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5월, 프랑스의 한 대학교 학생들이 엄격한 학칙에 불만을 품고 작은 소요를 벌인다. 이를 시작으로 나비효과처럼 프랑스인들이 길거리로 나오게 되어 정부를 붕괴 직전 상황까지 몰고 간다. 이는 단지 대학생을 위시한 청년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이에 화답한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해서 일으킨 프랑스만의 소요 사건이 아니었다. 파리, 시카고, 프라하, 멕시코시티, 도쿄, 베를린 등 세계 각지의 대학생, 여성, 성소수자, 유색인 들이 자신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길거리로 나섰다. 프랑스의 1968년 5월은 ‘틀린’ 삶을 ‘다른’ 삶으로 인정할 것을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요구한 변혁을 압축해서 보여준 시기였다.”
--- p.38
“프랑스어로 흑인을 뜻하는 ‘네그르negre’와 특징이나 성격을 뜻하는 ‘튀드tude’의 합성어인 네그리튀드를 중립적인 의미인 ‘흑인성’으로 번역하는 것은 약간 문제가 있다. 프랑스어 네그르는 영어 ‘검둥이nigger’처럼 흑인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호칭이기 때문이다. 이미 ‘더러운, 역겨운’이란 부정적 함의를 포함한 네그르란 단어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려 한 세제르의 전략은, 비참하고 궁핍한 흑인의 현실을 떠안음과 동시에 자긍심pride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역설적 전략이다.”
--- p.59
“고다르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카메라를 보면서 말을 하기도 하고, 말과 영상은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한 채 말이 영상보다 늦게 나오기도 하며, 영상이 나오기 전 해설이 설명인 양 자막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등 뭔가 뒤죽박죽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누벨바그 영화는 일반 관객이 보기에는 줄거리도 없고 논리적 연결 고리도 끊어진 엉터리 영화였다. 전통적인 극작법이 파기되고 이야기의 종말은 모호하며 논리적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영화는, 그렇기에 ‘눈’이 아닌 감정으로 반응해야 한다.”
--- p.86
“히피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된다. 긴 머리, 공공장소에서 옷 벗기public nudity, 섹스, 마리화나, 꽃, 마약, 코뮌, 록 페스티벌, 동양 신비주의, 그룹 결혼, 거리 공연, 거리 모임be-in, 방랑/노숙, 사이키델릭록, 돈 태우기와 무료 공연 등. 더 간단히 말하면 히피를 구성하는 3대 요소는 섹스, 마약, 사이키델릭록이다.”
--- p.94
“(섹스 피스톨즈가) 영국에서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음악에 앞서 BBC의 TV쇼에 나가 벌인 악행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중략) 멤버들은 소위 ‘스탠드 업 코미디’를 선보였다. [투데이Today] 쇼의 호스트인 빌 그런디Bill Grundy와 인터뷰를 하는 중에 기타리스트인 스티브 존스는 사회자를 “dirty fucker”, “fucking rotter”라고 불렀고 카메라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쳐들었다. 경건하고 엄숙한 영국인들 가운데 이때 TV 수상기를 집어던진 사람도 있다고 한다.”
--- p.117
“(밥 말리는) 1976년에는 서로 적대 관계인 여당과 야당의 통합을 위한 무료 콘서트를 기획하다가 집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는다. 그는 가슴과 팔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지만 아내와 매니저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예정대로 공연을 감행한 그는, “이 세계를 악화시키려는 이들이 하루도 쉬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쉴 수 있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 p.137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멕시코 출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가령 유명한 사건 하나가 1943년 6월에 일어난 ‘주트수트zoot suit’ 사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멕시코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유행한 주트수트 차림의 멕시코계 청년들을 백인 해군들이 길거리에서 구타했다. 주위에 있던 백인들은 해군들의 폭행을 ‘구경거리’처럼 즐겼다. 헌병과 지역 경찰은 수수방관하다가 오히려 피해자인 멕시코계 청년들을 연행했다.”
--- p.193
“정식 미술교육은 한 번도 받지 않은 헤론은 치카노 청년들이 흔히 선택하는 갱 단원이 되길 거부했고 대신 예술가가 되었다. (중략) 헤론은 가족과 이웃이 들려주는 치카노의 삶과 역사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제도적 지식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집안에서 쓰는 에스파냐어와 학교에서 강요하는 영어가 다르다는 사실에 곤혹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겪는 차별에 대한 분노나 무력감을 폭력으로 발산하지 않고 벽화로 승화시켰다.”
--- p.216
“1970년부터 시작된 ‘게이 프라이드’ 행진은 스톤월항쟁이 일어난 날짜에 뉴욕 시와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되고 있다. 1999년 6월에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스톤월항쟁 40주년 기념을 경축하러 스톤월로 모여들었다. 같은 해 미국 정부는 스톤월을 국가 유적지로 발표했고, 다음 해인 2000년에는 ‘역사적인 랜드마크(극소수의 역사 유적지만이 부여받는 호칭)’로 상향 조정했다.”
--- p.238
“액트업 멤버들은 뉴욕증권거래소에 침입해서 VIP용 발코니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에이즈 약품의 높은 비용에 저항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내건 전단과 슬로건에는 “SELL, WELLCOME”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웰컴은 유일한 에이즈 치료약을 독점 판매하고 있던 버로우웰컴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시위 며칠 뒤 버로우웰컴사는 환자 한 명이 AZT를 구매하는 데 드는 연간 비용을 만 달러에서 6,400달러로 낮췄다.“
--- p.254
“토레스는 “사랑과 상실에 대한 심오한 명상”을 위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구, 시계, 사탕을 관계의 ‘알레고리’로 변형시키는 작업을 지속했다. 그가 전시장 바닥에 편평하게 깔아두거나 구석에 쌓아 올린 사탕의 무게는 보통 175파운드였다. 이는 생전 가장 건강했을 때 (토레스의 연인인) 로스의 몸무게였다고 한다. 관객은 전시장 바닥에 깔린 사탕을 가져갈 수 있었다.”
--- p.276
“주디 시카고가 만든 설치 작품 [생리 욕실Menstruation Bathroom]은 사용한 탐폰과 사용할 탐폰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들에게 중요하지만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되는 불결한 물건. 방문객들은 욕실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고 욕실 입구에 드리워져 있는 망사 천 사이로만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사회적 금기와 금기에 대한 호기심을 반영한 것이다.”
--- p.290
“고릴라 가면을 쓴 여성들이 1985년 10월 뉴욕 시 맨해튼의 갤러리 밀집 지역인 소호 거리와 이스트빌리지 거리에 포스터를 붙이고 사라졌다. 이들이 바로 ‘여성 예술가 테러리스트 집단’인 게릴라걸스Guerrilla Girls다. 한바탕 ‘소동’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 이래로 이들은 지금까지 거의 30여 년 동안 포스터, 연극, 퍼포먼스, 시위, 이벤트, 강연 등 다양한 실천 방식을 동원해 예술계에 만연한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와 싸우고 있다.”
--- p.301
“대중매체를 통해 홍대 근처의 식당에서 농성이 시작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문화활동가들, SNS를 통해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상존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예술가들이나 관객들이 두리반으로 모여들었다. 문학회, 영상제, 음악 공연, 문화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두리반을 채우게 된다. 생산과 노동에 매진하는 혹은 매몰된 부류가 아닌 한가하고 ‘잉여짓’을 일삼는 이들이 속속들이 두리반으로 모여들었다. ‘쓸모없는 공간’에 ‘쓸모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새로운 미적 형식을 일상적 행위로서 집어넣은 것이다.”
--- p.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