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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프로덕션

김정일 프로덕션

: 세상에서 가장 황당하고 대담한 납치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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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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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년 02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472쪽 | 153*224*30mm
ISBN13 9788946062566
ISBN10 8946062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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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폴 피셔(Paul Fischer)
프랑스 출신의 영화감독. 시앙스포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미국 남가주대학과 뉴욕필름아카데미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현재 런던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제작자로 참여한 [Radioman](2012)으로 뉴욕 필름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영화 [The Body](2012)의 각본을 썼다. 2015년에 미국과 영국에서 출간한 책 A KIM JONG-IL PRODUCTION이 현재까지 14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역자 : 제 엘리자베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북한전문외신 NK News에 북한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매주 북한인들의 수필을 번역해 영국 The Guardin을 비롯한 외신에 소개하고 있다. 페이스북 주소: www.facebook.com/iam.bes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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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는 사람들에게 좀 더 바짝 붙으라고 손짓했다. 이윽고 플래시가 터졌다. 앞으로 대한민국 영화사를 바꿀 세 주인공의 모습이 사진 속에 담겼다. 신상옥은 두 손을 뒤로 넘긴 채 건방진 미소를 지었다. 박정희는 다부진 아우라를 풍기며 자신의 감정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도록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리고 최은희는 오른쪽으로 몸을 살짝 돌려 남편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 p.25

최은희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가져다 물며 신상옥에게도 한 개비를 내밀었다. 그러자 신상옥은 이렇게 대답했다. “담배는 안 피워요.” “왜죠?” “어머니가 담배를 피우셨기 때문에 저는 별로 피우고 싶지 않아요.” “그럼 제가 당신 앞에서 담배 피우는 게 싫진 않나요?” 최은희가 물었다. 신상옥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피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최은희의 담배에 손수 불까지 붙여주었다. --- p.29~30

최은희에게 잃어버린 삶과 꿈을 다시 가져다 준 것은 신상옥이었다. 그는 최은희에게 한국 영화를 되살리고 싶다는 꿈에 대해 줄곧 말하곤 했다. 최은희도 한때는 그와 같은 야망을 가졌던 적이 있었지만 이미 먼 옛날 얘기처럼 느껴졌다. 열일곱 살에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집을 뛰쳐나왔을 때 가슴에 품었던 그 야망 말이다. 폭력과 강간 그리고 치욕으로 물들기 전, 가슴에 고스란히 품었던 꿈들. 신상옥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최은희는 자연스럽게 꿈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 p.33~34

열흘 후에 신상옥이 감독하고 최은희가 출연한 [성춘향]이 개봉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각종 영화 기록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서울 명보극장에서는 무려 74일간 연속으로 티켓이 매진되었다. 서울에서만 4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성춘향]을 관람했다. 이 숫자는 1960년 서울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숫자였으며 당시 평균 영화 관객 수의 열 배가 넘는 수치였다. 이 기록은 7년간 깨지지 않았다. 신상옥은 승승장구했다. 같은 해 개봉한 멜로드라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포함한 그의 두 작품은 각각 15만 장의 티켓 판매고를 올렸다. 당시 신 감독의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어요. 매일 아침, 현금이 가득 든 돈 자루가 배달되었는데 그 돈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었죠.” --- p.37~38

북한의 이 위대한 부자(父子) 사이에 그런 대화는 오고 간 적이 없었다. 일화에 등장하는 ‘말하는 제비’나 ‘쌍무지개’는 물론이거니와 하늘에 난데없이 새로운 별이 생겨난다든지, 갑자기 소년 김정일이 지도에 먹칠을 하자 열도에 태풍이 불었다는 이야기는 누가 봐도 지어낸 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 인민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이들 일화는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지어낸 허구일 뿐이다. --- p.55

북한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김정일 탄생 신화는 김정일이 ‘이야기’의 중요성을 얼마나 잘 인식하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김정일 탄생 신화는 기독교의 메시아적 성경 구절만큼 울림이 컸다. 병으로 몸져누운 어머니, 고귀한 목적 달성을 위해 열심히 싸우고 있는 아버지의 빈자리, 아이답지 않게 일찍 터득한 지혜와 자랑스러운 가문의 업적. 김정일은 신중히 줄거리를 구성했으며, 이야기에 필요한 요소들을 빠짐없이 집어넣었다. 김정일은 몇 년에 걸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끝에 자신의 탄생 신화 서사를 완성했다. --- p.56

분단 후 초창기 몇 년간 남한과 북한은 극심한 체제 경쟁을 하고 있었고, 영화 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화두는 누가 먼저 전란의 피해를 극복하고 자체적인 힘으로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 p.60

이 잘나가는 청년은 그로부터 20년 후에 우스꽝스러운 뿔테 안경을 귀에 걸고 매일 똑같은 카키색 인민복을 입는 아저씨가 된다. 하지만 한때 김정일은 세련된 검정색 안경을 쓰고 항상 광채가 나는 검정색 슈즈를 신는 멋쟁이였다. 물론 나이가 든 후에는 우스꽝스러운 파카를 입고 다녔지만 말이다. 아무튼 김정일은 모터사이클과 레이싱카를 즐겨 타고 비싼 코냑을 좋아했으며 여배우들과 스스럼없이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청년 시절을 보냈다. 한편, 김일성은 아들의 버르장머리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민했다. 자신의 아들이 건실한 지도자로 성장하길 바랐던 김일성은 1959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회의에도 김정일을 데리고 갔으나,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김정일은 회의에 참석하기는커녕 호텔에 남아 빈둥거리기만 했다. --- p.65

김정일의 아들 정남은 저택 안의 커다란 놀이방에서 놀고 있었다. …… 그의 유모들은 방 한구석에 앉아 아이를 보는 둥 마는 둥 할 뿐이었다. 어린 김정남이 유모들 가까이로 다가가자 유모 중 한 명은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며 이를 다시 해야 한다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북한에는 썩은 이를 때울 수 있는 금을 갖고 있는 치과의사가 없었으므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린 정남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남은 곧장 자신의 금고로 달려가 비밀번호를 입력해 금 한 덩이를 꺼내 들었다. 놀란 유모는 벌떡 일어나 정남에게 달려갔다. 어린 정남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금덩이를 들어 보였다. “이걸로 치과 의사 선생님이 금니를 만들어주시면 안 되나요?” --- p.79

불륜, 파산, 기소, 구금까지 겪은 신상옥 감독이었지만 결국 그의 커리어를 끝내버린 것은 영화 속에 등장한 3초짜리 키스 장면이었다. 1975년 신 감독은 홍콩 쇼브라더스와 함께 공동제작한 영화 [장미와 들개(Rose and Wild Dog)]의 시사회를 열게 된다. 관객들은 대부분 고등학생이었는데, 영화에는 상반신을 노출한 여성이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앞서 심의위원회는 신 감독에게 해당 장면을 삭제한 후 상영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감독의 실수였는지 아니면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해당 장면은 삭제되지 않은 채 시사회에 그대로 나가고 말았다. 당시 시사회에 있었던 고등학생들은 부모들에게 키스신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사건은 신문에까지 실리게 된다. 이에 대해 당국이 내린 조치는 해당 장면을 삭제하지 않으면 시사회를 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윤리위원회는 더 이상 신상옥을 내버려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다. 신필름의 사업자등록을 취소해버린 것이다. 신상옥은 설마 키스신 때문에 영화사 문을 닫아야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 p.111~112

평양이라는 도시는 전혀 다른 세계 같았다. 기념비들은 가짜 같이 보였으며 동상들도 속이 텅 비어 있는 듯 보였다. 상점이나 레스토랑이나 광고판도 보이지 않았다. 길거리 좌판이나 카페, 바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평양 시내 전체에 상업이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자동차나 노인, 동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끌벅적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리에는 명칭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관공서에는 간판조차 달려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어디를 가나 김일성의 얼굴이 보였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신상옥은 말했다. “도시 전체가 마치 무덤같이 조용했어요.” --- p.173~174

허학순은 집에 통장 두 개를 보관했는데, 한 통장에는 항상 4원 15전이 들어 있었으며 다른 한 통장에는 2원 16전이 들어 있었다. 이 숫자들은 각각 김일성의 생일(4월 15일)과 김정일의 생일(2월 16일)을 상징했다. 허학순이 그리는 인생의 목표는 자신의 삶이 당의 신임을 얻게 되어 김일성의 이름이 새겨진 시계를 받는 것이었다. 그 시계야말로 노동당의 영광을 표현하는 것이리라. --- p.184

그다지 거창한 비밀 작전을 거치지 않은 납치도 있었다. 남한 어부들이 실수로 NLL 근처까지 표류하자 북한은 이들을 체제의 홍보물로 삼았다. 평양의 거리에서 환영식도 열어주고 미디어에도 노출시켜, 그들이 남조선의 지옥 같은 시장체제를 탈출해 노동자의 천국인 북조선으로 스스로 넘어온 것이라고 홍보를 한 것이다. 그리고 체제 홍보가 끝나자 어부들을 모두 노동교화소로 보내버렸다. 또 9300여 명의 재일교포들은 좋은 우대를 받을 것을 약속받고 스스로 배에 승선해 북한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저 따분한 업무와 정부 소유의 공공 주택이었다. 두 번 다시 일본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허락받지 못했다. --- p.196

하루의 해가 떠오르고 질 때마다, 신상옥은 죽에서 골라낸 돌로 날짜를 셌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창문가에 돌을 하나씩 올려놓으며 날짜를 셌다. 벽 구멍에서 생쥐들이 나와 더러운 화장실을 타고 올라가 배설물을 먹고는 다시 구멍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교도관들이 보고 있지 않을 때 신상옥은 손잡이 없는 숟가락을 들어 벽에 글씨를 썼다. 독방 안에서 유일하게 소지가 허락된 물품이었다. 벽에 자신의 이름과 함께 문장을 새겨 넣었다. “콘크리트 벽이 너무 두꺼워서 숟가락으로 글씨를 새기려고 해도 별로 티도 안 났어요. 그래도 조금씩 티가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신상옥이 벽에 새긴 문장은 이것이었다. “1979년 신상옥은 여기서 숨을 거두었다.” --- p.222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정권은 위조지폐 유통, 가짜 비아그라 생산, 마약 밀매, 보험 사기, 인신매매, 천연보호물 밀수까지 일삼았다. [뉴욕타임스]는 한때 김정일에게 토니 소프라노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또 김정일을 비토 코를레오네에 비유하며 김정일 부자를 일컬어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범죄를 계획해 실행에 옮기는 가족이라고 평가했다. --- p.240~241

탈북자 강혁의 말에 따르면 자아비판은 길게 쓸수록 좋다고 한다. 다섯 쪽보다는 열 쪽이 더 효과적이다. 장황한 표현은 많을수록 좋으며, 가끔은 주제를 벗어나도 괜찮다. 정치적 용어와 무의미한 표현들, 동의어를 반복하기도 하며 자신이 진심으로 회개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 달갑지 않은 작문을 요리에 비유하자면, 가장 중요한 재료는 강조다. ‘결연히’, ‘진심으로’, ‘단호하게’와 같은 부사들은 감미료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장황한 표현들은 케이크 위의 장식 같은 것이다. 사회주의의 일원으로서 걸맞지 않는 행동은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는 것이다. 주재료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꾸미는 부재료와 양념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날짜를 쓰고 서명을 하는 것이다. --- p.250~251

“자, 이제 그만 끌어안고 이리로 좀 오라우.” 김정일이 말했다. 두 사람은 오늘 밤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시키는 대로 했다. 신상옥은 자신보다 어린 김정일에게 머리 숙여 정중히 인사한 후 악수를 청했다. 김정일도 반가움의 표시로 신상옥의 손을 잡았다. 김정일의 왼편에는 신상옥이, 그리고 오른편에는 최은희가 섰다. 세 사람은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했다. “긴장하지 말라우. 남조선 신문에는 안 실릴 테니까!” 김정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농을 던졌다. 그리고 관중을 향해 돌아서서 공표했다. “동지들, 지금부터 신 선생님이 내 영화 자문가가 되어주실 것이야!” 귀가 멎을 정도의 열렬한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그리고 최 여사님은 우리 조선 여성들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어주실 것이라우!” 또다시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 p.272~273

“부도덕하고 음란한 죄를 저질렀기에 인민배우 우인희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인민의 이름으로 총살에 처해질 것이다.” 군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총소리가 공기 중에 울려 퍼졌다. 세 명의 군인에 의해 집행된 총살형은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첫 번째로 발포된 총알이 그녀의 가슴팍을 두르고 있던 밧줄을 가르자, 우인희의 몸이 마치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듯 앞으로 기울었다. 두 번째 사격은 머리를 명중했고 질척한 살덩이와 뼈, 뇌 덩어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마지막 사격은 우인희의 다리를 감고 있던 밧줄을 산산조각 냈다. 그녀의 부서진 몸은 발밑에 놓인 가방 속으로 쿵하고 떨어졌다. --- p.285

‘성분’, ‘수용소’, ‘김일성 신화’ 등은 1940년대부터 내려온 북한의 유산이다. 그러나 의식화 작업, 사회의 불협화음 제거, 반대 의견 묵살, 수천 개의 동상과 기념비 건설, 김일성 배지 착용 의무화 등은 모두 김정일이 지휘한 것들이다. 심지어 그는 각 가정마다 김일성 초상화를 달도록 지시했다. 김일성의 조부는 개신교 목사였으며 그의 아버지 또한 신학교를 다녔으며 일왕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일제에 맞서 싸웠다. 이런 장로교 집안에서 김일성은 성장했다. 그러나 권력을 잡자 김일성은 성경을 금지하고 교회를 폐쇄시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 대한 유일지배사상을 강화하기 위해 종교적 요소를 도용했다. 김일성은 기독교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아들 김정일은 기독교가 이미 금지된 세상에서 성장했으나 대중문화와 연예계를 어떻게 정치에 이용해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 p.303~304

‘낙숫물이 바위의 구멍을 뚫는다.’ 김정일은 정권 홍보와 더불어 인민의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신상옥과 최은희를 납치했으나, 이제 그들은 북한이라는 단단한 바위에 균열을 일으키는 낙숫물이 되어 북한의 수령절대주의에 구멍을 내고 있었다. --- p.372

신상옥의 진짜 의도가 뭐였든지 간에, [불가사리]는 그의 필모그래피와 인생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가 만든 영화 중 최악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널리 알려진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1960년대에 그가 만든 예술성 높은 명작들보다 [불가사리]가 오히려 그의 작품 목록의 맨 선두를 차지해버린 것이다. 가장 확실한 한 가지는 김정일이 이 영화를 만족스럽게 봤다는 것이며, 따라서 [불가사리]는 신상옥과 최은희의 목숨을 살렸다는 것이다. --- p.384

평양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는 외국인들은 김일성 광장과 그 주변을 연결하는 도로의 아스팔트 위에 그려진 흰색 점무늬와 작대기 표시,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곤 한다. 이 표식들은 모두 북한이 정치 행사를 개최할 때 인민의 이동 경로를 표시해놓은 것들이다. 영화나 연극으로 치면 가구나 소품의 배치 위치와 배우의 동선을 표시한 표식과 비슷하다. 즉,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평양 도로 위에 수놓인 수많은 표식은 바로 평양이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엄청나게 거대한 연극 무대라는 것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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