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아 취직하기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는 일보다 더 어렵게 되었다. 취직은커녕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도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르니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기가 좋지 않아서 취업이 되지 않고, 경기가 좋지 않아서 직장에서 잘렸으며, 대학을 나와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백수가 되었고, 부모님이 가진 것이 없어서 내가 성공하기 어렵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마음에는 처음부터 실패와 좌절이 뿌리 깊게 도사리고 있어서 좋은 면들을 볼 줄 모르고 위기 속에 있을 기회의 순간을 찾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불평불만만 되풀이하고 있다면 그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불평불만하는 성공하지 못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긍정의 매뉴얼
“이 봐, 해 봤어?”
나는 무척이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고 뒷바라지도 바랄 수가 없었다. 어찌어찌하여 겨우 초등학교만 힘겹게 졸업한 나는 곧바로 막노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나는 언젠가는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기대와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었다. 나는 평생동안 긍정적으로 희망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려고 애썼다. 내가 즐겨 하는 말은 “이봐, 해봤어?” 단 한 마디였다.
“내가 평생을 새벽 일찍 일어났던 것은 그날 할 일에 대한 생각에 기대와 흥분으로 설레기 때문이었다. 나의 아침은 언제나 소학교 소풍날 아침과 같고 밤에는 늘 숙면할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그것은 바로 날이 밝으면 즐겁고 힘차게 일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내가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은 세상을 희망차게 보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집시다. 모든 것을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나는 나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채찍질 해 왔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성실은 나를 마침내 한국에서 제일가는 기업, 세계적인 이름을 날리는 기업의 회장으로 만들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바로 대한민국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정주영이다. --- 「세계적인 기업의 신화」 중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부푼 꿈에 사회로 나선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무엇이든 의욕적으로 덤볐고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가득했다. 그는 분명 자신에게 알맞은 대우를 해줄 좋은 일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막상 그가 졸업을 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을 때,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간신히 그는 어느 작은 중소기업에 겨우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불만은 끊이지 않았다. 대학까지 졸업한 능력 있는 재원을 몰라보는 사회가 원망스러웠고, 자신 같은 인재가 이렇게 표도 나지 않는 작은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게 창피했다. 또 어딘지 모르게 손해를 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 회사가 얼마나 자신에게 더 대우를 해줘야 하는지만 셈하고 있었다. 자연히 일을 하는 데는 뒷전이 되었고 다른 더 나은 직장을 찾는 방법에 대해서만 골몰하였다. 그의 실적이 좋지 않을수록 그는 자신보다는 회사의 무능함을 탓했다. 회사에서도 그렇게 불평불만만 쏟아내는 그를 곱게 보아줄리 없었다. 마침내 그는 그토록 불만이던 회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는 자신에게 더 좋은 대우를 해 줄 회사를 찾아 봤지만 그런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긍정의 매뉴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자신이다.”
내가 처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는 한창 경제가 어렵다고 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나도 생각 같아서는 좋은 회사에서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작은 중소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불황의 시기에 작은 회사이나마 직장을 얻었다는 기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을 했다.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작은 규모의 회사이기 때문에 얻는 이점이 더 많았다. 나에게 주어지는 기회도 많았고 그럴 때마다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 나는 또래의 친구들보다 빠른 승진을 할 수 있었다. 또한 회사의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노력하는 나의 모습은 사장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점들을 높이 산 사장은 나에게 점점 더 중요한 일들을 맡기기 시작했다. 마침내 얼마 가지 않아 나는 젊은 나이에 회사의 큰 책임을 가지는 중요한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어떤 곳에서든 성실함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모든 일을 임한 결과였다. 모두가 나를 부러워한 것은 당연했다. --- 「작은 회사지만 괜찮아」 중에서
항상 모든 일에 걱정이 앞서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불안함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득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가 하는 말들도 역시 언제나 부정적인 것들이었고 잘 안 될 것이라는 말들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의욕을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은 자연히 그의 행동과 그의 모든 것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는 언제나 찌푸린 얼굴로 부정적인 말들과 불평, 불만만을 쏟아냈다. 감사하는 법이 없었고 항상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기 바랐다. 언제나 불쾌한 말만 쏟아놓는 그를 사람들은 꺼리게 되었고 그와 대화하거나 어울리기를 싫어했다. 그의 부정적인 생각들로 인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마저도 미리 패배감에 젖어들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그를 멀리하면 할수록 그는 자신의 나쁜 생각들과 말들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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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말, 한 마디가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것의 좋은 측면을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나에게 뿐만이 아니라 절망에 빠져 있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도 항상 부드러운 말투와 긍정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말로 응원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거나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실로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와 대화를 하다보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미래에 대한 새로운 용기를 얻어가곤 했다. 사람들은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거워했다. 아무리 나쁜 상황에서도 나는 그것을 좋은 것으로 바꿔 놓을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작은 것에 고마워하고 감사의 마음과 긍정적인 말을 아끼지 않았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러한 긍정적인 말 한 마디가 나를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 「성공을 부르는 대화의 법칙」 중에서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직업군인으로 군 생활 중에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어려운 사정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너무나 친한 친구였고 사정이 너무 딱했기 때문에 그는 도저히 친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의 사업을 위해 보증을 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구는 보증으로 빌린 돈을 들고 도망쳐 연락이 두절되었다. 너무나 믿었던 친구로부터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에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보증으로 인한 빚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월급의 대부분을 이자로 상환해야 했다. 그는 도저히 생활할 수 없을 정도에 처했다.
그가 보증으로 빚을 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기만 했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주변인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한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하루하루 술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그나마 월급으로 간신히 이자만이라도 상환해왔지만 그 일마저 할 수 없게 되자 이자와 함께 빚은 더욱 늘어났다. 친구를 원망하는 마음이 커진 그는 그 친구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간신히 어느 작은 시골에 숨어 있던 친구를 찾아낸 그는 그와 다툼 끝에 친구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말았다.
긍정의 매뉴얼
“하면 된다는 생각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내가 직업 군인이던 시절, 어느 날, 친한 친구로부터 어려운 부탁을 받았다. 회사가 부도가 나게 되어 당장 급하게 8천 만 원이라는 큰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도 역시 그만한 돈이 없었던 터라 대신 보증을 서주기로 했고 친구는 내게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그러나 얼마 뒤, 친구는 종적을 감추고 보증을 섰던 내가 그 돈을 모두 갚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군대 월급으로 빚을 갚아 나갔지만 역부족이었다. 월급의 대부분이 이자로 상환되었기 때문에 생활비는 물론 원금 갚는 일도 아득하기만 했다. 갚아도 줄지 않는 부채에 고민하던 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성과가 빠르고 자신의 능력과 노력한 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세일즈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한 보험회사에 입사지원을 하게 되었다. 면접시험이 있던 날, 말끔한 양복차림의 지원자들 틈에서 혼자 군복을 입고 있는 나의 모습은 단연 튈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나의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면접관들에게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넨 뒤, 나에게도 면접관들의 명함을 달라고 소리쳤다. 이러한 뜻밖의 당돌한 행동은 면접관에게 인상적이고 열정적으로 평가되어 그 회사의 세일즈맨으로 채용되었다.
나는 입사한 첫 달에 60건의 계약을 따내며 전국 영업 1위가 되었다. 나에게는 오로지 빚을 갚아 힘겨운 생활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상위권을 유지하며 6개월 후에는 최연소로 100만 달러 원탁회의에 달성했다. 이후에도 이보다 세 배 높은 실적을 달성해 탑 세일즈맨의 위치를 다졌다. 물론 빚도 갚고 집도 장만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입사한 지 7년 만에 연간 10억대 소득까지 올릴 수 있게 되었고 지점의 대표가 되었다. 무조건 하면 된다는 생각과 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결과였다.
--- 「하면 된다와 할 수 있다는 믿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