시원한 그늘에서 어딘가에서 불어온 바람의 감촉을 느껴보라. 내 동무 같고, 어머니 같고, 할머니 같은 소나무여. 그 나무들이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말 안타깝다. 고향 뒷산에 가보아도 예전만큼 소나무가 없다. 이제는 아무도 성가시게 하지 않지만 소나무들은 사라져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서울 우리 집 뒤에 있는 북한산에 올랐다. 그냥 묵상하듯이 천천히 산길을 가는데, 옆으로 가로누운 커다란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조선솔이었다. 한바탕 불에 그을리고, 비바람에 부대끼다가 옆으로 쓰러진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소나무는 죽지 않고 수많은 가지를 내밀고 있었다. 길게 누워있는 온몸에서 잔가지가 돋아나고, 가지마다 아주 통통한 솔방울이 달려 있었다.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하였다. 그래,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이것이 희망이구나. 나는 소나무의 강한 힘을 믿기로 하였다. 수천 년간 우리네 땅에서 악착스럽게 살아온 그 힘을 믿기로 하였다. 소나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두고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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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이른 봄날이었던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문중산에 올라가서 생솔가지를 찍어대는데, 어머니가 <어이새>와 비슷한 민요를 흥얼거리셨다. 한동안 그 노래를 듣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 마을 앞에 있는 철성산에서 하얀 눈이 몰려오고 있었다. “엄마, 눈몰아 와. 어서 가아!” 하고 말하자, 어머니는 오히려 살짝 웃음을 띠며, “봄눈은 역부로(일부러) 맞기도 허는 것여. 눈이 옹께 을매나 좋냐. 눈아 눈이 오그라. 펑펑 오그라. 우리 아들 나무하러 가지 못허게 눈아 눈아 펑펑 오그라.” 하시면서 물오른 소나무 윗가지를 자라서 겉껍질을 벗겨낸 후 속껍질을 벗겨 먹었다. 그리고는 나한테도 내밀었다. 소나무 속껍질을 ‘송쿠’, ‘송기’라고 한다, 나도 어머니가 발라준 송쿠를 처음 먹어보았다. 송쿠는 단맛이 우러나지는 않지만, 지치고 허기진 입을 달래주기에는 충분하다. 그렇다고 많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약간 떨떠름한 맛이 나므로 하나 정도 먹으면 그만이다. 좀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소나무 껍질을 벗겨다 물에 담가 송진을 우려낸 다음 쌀을 드물게 섞어 죽을 끓이거나 솔기떡을 해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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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도 삶이 있다. 어떤 풀은 유독 아이들하고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또 어떤 풀들은 유독 어머니들하고 부대끼며 살아가고, 어떤 풀들은 유독 할머니들하고, 또 어떤 풀들은 유독 남자들하고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또 어떤 풀들은 유독 소나 토끼들하고 부대끼면서 살아간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아주 귀하고 꽃이 예쁜 야생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농가 주위에 살면서 사람들이나 동물들하고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풀과 나무들의 삶. 어머니 몰래 마당을 뒤덮고야 마는 질경이들, 농부들이 뿌리째 뽑아서 논 밖으로 내던지면 척박한 길 옆에서 오기로 살아가는 피, 생솔가지를 아궁이 가득 넣어놓고 거적때기로 이를 악물고 부쳐대는 어머니의 눈에서 뿜어나오는 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면 내 자신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속의 하나인 나를, 그런 나를 맨 처음에 쳐다보신 어머니 같은 눈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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