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살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을 스무 살의 내가 하지 못했을 리 없다. 단지 나는 비겁했을 뿐이다. 스무 살에 이루지 못한 꿈을 서른에, 마흔에, 쉰에, 예순에도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후회하고 아파하며 삶의 끝자락에서 떠나버린 꿈이라 도 되돌려볼까, 앙상한 고목나무 가지 같은 팔꿈치를 휘두르며 빼곡하게 채워져 버린 시간 사이에서 아직 내 손이 닿지 않은 흰 종이 한 장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 p.20
박탈감과 모멸감이 반사적으로 내 안에서 무엇인가를 일깨웠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아가 무엇을 하며 죽음을 기다릴 것인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결국, 사람은 죽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빈털터리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삶의 전부였다. 희망을 품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몰라도 꽤 많은 것을 가지고 누려봤던 사람은 그것들을 잃게 되었을 때 깨닫게 된다. 상실이라는 극단의 망각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사랑했던 기억, 감사했던 기억, 성취와 희열의 감각은 집과 돈과 그것들을 소유라는 울타리 안에 억지로 편입시켰던 세월을 지켜주지 못한다. --- p.57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고통을 유발하는 통점이다. 하지만 내가 그 욕심을 버리면 나는 세상에 널린 무명작가들, 시민문화센터에서 글짓기를 배우는 아주머니들, 몰래 시인을 꿈꾸는 재수생이 되어버린다. 내가 꾸린 글밭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독자의 비위를 맞추고,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젊은 생각을 강요당하고, 그 나이가 되었으니 당연히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겠느냐는 억측에 시달린 기생의 결과물이다. --- p.78
인간은 극도로 자기중심적인 생명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단순화시키려고 한다. 오죽하면 거대한 바닷물을 이루는 그 많은 호흡의 뒤섞임을 단순한 분자기호 몇 개로 대상화시켜 버리지 않았는가. 바닷물에 발을 담그지 않고서도 바다를 이루는 물의 분자를 알고 있으므로 바다에 대해서는 더는 궁금한 게 없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들이 필요에 따라 내가 꺼낸 가면만 보고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 위기를 모면하는 지혜가 되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세상은 내가 뒤집어쓴 가면으로 나의 전부를 판단해버린다. 그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가면 쓴 내 모습 외에는 봐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 정도에서 그친다면 다행이다. 용기를 내어 나의 진짜 얼굴을 드러냈을 때 세상은 분노하며 나를 거짓말쟁이로 내모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 p.107
사람이 밉고 싫어져 사람 사는 곳으로는 창문조차 내지 않았다는 남자의 속 깊은 감정까지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간관계처럼 기준이 모호하고 시비가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웃고 있을 때 나는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모두가 나를 위해 울어줄 때, 정작 나는 그 눈물이 달갑지 않을 때가 있다. 그 광범위한 오류의 특성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단일화시키려는 의지에서 옳지 못한 정치사상이 등장하고, 언론은 여론을 호도하는 주범이 되고, 비열해진 종교는 서로가 원하는 종말이 다르다는 근거로 테러를 순교로 자각한다. --- p.171
사랑도 다르지 않다. 풍파와 고비를 버텨내고 또 버텨내 준 사랑 중에 일부만이 질기게 살아남아 그 사람과의 결혼생활을 유지시킨다. 비록 그 열매가 작고 씁쓸하더라도 거기에는 세상 그 어떤 과정에서도 맛볼 수 없는 맛이 숨어 있다.
그만큼의 수고가 고작 작은 결실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허무해 할 이유는 없다. 우리 삶에 허무하지 않은 것이 어디 하나둘인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내와 수고가 배신해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히 여기고 있다. --- p.182
나는 『15소년 표류기』를 읽으며 부표처럼 떠돌기를 그치지 못하는 나의 삶을 떠올리고 있다. 나는 분명 열심히 살았다. 지난날에 아쉬움은 남아도 부끄럽지는 않은 까닭이다. 열심히 살기는 살았는데 바깥만 보았다. 바깥의 상황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바깥의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내 안의 ‘나’, 무인도처럼 내 안에 감춰진 진짜 ‘나’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퇴직을 하고, 사람들이 곁을 떠나고, 거울 속 내 모습에서 젊음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길 없는 지금에서야 ‘나’를 찾게 되었는데, 서글프게도 먹다 남긴 옥수수 알맹이만큼이나 짜글짜글하다. --- p.191
지금 내 나이라면 죽어도 호상이라느니, 천수를 누린 것 아니냐는 말들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는다. 나의 오늘은 그간 경험했던 수없이 많은 ‘오늘’과 바꾸지 못할 단 하루다. 갓 태어난 생일날의 오늘, 스무 살의 오늘, 마흔 살의 오늘, 여든 살의 오늘은 전혀 다르지 않다. 어제보다 못하고 내일보다 덜 소중한 오늘은 없다. 그러므로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감히 입에 담지 못한다. 그따위 거짓말로 내가 살아온 시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나는 더 살고 싶은 것이다. 계속해서 무엇인가 뜻 깊은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오늘을 반복하고 싶다. --- p.209
내가 죽은 후 화장터 가마에서 한 줌 뼛가루로 회귀한 아버지를 품에 안고 외로이 호국원 언덕길을 오르며 난생처음 죽음과 마주하게 될 아들에게 아비로서의 가르침은 단 하나, 누구도 너의 생애에 너를 대신해 변명과 이유를 부연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누구도 너의 생애에 너 이상의 영향력과 지시를 내리지 못하도록 당당하게 살아가라. 아무도 돌아봐 주지 않는 너의 세계가 비록 누추하고 보잘것없어 너 자신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내보여줄 수 없을 만큼 비참하더라도 책임과 연유를 너 자신 외에서는 찾지 말아주기를……. 이 가르침이 비록 아들의 귀에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했던 아비로서의 기억을 가슴 아프게 끌어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늙은 남자의 씁쓸한 자책처럼 들려 비웃고 싶어질 수도 있겠으나 반드시 기억해주기를 나는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 p.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