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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전의 역사

항공전의 역사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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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군사 top100 1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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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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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년 02월 27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608쪽 | 1001g | 160*232*32mm
ISBN13 9788946059641
ISBN10 8946059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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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 자 소 개
존 H. 모로우 (John H. Morrow Jr.)
조지아대학교의 프랭클린 역사학 교수이다. 전공분야는 현대 유럽·전쟁·사회의 역사이다.

리처드 오버리 (Richard Overy)
킹스칼리지런던의 현대사 교수를 거쳐 2004년에 엑세터대학교 역사학 교수가 되었다. 항공력의 역사와 제2차 세계대전사의 전문가이다.

리처드 R. 뮬러 (Richard R. Muller)
고급항공우주학교의 군사사 교수이다. 전공분야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항공력 발전의 역사로서 항공력의 역사, 전략, 의사결정, 기술, 군사혁신에 관한 핵심과목들을 강의하고 있다.

앨런 스티븐스 (Alan Stephens)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의 방문교수로서 군사사와 전략, 특히 항공력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웨인 톰슨 (Wayne Thompson)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펜타곤의 체크메이트 항공전력기획단에 참여했으며 『걸프전 항공력 운용 조사보고서』 작성에도 기여했다.

슈무엘 L. 고든 (Shmuel L. Gordon)
1964년에 이스라엘 공군에 합류하여 25년간 전투조종사로 복무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국제관계 및 전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이스라엘의 국가전략과 현대전에 관해 폭넓은 저술활동을 해왔다.


로런스 프리드먼 (Lawrence Freedman)
1982년부터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전쟁학 교수로 일해왔으며, 2003년에는 같은 대학의 부총장(연구분야)에 임명되었다.

존 안드레아스 올슨 (John Andreas Olsen)
노르웨이 국방대의 교수부장이자 전략학 처장이다. 스웨덴 국방대의 작전술 및 전술 방문교수이기도 하다. 드몽포르대학교에서 역사 및 국제관계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로버트 C. 오언 (Robert C. Owen)
엠브리리들 항공대학교의 항공과학과 교수로서 항공운항, 법률, 역사 관련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랜드연구소의 비상근 선임분석가이기도 하다.

토니 메이슨 (Tony Mason)
영국 공군의 퇴역 소장이며 버밍엄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명예학장이다. 1986~1989년 동안 공군장관이었다.

벤저민 S. 램버스 (Benjamin S. Lambeth)
랜드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윌리엄슨 머리 (Williamson Murray)
예일대학교에서 군사-외교사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95년에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역사학 명예교수로 은퇴했다. 현재 국방분석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다.

이타이 브룬 (Itai Brun)
이스라엘 공군의 준장이며 현재 이스라엘 방위군 군사학종합연구센터의 소장이다.

제임스 S. 코럼 (James S. Corum)
발틱국방대학의 학장이다. 1991년부터 2004년까지 앨라배마의 맥스웰 공군기지에 있는 미 공군 고급항공우주학교의 교수였다.

마틴 반 크레벨드 (Martin van Creveld)
런던정경대학에서 역사학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71년 이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의 역사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군사사와 전략에 대한 세계적인 석학 중 한 명이다.

리처드 P. 핼리언 (Richard P. Hallion)
머릴랜드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도널드 라이스 미 공군장관의 이슈 및 정책 선임분석관을 역임했으며, 11년간 공군 역사가로 일하기도 했다.


역자 : 강창부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학사·석사 과정을 마쳤다. 2007년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는 공군사관학교 군사학과에서 전쟁의 과거, 현재, 미래를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역서에 『근현대 전쟁사』(2016), 『현대전의 이해』(2014), 『항공우주시대 항공력 운용』(2010, 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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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1월에 프랑스인 파르망(Henri Farman)이 자체 동력으로 브아쟁(Voisin) 복엽기를 몰아 최초로 공인(公認) 1킬로미터를 비행했다. 10월 30일에 그는 부이(Bouy)에서 랭스(Reims)까지 약 27~30킬로미터에 걸쳐 최초의 국토종단 비행을 실시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군사 관찰자들은 이러한 두 업적을 군사적 용도에 활용 가능한 항공의 탄생을 알리는 일들로 간주했다. --- p.37

1911년에 이르면 모든 유럽국가들이 군사항공을 발전시키는 일에 임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일부 관찰자들은 항공전에 대한 두려움 자체가 육군과 해군의 해체를 가져올 것이며, 항공전은 너무 섬뜩하여 전쟁이 “그 자신의 과잉”으로 인해 죽게 만들 것이라고 추정했다.6 --- p.38~39

군사항공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결정짓지 못했지만 비행기는 전장에서 육군을 지원하는 데 진정한 중요성을 확보했다. 전장 상공의 공역에 대한 통제는 제1차 세계대전기 승리에서 필수적이게 되었으며, 이는 20년 뒤의 장차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사실 전략항공은, 비록 그것이 장차 전쟁에서 승리의 열쇠를 제공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1914년의 분쟁에서는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전투기 조종사와 대지공격 승무원들은 20세기 나머지 기간 동안 사용될 기본적인 전기(戰技)를 발전시켰으며, 그런 젊은 항공인들 중 다수가 두 번째 세계대전에서 항공지휘관이 되었다. 전략과 전술 모두에서 1914~1918년의 항공전은 1939~1945년에 있을 보다 대규모적인 항공전의 전조(前兆)가 되었다. --- p.62~63

일본의 비행훈련법―특히 해군 비행사들을 위한―은 세계에서 가장 힘든 것들 중 하나였다. 전투기 에이스 사카이(Saburo Sakai)는 해군비행학교에서의 훈련 중 수업의 절반 이상이 중단되었는데, 이는 대부분 가장 사소한 위반 때문이었다고 회상했다.25 그러한 프로그램은 분명 최고 수준의 조종사들을 낳았다. 그러나 가혹한 도태율을 낳았던 그것은 현대전투가 요구하는 수의 훈련된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는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한 독일 역사가는 그들이 정보, 병참, 훈련과 같은, 일상적이지만 필수적인 기능들보다 군인적인 가치를 옹호함으로써 전쟁에 대한 “전(前)산업적”인 접근법을 취했다며 독일 공군의 지도부를 비판했다.26 이런 관찰은 일본 해군에게도 잘 적용된다. 이 같은 훈련체계로는 손실된 초기 기간요원들을 대체할 인력을 공급해줄 수 없었다. --- p.103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책의 연속에 지나지 않다”는 클라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의 유명한 혹평은 한국에서 역력히 입증되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전쟁은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인해 싸운, (영토나 자원 때문이 아닌) 정치적인 전쟁이었다. 전략은 전쟁 내에서의 억제개념을 전쟁의 주역들이 암묵적으로 받아들인 상황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그것은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어디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엄격한 제약을 가했다. 전쟁은 미국과 소련에서의 정치가 그것이 끝나기를 원했을 때 끝난 것이지 어떤 군사적 해결에 이르러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1951년 중반에 지상에서의 전쟁은 상상력이 부족하고 이길 수 없는 일련의 전투들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한 교착상태에 도달하자 가장 흥미로운 전문적 연구거리를 제공한 것은 공중에서의 전쟁이었다. --- p.156

남동 아시아에서 미국의 항공전은 그때까지 수행되었던 것 중에 가장 낭비적인 것이었다. 투하된 800만 톤의 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의 도시들을 편평하게 만들어버렸던 거대한 폭탄 세례조차도 왜소해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공산 북베트남의 수도이자 주요 도시인 하노이는 멀쩡하고 의기양양했다. 이것은 항공력이 잘못 사용된 사례에 대한 이야기지만, 바로 이 항공전으로부터 다른 곳에서는 항공력이 보다 유용해지게 만들어줄 유도폭격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1 --- p.158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축출하기 위해 고안된 미국 주도의 군사전역이었던 사막의 폭풍 작전은 … 이라크를 향해 광범위하고 깊숙하게 이루어진, 기민하며 육·해 합동적인 기만 노력과 신중한 군수기획과 결합되었던 지상전역은 인상적인 성취를 달성해냈다. 그러나 승리의 속도와 규모를 평가함에 있어 연합군의 성취는 상당 정도 포괄적인 공중공세 덕분에 가능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상에서의 전투는 보통 주요 군사전역을 특징지었던 운명의 부침(浮沈)이 없이 전개되었다. 지상공세가 시작되기 전에 1800대 이상의 전투항공기가 작전에 임했고, 대략 11만 회의 기록된 비행을 실시했으며, 9만 톤 이상의 공중무기를 투발했던1 항공작전이 전투의 운명을 결정지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체제와 군사력에 충격을 가한 것으로 드러난 것은 그런 규모만이 아니라 항공전역의 전례 없는 정밀성도 들 수 있다. 투하되거나 발사된 모든 무기들 중 대략 8%는 정밀유도무기였다. 이런 무기는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항공력의 효과성을 상당히 개선시켰다.2 --- p.246

항구적 자유 작전은 합동 및 연합 항공력이 특수작전 중심적으로 적용된 사례였으며, 이는 결국 미국의 새로운 전쟁수행 방식의 하나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10여 년 전의 사막의 폭풍 작전과 비교해보았을 때 특히 차별화되게도 이 전역의 결과는 육지로 둘러싸인 전투지대로부터 해전의 역사상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항공모함 작전기지로부터뿐 아니라 표적지역으로부터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상기지들로부터도 전력을 성공적으로 투사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을 보여주었다.49 항구적 자유 작전이 시작되었던 10월 7일부터 탈레반 붕괴 후 전쟁의 첫 국면이 끝났던 12월 23일까지 76일에 걸친 폭격 동안에 연합항공작전본부에 의해 취합된 통계가 증명해주듯이, 총 6500 공격소티가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120여 개의 고정표적, 400대의 차량과 포, 그리고 결집하는 많은 탈레반과 알카에다 전투원들에게 1만 7500개의 폭탄이 투하되었다. 소비된 연합군 폭탄의 총수(總數) 중 57%는 정밀유도무기였다. --- p.362

항구적 자유 작전은 테러리즘에 대한 전 지구적인 전쟁에서 최초의 주요한 군사적 움직임이라는 매우 중요한 역할 외에도 20여 년간 등장한 가장 중요한 항공력의 발전들 중 일부를 실제 전투를 배경으로 시험하기 위한 전투실험장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 전쟁은 무인 정보·감시·정찰 플랫폼(MQ-1 프레데터)이 정밀공격무기로 처음 사용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p.369

항공력에 대한 독단적인 접근법에 젖어 있는 항공인들은 모든 항공자산에 대한 지휘를 통일하기 위한 그들의 편협한 열망과, 왜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지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슈를 너무 흔하게 혼동하고 만다. 항공력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는 적의 성격뿐 아니라 보다 폭넓은 전략적·정치적 맥락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전략적 항공전역은 대부분 비효과적이었다. 그것은 분명 후세인 체제의 몰락을 이끌지 못했으며, 설령 그런 항공전역이 계속되었다고 해도 그런 결과는 달성될 것 같지 않았다. 메소포타미아 계곡의 중심부로 밀고 들어가서 바그다드를 점령한 지상침공만이 후세인 타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공군과 해군은 영토를 점령할 수 없었다. 20세기 역사에서 그들이 행한 이례적일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고려한다고 해도 공군과 해군은 대부분 성공적인 지상전역을 위해 길을 닦아주는 주요한 가능화요소(enabler)였다. 육군병사들과 해병만이 대지를 점령할 수 있으며, 정치적·전략적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대지에 대한 통제다. --- p.392

공군의 경우, 단기적으로나 심지어 장기적으로도 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능력의 범위와 그들이 이행하는 책임, 그리고 항공력 “전담” 공급자로서 그들의 성격은 오늘날 그들이 육군과 해군의 자군 중심 항공군을 초월하는 특별한 지위를 점유하도록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 p.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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