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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처방전

여행 처방전

: 삶이 견딜 수 없는 당신을 위한 인생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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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236g | 128*188*20mm
ISBN13 9788959480227
ISBN10 89594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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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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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숨 막힐 듯 육중한 기둥의 행렬이 끝나고 인제대 간판이 보인다. 시간을 보니 오후 6시다. 막연히 오늘 안에 가겠다는 지금까지의 생각을 접는다. 그러자 갑자기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세상도 이렇게 여유 있게 살아가야 하는데, 전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모든 일을 일생에 다하겠다는 욕심으로 괴롭히는 나를 본다.

어제 술자리를 함께한 친구가 아침에 문자를 보냈다.
‘무슨 일 있나? 술 마시다 혼자 화장실 가서 엉엉 울더라.’
무슨 일이 있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무 일 없다.
회사 잘 다니고, 저녁시간이면 텔레비전 보면서 가족과 단란하게 보내고, 시간 나면 친구 만나 술 마시고, 그러다 노래방 가서 노래도 부르고…….
아무 일 없다. 정말 아무 일 없다.
아무 일 없이 이렇게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살다 죽으면 된다.

인제대를 지나자 골프장 옆으로 조그만 마을이 보인다. 동네 곳곳에 슬며시 어둠이 내려앉았다. 모텔이 2개 있다. 이름은 로미오와 줄리엣. 지난여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본 〈로미오와 줄리엣〉 오페라 공연이 생각난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오페라를 보는데, 아무리 찾아도 줄리엣이 없다. 그런데 한참을 보니 하녀로 생각했던 뚱뚱한 사람이 바로 줄리엣이다. 그제야 깨닫는다. 왜 줄리엣은 날씬해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봤다.

수상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주인아줌마의 시선을 뒤로한 채 방으로 들어선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니 좀 살 것 같다. 혼자라 잠이 안 올 거라는 상상은 기우에 불과했다. 피곤한 몸은 잠시 지나자 새근새근 자신을 잊어버린다.

청정한 새벽 기운이 감돌고 밝은 햇살이 방 안을 환히 비추는 상쾌한 아침이다. 모텔 근처에 있는 산에서 들려오는 풀벌레의 맑은 화음 속에 청아한 새의 지저귐이 나를 깨운다. 세수하고 바로 모텔을 나선다. 아침 공기의 상쾌함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새벽이슬이 방울방울 맺힌 풀잎 사이로 난 한적한 시골길은 우아한 자태로 농촌의 풍요로운 아침을 횡단하고 있다. 아름다운 시골의 아침 길을 내어주신 그분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이유는 아름다움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취하면 시간이 멈추고 그 속에 영원함을 느낀다. 그 대상이 자연이든 사람이든 예술이든. 아마 지금 이 순간이리라.

길가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아침을 먹는다. 아침 시간이라 손님이 나밖에 없는 식당에서 신문을 뒤적이며 밥을 먹는 것도 참 여유롭다. 느긋하게 앉아 아침식사를 해본 것이 얼마 만인가.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오면서 얻은 것은 위염뿐이다.

다시 길을 나선다.
--- 「관능적인 기쁨을 맛보고 싶으면 걸어라- 혼자 걷는 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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