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오파지타」의 파멸적인 힘과 무서운 비밀
음악을 통해 인간이 넘봐서는 안 될 베일 뒤를 들여다본 한 남자
17세기에 작곡된 「아레오파지타」와의 조우 _ 음악은 더 높은 사고 영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막대한 유산의 상속자 맬트래버스는 음악을 열렬하게 사랑하고, 재능이 넘치는 청년으로 옥스퍼드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그는 1841년 뉴 칼리지에 다니는 존 개스켈을 알게 되는데, 한쪽은 바이올린에 열중해 있고, 또 한쪽은 피아노에 열중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끈끈한 우정을 이어간다.
자기 방에 피아노가 없던 개스켈은 맬트래비스가 생일 선물로 받은 달메인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 맬트래버스의 방을 매일 방문하고, 둘은 부활절 휴가를 보내기 위해 함께 로마를 여행하기도 한다. 17세기 작곡가들의 음악에 관심이 많은 개스켈은 로마여행에서 17세기 작곡가들의 악보 몇 개 사온다.
여행에서 돌아와 맬트래버스의 방에서 두 친구가 조우한 밤, 맬트래버스는 알 수 없는 신비한 느낌으로 개스켈이 사온 악보 가운데, 그라치아니가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한 초기 모음곡 필사본에 눈길이 간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아레오파지타」라고 이름붙인 작품을 연주하기 시작하는데, 연주 도중에 맬트래버스는 방 안에 놓인 고리버들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누군가가 의자의 양쪽 팔걸이에 손을 하나씩 올려놓고 의자에 앉을 준비를 하고, 천천히 의자에 앉는 소리. 너무나 또렷한 환청에 놀란 맬트래버스는 연주를 멈추고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 연주를 다시 시작하고 「아레오파지타」의 ‘미누에토’가 끝나자 악보를 덮는 맬트래버스의 귀에, 누군가가 의자에 앉았다 일어서는 삐걱이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마도 고리버들 의자에 특정한 바이올린 소리에 반응하는 고리버들 가지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맬트래버스는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유령을 불러내는‘갈리아르다’의 멜로디 _ 쾌락적 관능의 선율
그리고 다음날 맬트래버스의 방에서 다시 만난 개스켈과 맬트래버스는 체스티의 모음곡과 부오논치니의 소나타를 연주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우연히 개스켈이 「아레오파지타」를 연주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아레오파지타」의‘갈리아르다’의 멜로디가 시작되었을 때 맬트래버스는 전날 밤 들었던, 고리버들 의자가 기묘하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 뒤로도 두 젊은이가 음악을 연주할 때면 매번 비슷한 일을 경험했지만, 둘은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까 두려워 아무에게도 이 일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스물두 살의 맬트래버스는 아름답고 총명한 콘스턴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아레오파지타」를 연주할 때마다 맬트래버스는 예의 ‘갈리아르다’ 연주와 더불어 고리버들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고, 급기야 의자에 앉아 있는 한 남자의 형상을 보게 되고, 큰 충격과 더불어 강렬한 공포를 느낀다.
최고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손에 넣다
그 후 얼마동안 평안한 시간을 보내던 맬트래버스는 자신의 낡은 벽장 속에서 오래된 바이올린 한 대를 발견한다. ‘안토니우스 스트라디바리우스 크레모넨시스 파치에바트 1704’란 라벨이 붙은 이것이 자신의 바이올린‘프레센다’보다 훨씬 뛰어난 바이올린이란 것을 직감한 맬트래버스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수집가로 유명한 스마트 씨를 찾아가 이것이 스트라디바리우스 진품임을 확인한다. 악기를 세밀히 살필수록 경탄을 거듭하던 스마트 씨는 악기를 더 살펴보고 싶으니 일 주일 후 다시 오라고 제의한다.
개스켈을 만난 맬트래버스는 자신의 방에서 아주 진귀한 물건을 발견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논하지만 신고해야 한다는 대답을 듣고 실망하여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이후 맬트래버스는 비밀스러운 기질이 생겼고, 개스켈과의 사이도 멀어진다. 일 주일 후 다시 찾아간 스마트 씨는, 맬트래버스의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가 최고의 전성기에 만든 유일무일한 것이며, 가장 특징적인 것은 두 개의 라벨을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안토니우스 스트라디바리우스 크레모넨시스 파치에바트 1704’란 라벨 외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친필로 쓰여진 라벨에는 ‘포르피리우스 필로소포스’라는 두 개의 낱말만 적혀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기 위해 워스에 간 맬트래버스는 사랑하는 콘스턴스의 집에서 자신의 방에서 본 유령과 똑같이 그려진 초상화를 본 후 기절하는데 그 뒤 며칠간 병을 앓는다. 오빠에게서 유령 이야기를 들었던 동생 소피아 맬트래버스(이 소설의 화자)는 초상화가 에이드리언 템플의 초상화라는 것을 알게 된다. 더비셔의 로이스턴 영지 주인이었던 에이드리언 템플은 방탕한 생활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악명이 높았었다.
쾌락적 관능을 탐하던 에이드리언 템플의 고스트에 사로잡히다
맬트래버스는 이제 혼자서 바이올린 연주에 몰두한다. 예상을 뛰어넘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음색에 맬트래버스는 완전히 압도되고, 그의 바이올린 연주 솜씨는 날마다 일취월장한다. 맬트래버스는 세상의 일에 무심한 채 끊임없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음악에 몰두하고, 성격도 점점 변해간다. 콘스턴스와 결혼한 맬트래버스는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맬트래버스는 건강한 안색이 사라지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멍한 상태로 하루 종일 서재에서 바이올린만 연주했다. 그리고 다정하고 상냥했던 맬트래버스는 냉정하고 까다로운 성격으로 변하고, 건강은 심각하게 위험한 상태가 된다. 맬트래버스를 사랑하는 콘스턴스는 갑작스런 남편 맬트래버스의 변화에 고통받는다. 어느 날 밤, 아내 콘스턴스와 소피아 맬트래버스는, 에이드리언 템플 초상화 앞에서 「아레오파지타」의‘갈리아르다’를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연주하는 맬트래버스의 모습을 보게 되고, 소피아 맬트래버스는 오빠가 이상하게 변한 것이‘갈리아르다’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얼마 후 맬트래버스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가지고 다시 이탈리아 나폴리로 떠나고, 그가 떠난 후 아내 콘스턴스는 죽는다. 나폴리로 오빠를 찾아간 소피아 맬트래버스는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오빠를 만나, 오빠에게 그동안의 기이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맬트래버스는 동생을 자르디노 가의 어떤 홀로 데려가는데, 그곳은 개스켈이 「아레오파지타」의 ‘갈리아르다’ 멜로디를 들으면 떠오른다던 무도회장 정경과 같은 곳이었다.(한쪽에 아치로 이루어진 아케이드가 길게 뻗어 있고, 르네상스 시대의 환상적인 고딕 양식으로 지은 기다란 홀) 개스켈과 맬트래버스의 환상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하실에 내려간 소피아 맬트래버스는 거기서 에이드리언 템플의 해골을 목도한다. 그리고 얼마 후 크리스마스 날 맬트래버스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로 인해 고통 받던 생을 마감한다.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신뿐
젊고 재능이 넘치는 맬트래버스의 삶을 파괴시킨 것은,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은 쾌락과 철학에 탐닉한 대가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에이드리언 템플이란 사람의 영혼이다. 맬트래버스와 마찬가지로 부유하고 재능이 넘치던 학자이기도 했던 에이드리언 템플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쾌락적 관능주의와 이교에 빠져 살다 무참하게 살해된다. 에이드리언 템플이 죽은 음란한 무도회에서 연주되던 ‘갈리아르다’는 독일의 작곡가 프레토리우스가 ‘추잡하고 음탕한 몸짓과 상스러운 동작으로 가득 차 있는 악마의 창작물’이라고 묘사한 곡이었으며, 전도유망했던 맬트래버스가 매료된 곡이며, 광신자들이 나폴리에서 되살려낸 이교적 신비의식에서 연주하던 곡이기도 하다. 에이드리언이 소유했고, 전도유망했던 청년 맬트래버스를 파멸적인 열정으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한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스트라디바리가 전성기에 만든 최고의 악기였지만, 스트라디바리는 그것을 팔지 않고 30년이나 공방에 걸어두었으며, 종국에는 바이올린을 불태워버리라고 유언을 한 기묘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 맬트래버스를 불가사의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에이드리언의 영혼이지만 어쩌면 그것은 하나의 촉발제였는지도 모른다. 맬트래버스의 죽음은, 그것이 종교이든, 성(性)이든, 예술이든 관계없이 인간에게 금기시된 곳에 발을 디딘 자가 치러야 할 혹독한 대가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