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한중 근대 소설 비교 연구

한중 근대 소설 비교 연구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정가
18,000
판매가
18,000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지역변경
  • 배송비 : 무료 ?
  •  국내배송만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153*225*20mm
ISBN13 9788968174551
ISBN10 896817455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왕가
옌타이 대학교 한국어과, 동 대학원 한국어과 졸업공주대학교 대학원 석·박사과정 수료, 문학박사웨이팡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논저로 「일제강점기 재중 조선인 소설 연구」, 「재만시기 안수길 소설 연구」, 「만주국 시기 한·중 소설의 현실대응 연구」 등이 있음.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제1장

들어가며

1. 문제 제기

중국과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나라일 뿐만 아니라, 근대에 접어들어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 동병상련의 아픔과 폐해를 겪었다는 점에서 정치?사회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망 속에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의 경우 국토의 절반이 일제의 침탈을 당했고, 특히 만주로 불리던 동북 3성 지역은 일제의 괴뢰정부 만주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한반도는 36년 동안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핍박을 받았다. 말하자면, 이 시기의 중국과 한국은 운명처럼 교집합으로 뒤섞여 있었던 것인데, 만주지역은 바로 이런 교집합의 대표적인 지역이고, 만주국 시기는 대표적인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동북지역인 만주지역은 중국과 한반도를 연결하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지난 백년간 동아시아 변동의 중요 진원지”이며 만주국 건립으로 “20세기 전반 운명적인 서양과의 대결을 벌이는 일본의 가공할 만한 경제적 대동아공영권의 바탕”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만주지역은 동북아의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이전의 만주는 권력 공백의 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청나라 정부는 청 왕조의 ‘발상지’인 만주를 온전히 지키고, 만족(滿族) 고유의 풍습을 유지 계승시키고 만족 토착민의 생계를 보호하기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1651년부터 20여 년에 걸쳐 변경 일대에 담을 쌓고, 평민 특히 한족(漢族)의 동북 3성에 대한 출입을 금지하는 봉금(封禁) 정책을 실시한다. 이 정책은 이후 200여 년 동안 지속되는데, 20세기 초 청나라 국력이 피폐해지고 일본과 서구 열강의 중국 진출이 본격화함에 따라 자원이 풍부하고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만주지역은 러시아?일본 등 열강의 각축장이 된다.
19세기 말,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해 서구 열강과 같은 이른바 강대국 대열에 들어선 일본은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지배하기 위해 중국을 의도적으로 침탈하기 시작한다. 1904년, 일제는 “한국과 만주 지배를 둘러싼 제국주의의 패권 다툼”이며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일본의 대륙정책이 충돌한 결과”라고 지적되는 러일전쟁에서 승리, 러시아가 만주에 대해 가지고 있던 권리를 이어받게 된다. 그리고 1910년 대한제국을 식민화시킨 일제는 중국 특히 만주지역을 점령 지배하기 위한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서구 열강이 동북아 지역에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는 기회를 틈타 무력과 외교 수단을 이용하여 중국 진출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산동(山東) 반도에 군대를 출동시켜 압박을 가하고, 1915년에는 원세개(袁世?) 정부와 [이십일조(二十一?)]라는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는데, 이 조약에 의해 일제는 만주지역에서 광산개발권과 상조권(商租?)?철도부설권 등을 강탈한다. 1931년, 일제는 재만 일본인과 조선인 이주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키고, 만주 침략의 진상을 엄폐하기 위해 중국 마지막 황제인 부의(溥?)를 앞세워 괴뢰정부 만주국을 세운다. 그리고 이른바 ‘왕도낙토(王道樂土)’ ‘황도정신(皇道精神)’ 등의 구두선(口頭禪)으로 만주 인민을 호도, 기만적인 식민정책을 실천해나간다. 만주지역을 중국 침략의 거점으로 삼은 일제는 경제적 약탈과 함께 만주 인민을 핍박하여 일본어 사용을 강요하고, 교육과 문화 등 각 방면의 철저한 통제를 통해 민족의식을 말살시키는 정책을 실시한다.
한편, 만주국 시기의 만주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충돌하는 혼종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토착 민족인 만족(滿族)?몽골족?오르첸(Oroqen)?골디(Goldie)?허저족(赫哲族) 등을 비롯하여, 봉건정책의 폐해와 자연 재해로 인해 살길을 찾아 만주로 이주한 한족(漢族), 러시아 혁명 이후 만주로 망명한 러시아인, 일제의 식민통치로 토지를 빼앗겨 만주로 건너온 이주 조선인, 그리고 사회지도층으로 행세하는 일본인 등이 거주하고 있었다.
조선인의 만주 이주는 1895년 간도에 인접한 함경도 주민들의 간도 개간에서 비롯한다. 이때는 국경지대 주민들이 봄에 간도로 건너가 농사를 짓고 가을에 수확하여 돌아오는 이른바 ‘월경(越境) 이민’, 정부의 엄격한 ‘월경 금압’ 정책에도 불구하고 봉건 관료의 착취를 피해 이주해가는 농민이 주를 이루지만, 한일합방 이후 수많은 우국지사들이 항일 투쟁을 목적으로 만주로 넘어 온다. 특히 3?1운동 이후 조선인의 만주 이주가 급증하고, ‘만주사변’ 이후에는 일제의 이른바 ‘축방(築防) 정책’에 따라 ‘만주 개척민’이라는 미명하에 이주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데, 1930년 말에 이르러서는 이주 조선인 수가 60만 명에 이른다. 말하자면, 조선인의 만주 이주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밀접한 관계 아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일제의 한국 침략은 1876년 강화도조약 12개조, 1905년 외교권을 강탈한 제2차 한일협약, 그리고 1910년 국권을 늑탈한 합병조약으로 이어진다. 이는 이른바 ‘정한론(征??)’을 기반으로 하는 침략정책에 따라 치밀하게 진행된 것인데, 그 결과 한국은 36년 동안 식민지로 전락한다. 이후 일제는 식민지 지배정책의 일환으로 토지를 강탈하고 각양의 방법으로 수탈을 자행한다. 1907년부터 1918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실시된 토지조사사업으로 토지를 약탈하고, 1920년 이후 한국으로부터 식량 및 원료 공급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선 산미증식(朝鮮産米增殖) 정책을 실시하여 농촌을 피폐화시킨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농민들이 토지를 빼앗겨 생존 그 자체가 위협받는 절대 빈궁에 놓이게 된다. 농촌의 빈민화→이농(離農)?이민으로 이어지는 농민의 궁핍은 일제가 주도면밀하게 실시한 빈민화 정책의 결과적 현상이지만, 농민들은 정든 고향을 등지고 남부여대하여 만주로 떠나거나 화전민이나 유랑민(流浪民)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었다.
일제의 수탈로 생활 터전을 잃은 농민들은 살길을 찾아 만주로 건너갔지만, 조선인 이주민의 만주 이주는 순조롭지 않았다. ‘간도협약’(1909) ‘만몽(滿蒙) 조약’(1915) ‘삼시(三矢) 협정’(1925) 등 청 정부와 일본의 이주 조선인에 대한 정책들이 이들의 생존을 위협한 것이다. ‘간도협약’ 이후 중국과 일본의 이중 통치를 받던 이주민들은 ‘만몽 조약’ 이후 이중국적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무국적자로 전락한다. 이 때문에 조선인 이주민은 중?일 양국 사이에서 끼어 하층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만주국 건국 이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만주국 정부는 “수전 개척에 뛰어난 조선인의 능력”을 필요로 했지만, 그러나 ‘오족협화’ ‘왕도낙토’라는 정책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일제는 인위적으로 토착 중국인과 조선인 사이의 민족 갈등을 조장하고, 중국의 반만(反滿)?항일 세력은 조선 이주민을 일제 앞잡이로 인식하게 됨에 따라 이주 조선인들은 양난적(兩難的) 곤경에 빠지게 되고, 그만큼 조선인 이주민의 생존 조건은 더욱 곤궁해진다.
재만 조선인 작가들은 이러한 조선인 이주민의 생존 조건과 현실에 각별히 주목한다. 재만 조선인 문학은 만주국 건국 이후 한반도의 문화인과 지식인들이 다수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1933년 ‘북향회’가 용정(龍井)에서 창립되고, 동인지 『북향(北鄕)』 창간과 함께 각종 문학 강연회와 토론회 등을 통해 재만 조선인 문단이 형성된다. 재만 조선인 문인들의 창작열을 고양시킴으로써 재만 조선인 문단의 주요 활동무대를 이루던 『북향』이 폐간(1936)된 이후, 재만 조선인 문학은 1937년 창간한 『만선일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특히 1940년을 전후하여 일제의 탄압으로 한반도 조선의 신문?잡지들이 강제 폐간됨에 따라 작품 발표의 지면을 빼앗긴 수많은 시인?작가들이 간도로 이주하여 창작 활동을 벌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만주국의 기관지인 『만선일보』를 중심으로 ‘망명 문단’을 이룬다. 당시 『만선일보』는 고문 최남선을 비롯하여, 염상섭(편집국장), 박팔양(사회부장 겸 학예부장), 그리고 안수길?신영철?윤금숙 등이 기자로 재직하였다.
또한 『만선일보』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한 문인으로는 강경애?현경준?박영준 등의 작가, 유치환?모윤숙
?김조규?김달진 등의 시인, 그리고 극작가 김진수 등이 있는데
안수길은 이 시기 재만 조선인 망명 문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작가이다.
안수길은 만주국 시기 재만(在滿) 조선인의 만주 이주와 정착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조선인 이주민이 만주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각별히 주목, 이주 조선인의 이주?정착과정과 간고한 삶을 주제화하여 소설에 담아낸 작가이다. 이 시기 작품으로는 ?장?(1936)을 비롯하여, ?차중에서?(1940) ?벼?(1940) ?새벽?(1941) ?원각촌?(1942) ?목축기?(1942) 『북향보』(1945) 등이 있는데, 이들 작품은 이주 조선인의 수난사이며 간도보고서로 평가되고 있다. 안수길은 1924년 만주로 이주한 이후 1945년 6월 건강 악화로 귀국하기까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가족과 함께 용정?장춘 등 만주에서 거주하며 “체험을 바탕으로 재만 조선인들의 삶의 방식을 다양한 시각으로 형상화한 대표적인 재만 조선인 작가이며” 따라서 ?새벽?에서 『북향보』에 이르는 재만 시기 안수길의 소설은 “재만 조선인의 이주 정착사에 다름 아니다”고 할 수 있다. 재만 시기, 즉 만주국 시기의 안수길 작품으로는 “호미와 바가지와 피땀 이외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전기간민(前期墾民)의 참담한 생활상을 회두추억(回頭追憶)하는 일종의 ‘이민 수난기’”라고 볼 수 있는 단편소설집 『싹트는 대지』, “재만 조선인의 생활을 건국 이전에 소급(遡及)하여서부터 기(起)하여 오늘(1944년, 필자 주)에 이르기까지 단편적으로 발굴 기록한” 단편소설집 『북원』, “간도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일제강점기 모국어로 쓰여진 마지막 소설”인 장편소설 『북향보』 등이 있다.
안수길 소설은 초기, 즉 재만 시기부터 ‘시대적 연결’을 여과 없이 선악 그대로 서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주에서 같이 일했던, 학생시절 일본 감옥에서 조선은 왜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라는 항의문을 쓴 리얼리즘적 작가 염상섭보다도 민족적 리얼리즘이란 면에서 우월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안수길은 평생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면서 일관된 작품세계를 펼쳤다고 할 수 있다.
만주국 시기 재만 중국인 문학은 재만 조선인 문학과 공시?공역(共域)적으로 생산된 문학을 말하며, 동북 윤함구(?陷?) 문학 또는 윤함시기 동북문학이라 불리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일제는 [마관조약(馬關條約)](1885)을 통해 요동반도를 점령하게 되고, 러시아는 [중아밀약(中俄密?)](1896) [여대조지조약(旅大租地??)](1898)으로 동청철로(???路)를 부설하여 여순(旅?)과 대련(大?)을 조계지로 얻는다. 또한 러일전쟁과 ‘만주사변’ 이후 중국의 동북지역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 민족문화와 외래문화, 그리고 식민지문화가 격렬하게 충돌하여 복잡한 세태를 빚어내게 된다. ‘윤함구 문학’ 즉 재만 중국인 문학은 이와 같은 복잡한 세태를 바탕으로 형성되는데, ‘5?4운동’ 이후의 중국 현대문학의 모체와 연결하여 발단(發端)하다가 만주국 건립과 함께 교류가 차단되고, 일제의 탄압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0건) 회원리뷰 이동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한줄평 이동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예스24 배송
  •  배송비 : 무료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8,0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