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젖어 살아온 문명의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문명을 맞는
이 기쁜 축제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 안에서 최대한 멋지게,
한껏 멋을 내고 오십시오.
자기 영혼을 제대로 대접하는 자리입니다.
100만 년을 이 별에서 함께 한
수고로움과 가슴 벅참을
같이 위무하고 축하하고 기뻐하는 자리입니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에서 잣대가 되어주던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사람들에게는 급격하다고 느껴지거나 또 지금까지의 잣대는 이런 상황들을 “불안정”이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오래 전부터 서서히 준비되어 온 일들이며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현 시점의 가장 큰 이슈인 “경제”에서부터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들을 받아들이기란 참으로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선 당면한 일 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찬찬히 둘러보면 이미 우리는 큰 변화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평등과 영혼의 무게를 알아가고자 하는 이들 중에 그들의 의식이 좁은 현생現生의 울타리 안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스스로가 벗어나게 될 것이 두려워 움츠리고 있다면 그들의 행보, 이 모두는 하나같이 ‘공염불空念佛’에 불과할 것이다.
과감히 벗어라, 나를 감싸고 있는 세상의 옷을.
그리고 또 입어라, 이번 생에 주어진 삶의 무늬들을.
지금의 모습만을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 모자란 부분이 전생에서도 이와 같았으랴. 다가올 문명은 정화를 통해 우리는 본연의 자아를 만날 수 있고 또 지난 많은 생에서 쌓아두었던 체험이나 공부를 꺼내 쓸 수도 있으며, 때로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정보까지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당분간은 순수하고자 하는 사람은 순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보다 더 똑똑해야 하고 더 잘 알아야 하고 더 제대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세상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자신을 잘 지켜내는 것, 잘 피해나가는 것도 또한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자신의 관리를 철저히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한다. 아직은 빛세상이 제대로 오지 않았기 때문에.
괴로움이 무엇일까요? 시간이 흘러간 후 뒤돌아보는 ‘괴로움’의 자리가 그 때와 똑같은지를 다시 살펴보세요. 괴로움이란 기쁘고자 하는 마음이 덜 충족된 상태이며, 가지고자 함은 많아지고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덜 충족된 것입니다. 이들을 얻기 위한 마음과 이에 대한 불충족감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슬프게 만드는 것입니다. 욕심과 모자람의 차이를 알게 될 때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발길 또한 달라질 것입니다.
‘나’라고 설정해 놓은 틀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나’란 내가 설정해 놓은 내 모습일 뿐
남들은 냉정하게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게다가 돌아서면 잊습니다.
필요한 것은 ‘용기’
다른 이들은 오히려
당신의 그 ‘벗은 굴레’를 부러워할지 모릅니다.
최근 몇 년간 내가 말해온 것은 몇 개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 중 하나가 보이지 않았고 만져지지 않았던 세상과의 조우에 대해서였다. 지금의 때는 수많은 생을 거치면서 자신이 만든 일들, 즉 업을 정리해야 하는 시기이며 이를 어느 시기보다 쉽게 할 수 있는 기회의 때이다.
각가지 에너지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보내면서 동시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에너지들이 숨어 있던 이 흠이 난 곳을 회복시키는 ‘보임保任’과 더불어 자신만의 내면의 힘을 키우는 일이다. 맑고 밝은 에너지를 채우며 내면 저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쌓아가 자신만의 오롯한 본래의 자아로 회복해 나가야 하는 일, 그 일 말이다.
물질이 중요한 시절을 살았고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자신의 결핍이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를 알게 될 때 그 때는 무엇을 찾을까? 당연히 기인된 바를 정리하여 결핍의 부분을 채우려할 것이다. 물질은 풍요란 산을 넘어서고 있다. (일부 어려운 나라들의 해석은 이와는 다르다.)
지난 시대 우리는 무엇이 절실했으며 무엇이 모자랐던가. 의식의 수준, 말로는 많이 들어 온 바이지만 앞으로는 참으로 이를 알고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주는 영향이 어떠한 것인지를 차츰 알아가게 된다. 이것의 '다름'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아가면서 더더욱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의식이 맞는다는 것이, 서로의 진동수가 맞는다는 것이 얼마나 편한 일인지, 그 어떠한 것에 비길 수 없다는 것을 몸을 담가 보지 않은 사람들은 실감이 쉽지 않은 것이다.
미래의 그 어느 때 지금의 결혼의 형태가 아직 조금이라도, 비슷하게라도 유지되고 있다면 (그에 맞는 용어가 나오겠지만) 너희 집은 의식이 어느 정도니? 너는 어떤 색의 뚸음으로 살고 있니? 너네 가족은 어떤 형태장을 가지고 살아가니? 하는 물음으로 처음 만남이 시작되지 않을까? 정말은 그러한 말조차도 필요 없이 그냥 알아진다는 것을, 그것이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모습이라는 것, 그리고 ‘참삶’이라는 것을 아시는 분들은 이미 다 아시리라.
서로 잘 어울린다는 것은
서로가 잘 맞고 편안한 진동의 흐름 안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것이리라.
지난 문명의 마무리, 이 시점에 우리가 해야 할 지극한 일은 지금까지 살아온 수많은 생들에서 자신이 만든 일을 매듭짓고 이를 풀어내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인 자신의 정리에 있다. 지금 우리에겐 누구의 잘못도 누구의 허물도, 타인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조차도 화살의 촉을 겨눌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사람도, 참으로 그 어떤 누구도 잘못이나 비난받을 만한 처사나 심지어는 칭찬받을 일조차도 우리는 지구에서의 치러 내야만 했던 우리 모두 각자의 공부였기 때문이다. 이번 생은 아닐지라도 다른 생을 들여 보는 것까지 모두를 포함했을 때 정말 이 세상 그 누가, 옥에 티조차 없는 “잘함!!”의 도장을 받을 수 있을지.
결자해지의 과정을 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닥치는 일 중에 어떤 이는 좀 더 빠른 정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이는 아직도 큰 무게를 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잘못된 판단으로 멀리 돌아가는 안타까운 일을 다시 스스로 만들고 또 벌이고 있다. 풀어내기도 바쁜 터에 지금 이때에 다시 자신의 발목을 묶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배가 있음을 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이 배를 이용해 영혼들이 건너야 할 “정화의 바다”를 그나마 힘 덜 들이고 건너시길 희망한다. “정화의 바다”를 건너는 이 일을 다른 이름으로 “해탈”이라고 한다. 또한 “부활”이라고도 한다.
지금까지는 혼자 이루어야 한다고 알아왔다. 그 바다를 혼자 수영을 해서 건너야 한다고 말이다. 실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리 할 수 있었던 이가 도무지 몇이랴? 그리고 시절이 저만치 옮겨 온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저 먼 건너편, 저 바다 건너에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우리는 굳이 가늠할 수도, 건너가기엔 힘에도 부치는 일에 이제는 생을 걸 필요는 없다. 하물며 목적지에 데려다 주고자 기다리는 배를 곁에다 두고 서랴.
불교의 핵심, 정수라고까지 할만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 전하는 뜻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었다. 그리고 새로운 문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또한 그들이 알 수 있는 현상들로써 풀었다.
전체를 6등분으로 나누었다.
이것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지구 내에서의 각자의 영혼이 감당해야 할 일과 우주적 본래 자아가 겪고 감당해야 할 부분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를 하나의 관점과 같은 영역에서 해석을 하면 너무나 다른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 언덕 너머의 세상을 지금 우리는 편의상 ‘빛세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은 피안으로 가는 길이 멀지 않았고 그에 닿을 수 있는 ‘헥소미아’라는 배도 띄워져 있다. 저 언덕 너머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그에 다가갈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수 생을 쌓은 오온을 정리, 정화함으로써 본래의 ‘나’로 회복하고 있고 동시에 상승된 의식의 세계, 새로운 문명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 빛세상이란 성인聖人격의 의식을 가진, 자신의 카르마를 넘어선 사람들이 살아가게 되는 세상으로 지금 지구의 모두는 이 빛세상을 향해 그 문을 들어가려 정화하며 애쓰고 있다.
이미 우리에게 다가온 여러 가지의 난제들, 경제부터 환경, 그에 따른 건강, 가족 지키기, 치안과 전쟁의 위협까지 나아가 사회 전반에 휘몰아치는 부정적 흐름, 이 모두를 슬프게만 받아들이지 말자. 98년에 거쳐 갔던 한국의 IMF가 우리로 하여금 정신적 성장을 부추겨주었고 나 아닌 이웃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다시 또다른 성장통이 지나갈 것이다. 한동안 우리를 힘들게 할 ‘어려움의 문’이 열렸다. 몇 년간은 이어지리라고 보는 세계 전체의 일이다. 10년 만에 닥친, 혹자는 앞을 헤아릴 수 없다고 하는 경제 환란의 이 기간이 지나면 우리는 이 시기를 절절한 감사로 받아들이며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변화의 시대’, 그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그리고 ‘조화’로의 문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잘 알지 못하고 익숙하지 않아 아직은 어렵고 힘들고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 배우는 것이 언제나 편하지 않듯 조금만 견디면 모두가 기쁜 ‘그 날’을 맞으리라. 그 방법은 ‘있는 그대로 그 영혼을 사랑하기’이다. 이제는 의식을 확장시키는 일에 모두 힘을 써야 한다. 의식을 확장시키는 일이야 말로 다른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이 새로운 문명이며 시작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