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식탁에 오르기에 앞서 생명을 헌납한 동식물들이 석회암 동굴 같은 우리의 창자 속을 통과하면서 해탈하는 순간에 오도송悟道頌처럼 읊조린 게 방귀일 수도 있어요. 평생 인간이 먹어치우는 오십여 톤의 생명들 중에는 살아서 경전 한 구절 정도는 알아들었던 것들도 있지 않을까요? ---「방귀」중에서
결코 제 능력이 닿지 못해서 얻지 못하는 것을 두고, 마치 얻을 수 없는 것들은 하나같이 형편없는 것처럼 험담하는 자들이 세상엔 얼마든지 있다. 속으로는 상대의 실패를 기대하면서도 겉으로는 존경과 복종을 다짐하는 자들의 표리부동에 L은 쉽게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권력이 숙명을 만들고 자신은 그 과정만을 묵묵히 감내할 뿐이다. ---「고독한 자들의 점심식사」중에서
“원래 용서란 인간이 발명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 인간이 발명한 건 뭐지?” “그건 복수죠. 죄나 벌은 아니고.” ---「춤추는 남자」중에서
그를 전쟁터에 보낸 이는 우리였고 양팔이 잘린 그를 살린 이도 역시 우리였으므로 그에게 살아갈 용기를 줘야 하는 것도 우리가 아닐까. 비록 자신이 당시의 대통령과 의원들에게 찬성표를 던지지는 않았더라도 미국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고 그가 납부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군대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외국과의 전쟁에 참여한 이상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환각지통」중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바닥을 딛고 일어나는 것이지 하늘을 붙잡고 일어나는 건 아니죠.” ---「오디션」중에서
어느 인간도 자신의 죽음을 부정할 수 없고 명백한 죽음으로부터 삶의 의지가 건너오는 이상, 사랑이 일어나지 않는 삶이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연꽃」중에서
삶의 의지는 탄생으로부터 시작된 파동 에너지가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건너오는 암흑 에너지이다. 에너지의 속도나 방향이 변할 때 사건이 일어난다. 그게 사랑이다. 그렇게 하찮기 때문에 인간에겐 너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