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체스터와 그의 동료들은 불로소득으로 살며 무한정으로 많은 여가시간을 즐기는 청년들이었다. 이런 특징적인 모습은 그 뒤 클럽의 회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도가 넘치도록, 그야말로 철철 흘러넘치도록 마시고 여자와 뒹굴었다. 신성을 모독하고 종교를 비웃었다. 로체스터를 악마에 비유하는 언급도 몇 개나 남아 있다. --- p. 48
난봉꾼 클럽과 마찬가지로 이런 단체들 역시 남성이 지배를 했다. 그리고 이웃으로부터 존경심 비슷한 것을 얻어내려고 안달이던 전문인, 상인, 장인 등의 중산층으로부터 회원을 충당했다. 개혁 단체 회원들은 사람이 저지르는 죄악을 신과 악마 사이의 싸움에서 악마가 신을 이긴 결과라고 믿었다. 무신론, 욕설, 신성모독 그리고 만취는 사탄 왕국의 징표들이었다. --- p. 51
계몽운동은 행복은 미덕이며, 즐거움이 행복을 더해준다고 주장했다. 클럽은 이러한 주장을 완성해주는 공간이었다. 또한 18세기에는 사교활동의 주요 덕목으로 섬세한 감각과 정중함이 높이 평가되기 시작했는데 이런 변화 역시 클럽을 매개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토론 문화가 몇몇 클럽에서 형성될 수 있었다. --- p. 56
교육받은 계층이 미신을 버리면서, 그 지적 공백을 채울 무언가가 요구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타난 것이 이신론理神論이었다. 정통적인 신자들의 눈에 무신론으로 비쳤던 이신론은 미신을 배격하되 기독교 정신까지 폐기하지는 않는 사실상 합리적인 관념이었다. 이신론자들은 오로지 자연 지식만이 인식 가능한 대상이라고 믿으면서도 진정하게 높은 유일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 p. 84
신성모독, 무신론 그리고 도덕적 해이가 이 같은 낭패의 주된 원인으로 비춰졌다. 여기에 비하면 탐욕은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신성이 부족했다. 젊은 회의주의자와 방탕한 상류계급 신사들의 헬파이어 클럽은 영국이 앓고 있던 도덕적 질병의 한 증상이었다. 그들은 종교를 조롱했고, 정부와 여론은 이들을 반드시 근절해야 했다. --- p. 91
헬파이어 클럽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연구를 했다. 하지만 사실에 입각한 탐구는 많지 않았다. 여러 자료들을 보면 이 클럽은 젊은 신사들이 모여서 악마를 위해 건배하고 그밖의 여러 신성모독적인 행동에 탐닉하던 모임이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듯 과연 이들이 유황과 술로 가득한 방에 모여 이른바 ‘성령 파이’와 ‘비너스의 가슴’을 먹으면서 스스로를 삼위일체이고 순교자이며 예언자라고 칭했는지, 또 한 여자에게 베개를 스커트 안으로 집어넣고 임신한 동정녀 마리아처럼 행동하라고 했을지는 의심스럽다. --- p. 97
스펜스는 대시우드 외에 고질적인 여행벽을 가지고 있던 또 한 사람을 이탈리아에서 만났다. 클럽 회원이자 난봉꾼이었던 이 사람은 바로 샌드위치 백작이었다. 샌드위치의 네 번째 백작 존 몬태규. 1718년에 태어난 존 몬태규는 로체스터 백작 존 윌머트의 손자로, 자기 할아버지가 받았던 난봉꾼 평판에 전혀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 p. 158
“당신이 원하는 걸 하라.”는 구호는 아마도 수도원 안에서는 어떤 행위를 하든 모두 허용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셔도, 신성모독을 해도, 난장판의 섹스를 해도 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여러 작가들은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서 법석대는 술판과 난교 장면을 그려냈다. 대시우드와 그 수도원을 중심으로 온갖 악마의 미사와 제의가 이루졌다고 상상했던 것이다. --- p. 187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메드멘햄 수도원을 거점으로 하는 비밀 클럽이 있었고 이 클럽은 역할놀이에 탐닉했다는 사실뿐이다. 이 수도원 안팎의 정원 장식물이나 글귀들을 눈으로 직접 보았던 윌크스의 묘사로 미루어보자면 수도원에서 진행된 이 클럽의 활동 가운데서 섹스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모종의 형식적인 제의들과 입회식도 행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비밀 엄수가 핵심 규칙이었던 이 모임에서, 회원 한 명이 이 규칙을 깨면서 대혼란이 일어났다. --- p. 190
성적인 묘사가 노골적으로 나오는 소설을 살 만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이 책을 자기 서재나 클럽에 숨겨둘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계층이었다. 예를 들어 ‘메드멘햄의 수도사들’은 음란물을 보관하는 클럽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더러운 책’을 구입하는 것은 헬파이어 클럽의 회원 자격처럼 상류계층의 특권이었던 셈이다. --- p. 210
‘메드멘햄의 수도사들’은 대부분 귀족이거나 국회의원으로 공직에 있었다. 헬파이어 클럽들과 18세기의 다른 비밀 클럽 회원들은 일반적으로 다 그랬다. 로체스터 백작과 와튼 공작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궁정 대신이거나 육군 혹은 해군의 ?위층이었다. 아일랜드 헬파이어 클럽의 회원들 역시 아일랜드 의회의 의원이었고, 18세기에 추문이 터졌을 때에도 그들은 사임 압력을 받지 않았다. 얼마 동안은 조롱거리가 되었겠지만, 정부와 같은 편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얼마든지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 p. 213
스코틀랜드의 여러 클럽들은 신성모독을 하지 않았고 악마를 숭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헬파이어 클럽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비밀결사였던 건 사실이다.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 비밀결사는 정부를 뒤집으려는 집단이었다. --- p. 281
영국 헬파이어 클럽들과 식민지 아메리카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인물은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그는 프랜시스 대시우드 및 ‘메드멘햄의 수도사들’과 친했다. 1721년 프랭클린의 형 제임스가 발행하는 신문을 코튼 매더가 공격하면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나중에 매더가 프랭클린 형제와 친구들이 ‘헬파이어 클럽’의 회원이라고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 p. 309
18세기가 저물면서 무책임하고 난잡한 생활 방식도 스러지기 시작했다. 연이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는 일이나 비밀클럽에 관한 일은 사람들의 머리에서 지워졌다. 이제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지키고 적국의 침입을 막는 일에 관심을 쏟았다. 한가하게 목가적인 생활을 하며 어슬렁거리던 귀족들이 멀쩡한 정신을 가진 책임 있는 지도자로 바뀌기 시작했다. 신을 두려워하는 중간계급들 즉 의사, 변호사, 제분업자 그리고 기업가들은 지배계급의 태도와 도덕경제를 바꾸는 일을 도우러 나섰다.
--- p.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