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은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 현대예술이란 무엇인가? 중국 현대예술을 어떻게 정의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히 몇 마디의 말로 대답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는 서양의 영향을 받았던 지난 1세기 동안의 전체적 역사 배경 가운데에서 검토해야 하며, 중국 본토의 배경만 가지고 생각할 수는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국 현대예술은 문화대혁명 이후 지난 30년간 민주자유주의 사조의 세례를 받았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 현대예술은 신속하고 철저하게 국제전람회와 국제예술시장의 체계 속에 융합되었으며 이로써 ‘국제화’는 중국 현대예술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므로 중국 현대예술을 단순히 순수 미학과 문화학의 측면에서만 정의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본토의 사회배경만을 고려하여 정의할 수도 없다.
(...)
예술계가 상업화의 충격 속에서 철저히 체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예술이론을 학술적으로 구축하는 일은 더욱 중요해 보인다. 문화계와 예술계의 많은 이들은 중국 현대예술 혹은 중국의 전위예술이 위기에 직면하였음을 느끼고 있다. 중국 현대예술은 국제 예술시장에서 마치 ‘불’과 같이 일어나고 있다. 각종의 개인전시, 관방전시들의 존재가 부각되면서 예술기구들이 서로 경쟁하는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오늘날의 중국 현대예술은 초기에 가졌던 문화건설에 참여한다는 믿음과 이상주의를 포기하고 유행문화의 향락주의, 순간적 몽환과 소비지상주의에 합류함으로써 주류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나는 그 원인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세속화의 추세에 있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정치와 상업화를 포함한 유행의 세속화를 들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방법론의 빈곤과 이로부터 파생된 저속한 사회학의 범람 등에서 보이는 학술 비평의 세속화를 들 수 있겠다.
나는 독자들과 함께 사라져가는 인문정신을 되찾고 싶다. 또한 지구화, 시장화, 체제화로 획일화된 시대에도 여전히 독립적으로 싸워나가는 예술정신을 되찾고 싶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중국의 현대예술을 논할 때 ‘현대’는 과거 20여 년간의 새로운 예술 현상을 총칭한다. 그러나 중국 현대예술의 모더니티를 논할 때 이는 시대적 발전과정과 부합되는 특성, 다시 말해 시대성을 가리킨다. 이러한 시대성은 중국 본토의 콘텍스트 속에서 현대성(modernity)이라 늘 칭해 오던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적 콘텍스트 속에서 말하는 모더니티를 구미의 프리모던(premodern), 모던(modern), 포스트모던(postmodern) 중의 ‘모던’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중국의 모더니티는 구체적인 시기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시대정신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구미의 시대적 시간 개념은 무시하고 특정한 시간과 구체적 공간, 현 사회 가치의 선택 등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중국 모더니티의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실제로는 20세기 초부터 이미 출현했다. 심지어 세계화된 21세기 초의 중국에서도 모던 패션, 모던 도시, 모던한 풍모, 모던 디자인 등 사람들이 항상 사용하는 단어다. 당연히 이는 모두 현시적이고 당대적 의미이며, 구미 20세기 전반의 모더니즘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 '본문' 중에서
과거 20여 년간 중국 현대예술은 신속하고 복잡한 사회 변화에 따라 출현하고 발전했다. 그러므로 중국 현대예술 연구를 위해서는 반드시 내재적 역사 논리와 변천의 복잡성을 충분히 검토해야만 한다. 그 발전 과정 중 예술가와 관방 체제의 관계, 미학과 정치의 관계, 본토적 요소와 국제화 내지 지구화의 관계, 예술가의 문화적 정체성과 예술에서 사회적 주체성의 차이 등 모두 극히 복잡한 양상을 드러냈다. 이 책의 연구 시각과 ‘장()’ 전시의 시각은 이같이 다양한 관계 속의 ‘장벽’과 그 경계를 탐구하고 분석하려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이원론적 방법을 이용하여 이러한 관계들을 대립시키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 오히려 예술가, 관중과 체제 사이, 예술적 언어와 생활의 배경 사이, 역사적 기억과 현대 의식 사이, 고전 미학과 현대의 유행 양식 사이, 성별과 사회신분의 사이에서 중국 현대예술의 경계를 찾아낼 것이다. 본 서는 이러한 ‘장벽’을 단순히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이 ‘장벽’의 경계를 어떻게 뛰어넘었는지에 특히 주목하고자 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