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인간의 삶을 감싸는 거대한 봉투가 문화라고 말한 바 있다. 봉투라는 말은 오히려 협소하다. 문화라는 이름의 우주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문화란 한 사회의 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말한다. 하나의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회성원들은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방식이 많이 비슷하여 다른 사회의 성원들과는 구분된다. 사회라는 용어와 문화라는 용어가 종종 혼용되는 것은 문화가 바로 사회생활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 p.14, [문화의 의미] 중에서
우리 문화를 붙잡고 있는 거울은 무엇일까. 현재 우리 사회는 서구 근대의 거울에 의해 극명하게 일그러져 있다. 모든 것을 경제의 눈으로 보는 경제의 거울, 올바른 사회와 인간다운 삶을 향한 노력을 진보와 보수의 틀로만 해석하는 이념틀의 거울, 우리의 눈으로 사물을 보거나 현재를 해석하지 못하고 오직 서구의 눈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려는 서구의 거울, 그럼에도 우리라는 집단에 갇혀 우리 이외의 모든 것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우리라는 거울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 p.23, [문화의 거울] 중에서
엔터테인먼트는 문화산업 시대의 주요 문화적 소비 형태이자 주력 산업이다. 그 시장 규모와 성장지표를 살펴보면 대중들이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소비하는 문화적 규모와 추세는 실로 대단하다. 그러나 삶의 문화적 만족도는 규모화한 문화상품과 성과물로 모두 채워지지 않는다. 모두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규모와 성장의 한복판에 서서 온전한 만족감을 느낄 수는 없다. 이는 문화예술의 생산자건 소비자건 간에 디지털 시대의 기술적 진보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소외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문화적 만족도는 감동의 발견에서 시작된다. 감동은 자신 속에 내재한 자아의 발견이며 객체화된 대상을 문화적으로 체험할 때 발현된다.--- p.32, [엔터테인먼트] 중에서
동양철학은 근본적으로는 유학이든 노장철학이든 불교사상이든 다르지 않다. 그 공통점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것은, 만물의 시원始原이 무無 또는 공空이라는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 근원으로부터 음陰과 양陽으로의 분화와 순환이 전개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일원론적 인식에 서양의 현대 물리학이 동일한 과학적 판단과 인식을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설적으로, 가장 과학적인 방식의 인식이 수천 년 만에 도달한 것이 가장 비과학적인 방식의 인식이 수천 년 전부터 가졌던 생각과 서로 같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동양철학은 지금까지의 과학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삶과 우주의 총체적 본질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 할 뿐 아니라 이성적, 논리적, 물질적 삶의 편향으로부터 벗어나 균형을 이루도록 한다는 데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 p.59,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중에서
속도를 숭배하는 현대성의 교만함은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진정한 즐거움을 앗아간다. 점점 더 빨라지는 속도숭배의 문명은 그 자체에 파괴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속도를 줄일수록 자체 파괴의 위험성은 감소한다. 느림과 지속성의 문화였던 고대의 농경사회는 수천 년을 지속했지만 속도와 변화에 기초한 산업사회는 불과 몇백 년 만에 대폭발의 위기를 맞고 있다. --- p.75, [속도숭배사회] 중에서
우리에게는 서양의 종교사가 보여주듯 참혹한 종교전쟁의 역사는 없었다. 그리고 특정 종교가 지배이념이 되고, 또 그 이념이 다른 종교로 교체되는 경우에도 그러한 광범위한 비극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제각기 전승된 각 종교들 상호간의 화해와 공존의 전통은 그렇게 여러 종교가 그처럼 긴 기간 동안 함께 있어왔다는 역사적 사실이 무색할 만큼 현실적이지 않다. 종교는 제각기 자기의 진리만이 유일하고 절대적이라는 주장을 견지한 채 그러한 사실을 사회 안에서 구체적인 힘의 실체로 드러내기 위한 온갖 현실적인 노력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종교간의 갈등은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한가한 관념이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 p.133, [한국 종교문화의 특징과 종교정책] 중에서
학문의 세분화는 학자들을 자기 전공 분야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무지한 기능적 지식인으로 만들어버렸다. 오늘날 학문은 바람직한 삶을 위한 전체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파편화된 단편적 지식만을 추구하는 단순한 기술 내지 기능으로 전락해 버렸다. 세계의 궁극적 의미나 삶의 의미, 목적, 가치 등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이르는 효율적인 수단만을 문제 삼는 도구 내지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 p.137, [실증과학의 출현] 중에서
한때 미래학자들은 정보사회 출현과 더불어 가장 먼저 사라질 공간룀로 학교 교실을 꼽았고, 불필요해질 직업으로 교사 및 교수를 지목했으며, 머지않아 간편한 전자책이 번거로운 종이책을 전면 대체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한 사회로 나아갈수록 사람 냄새 가득한 생생한 부딪침, 곧 ‘휴먼 터치’의 욕구 또한 강해지고 있고, 선진국으로 갈수록 아날로그 정서와 디지털 기술이 결합하여 다종다양의 출판문화를 더욱 화려하게 꽃 피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책은 매력적인 매체다.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적 상상력과 창의력의 힘은 결코 임산업만 해도 스토리 구성의 탄탄함과 내용의 풍성함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경쟁력 확보가 불가능함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미래학자 짐 데이토Jim Dator가 주장하는 ‘꿈의 사회Dream Society’에서도 관건은 꿈의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도록 하는 스토리텔링의 힘에 있다 하지 않던가. --- p.146, [책을 읽지 않는 사회] 중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개방적인 민족주의는 세계화의 추세에 단지 순응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거기에 역행하는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 보편 인류적인 관점에서 우리 민족의 생존을 사고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구촌을 단지 먹느냐 먹히느냐의 살벌한 경쟁터로 만들어 가려는 움직임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다른 민족이나 다른 국민의 삶과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가질 때 우리 민족은 비로소 지구촌의 한 주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인류의 공동선과 민족의 이익을 함께 고려할 줄 아는 성숙한 자세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정치 경제적 민주화와 국제 관계의 민주화를 위한 우리의 주체적인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 p.205, [세계화와 개방적 민족주의] 중에서
과학자들의 선한 동기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과학기술이 응용되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를 충분히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이것이 이른바 과학기술의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한계이다.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아직 이 한계를 유효 적절하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환경 문제는 이러한 한계로부터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과학자는 우주와 생명에 대해 그 참모습을 밝혀 줌으로써 혼란된 인류를 위해 바른 가치관 형성을 도와야 하며 다른 한편 그의 학문이 장래에 어떤 목적으로 활용될 것인가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 p.282, [거대 과학으로서의 현대과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