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란 과거와 미래 사이의 격렬한 투쟁이다!
쿠바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혁명 전사, 피델 카스트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모든 혁명가의 의무다.
제국주의자들이 아메리카에서의 유혈극을 준비중일지라도
그들은 민중의 투쟁을 분쇄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드라마의 끝은 탐욕스럽고 식인적인 체제의 종말이 될 것이다.” _피델 카스트로
20세기 후반에 벌어진 가장 폭발적 민중혁명은 태양의 대륙 남미에서 시작되었다. 독재정권의 폭압과 미국의 야욕에 맞선 게릴라전으로, ‘다윗의 일격’이라 할 만한 승리를 거둬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카스트로. 그의 숨결 어린 글들을 통해 불꽃처럼 타올랐던 쿠바혁명의 열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순종의 섬에서 혁명의 메카로,
쿠바에 혁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남아메리카는 형식적으로 독립하여 주권을 회복했으나, 실제로는 낡고 기생적인 사회·경제구조를 깨뜨리지 못한 채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이처럼 봉건적 엘리트들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세력을 장악하고, 토착민을 억압하는 것이 정상으로 간주되던 때에 쿠바에서 최초로 반제국주의 혁명이 일어나리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1953년 7월 26일 젊은 변호사 피델 카스트로는 소수 무장집단을 이끌고 오리엔테 지역의 산티아고데쿠바에 있는 몬카다 병영을 공격했다. 미국과 마피아 집단에만 의존하고 있던 바티스타 군부정권에 반기를 든 것이다. 물론 무장투쟁을 벌이기 이전에 카스트로는 학생시위를 조직하면서 반정부활동을 벌였었다. 그러나 폭력적 대중봉기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몬카다 병영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물론 결과가 좋지만은 않았다. 대부분의 게릴라는 사살되었다. 카스트로를 생포한 바티스타 정권은 그를 외부 세력으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 그에 대한 재판을 군대의 삼엄한 경비하에 산티아고 시민병원에서 진행하였다. 변호사 경험이 있던 카스트로는 스스로를 변호하기로 마음먹고, 몬카다 병영 공격에서의 성공을 대비하여 준비해두었던 공식 성명의 내용을 자신의 최후 진술로 설파한다. ‘역사가 나에게 무죄를 선고하리라’라는 이 진술은, 카스트로에게 커다란 유명세를 선사하면서 그를 혁명의 선봉장으로서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혁명의 시작이 곧 혁명의 끝은 아니다!
혁명의 과정에서 벌어진 복합적 사건들과 노선 변화
1954년 사면으로 풀려난 카스트로는 멕시코에서 거사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난공불락의 섬 쿠바에 침투해 오리엔테 지역의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악에 둥지를 틀었지만, 상륙 직후 바티스타군의 매복공격으로 게릴라들은 고작 열두 명만 살아남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들은 쿠바 내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산악 지역에서 평지로 이동하며 마을들을 접수하였고, 결국 쿠바를 관통하여 아바나에 입성, 혁명을 승리로 이끈다.
이러한 승리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쿠바에서, 그 작은 세력이 힘을 모아 정권을 장악했다는 사실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혁
명을 일으킨 이들에게 이 혁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걸까. 제1, 2차 아바나 선언은 쿠바혁명의 의미를 대외적으로 선포한 선언문이다. 쿠바혁명에 관한 의구심을 해소시켜주었던 제1차 아바나 선언은 미국 소유의 정유시설, 설탕제분업 관련 기업에 대한 국유화, 그리고 쿠바인 소유 기업의 몰수 같은 혁명의 급진화 과정 이후에 발표되었다. 쿠바의 급진화에 반발한 미국은 쿠바와의 교역을 제재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대처로서 카스트로는 혁명광장에 모인 수백만 대중 앞에서 미국으로부터의 완전 독립을 천명하는 제1차 아바나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는 또한 쿠바 내부의 진보적 연대 틀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제1차 아바나 선언 이후 미국 정부는 급히 쿠바의 혁명정부와 남아메리카의 다른 국가들 사이에 차단선을 쳤지만, 이는 오히려 쿠바의 급진적 대응을 초래했을 뿐이다. 쿠바혁명의 지도부는 보상 없이 미국 기업을 몰수했고 미국과의 외교관계도 단절했다. 피그 만 침공에 대한 격퇴 역시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미국의 전면적 봉쇄조치에 대응해 쿠바는 결국 모스크바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스트로는 제2차 아바나 선언을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그의 신념을 드러내 보여주었으며, 동시에 혁명 주도세력들을 찬찬히 통합해나간다. 이 시점에서 공산주의와 재산 몰수에 공포를 느낀 엘리트와 중간계급이 해외로 이주하기 시작했으며 정부의 혁명 노선은 더욱 급진화된다.
뜨거운 열기,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
혁명은 계속 변모하고 발전한다
게릴라군이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악에 있을 당시에는 혁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혁명의 방향은 혁명 이후 주변 국가들의 소란스럽고 강력한 반발을 거치면서 바뀌어나갔고, 민족주의자에 가까웠던 카스트로는 사회주의자로 변모되기도 했다. 물론 제2차 아바나 선언 이후에 쿠바는 미 제국주의를 비롯하여 소련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남아메리카 공동 전선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이번 책에 수록된 카스트로의 세 명문은, 외부의 복합적 상황들을 거치며 일어난 혁명의 노선 변화를 살펴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혁명의 뜨거운 열기, 새로운 사회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들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