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적 접근 방법이 국가안보 정책 현안에 대한 분석과 대안제시 과정에서도 유용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 등 거대이론들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국제정치학의 모델이나 분석틀을 중시해 안보 정책을 구상할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안보 정책의 대안이 협소해질 수 있다. 그러나 역사학적 접근 방식에 입각해 안보 정책을 검토할 경우, 좀 더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검토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 후반부에 게재한 글들은 다소의 역사학적 방식을 적용해 북한 핵 문제나 동아시아 안보질서의 현안들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본 결과이다. --- p.7
이승만 정부는 서구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영향 속에서 훌륭한 국가 건설의 비전과 구체적인 안보 전략의 방안들을 제시했지만, 실제 정책 추진에서는 미숙함을 드러냈던 것이다. 공업 및 무역 국가 건설 구상은 정책의 지원을 받지 못했고, 한미동맹 이외 태평양동맹의 구상은 표류하고 있었다. 경제 및 외교 정책 혼미 속에 지식인들의 정권에 대한 불만과 이반이 증폭되고 있었다. 이 같은 정책의 혼미는, 냉전 초기 공산주의의 파장이 거세지던 동아시아의 정세를 염두에 둘 때, 곧바로 국가의 안보 위기로 직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 --- p.50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대 초반에 행한 일련의 연설에서 국내외 안보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근본적인 과제가 국력 배양, 즉 정신적·물질적인, 모든 종합적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국방력과 경제력의 건설이 핵심이라고 보았다. 이미 박정희 대통령은 1968년, 향토예비군을 창설하는 과정에서 ‘자주국방’의 용어를 사용하며 우리 자신을 우리의 능력으로 지킬 수 있는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1970년대 접어들어 박정희 대통령은 좀 더 명확하게 ‘자주국방’의 개념을 설명하고, 그 구체적 과제들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 p.85~86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발탁해서 임기 종료까지 외교안보 수석으로 중용한 김종휘는 북방 정책이 미국, 일본, 유럽 등 서방 중심이었던 한국의 외교 영역을 사회주의권까지 확대하고 궁극적으로는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이해했다. 그는 소련 및 중국과 수교함으로 경제적으로 방대한 시장을 확보할 수 있고 안보적으로는 북한의 최대 지원 세력인 소련 및 중국과 관계를 개선함으로 한국의 안보 환경을 강화하며 북한을 국제사회로 유도하는 강압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 p.116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초반부터 일관되게 추진한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를 위한 포괄적 접근 전략’, 즉 햇볕 정책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국가안보 전략이었다. 북한과의 교류와 접촉의 빈도를 늘려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구축을 실현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한다는 의도를 담은 전략이었다. 그런 면에서 햇볕 정책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추진된 남북대화와 7·4 공동성명,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에 의해 추진된 북방 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의 연장선상에 있는 국가 전략의 성격을 갖고 있다. --- p.177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창하면서 동북아 평화번영 질서 구축을 위한 국방 분야의 주도적인 역할 수행을 강조했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을 대상으로 한 양자 및 다자협의체에서 군사 외교는 적극성을 보이지 못했다. 동맹 및 우방 관계로서 좀 더 중시되어야 할 한미 및 한일 관계에 비해 한중 관계가 ‘불균형적’으로 발전되는 양상을 노정하기도 했다. 양자 및 다자간 안보협의체에서의 상호 안보협력 및 역내 안보 관련 어젠다의 제시는 미흡했다. --- p.221
이명박 정부가 현저한 성과를 나타냈다고 보이는 외교안보 분야 정책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아시아 및 글로벌 외교에서 이슈를 선점한 점을 들 수 있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 등에서도 기후변화에 대응해 대체에너지 활용 및 에너지 절약형 기술 등의 개발이 추진되지 않은 바는 아니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의 새로운 비전으로 설정하고, 일관되게 내외에 이 이념을 설명하며, 관련 연구소 및 국제기구를 적극 설립하거나 유치하면서 이 분야에 대한 국가의 대외적 발언권을 높인 사례는 많지 않다. --- p.249
북한은 아직 민주화나 경제성장을 성취하지 못한 국가로서, 자신들의 내부 문제점을 전가하기 위해 발전 국가에 속하는 한국에 군사적으로 도전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특히 북한 지도부는 전쟁 도발이 자신들에게 초래할 비용보다는 분쟁의 결과에 대한 낙관주의적 전망을 가질 개연성이 크다. 만일 북한에 의한 대남 분쟁이 발발한다면, 북한은 자신의 핵 및 미사일 전력 그리고 특수전 전력 등 자신들이 갖고 있는 비대칭능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전면전, 국지전 그리고 사이버전 등의 유형 가운데 자신에게 유리한 전쟁수행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 p.310
동아시아 지역은 한반도를 둘러싼, 한반도가 포함된 공간이다.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평화와 번영은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 없이 달성될 수 없다. 지난 60여 년간 한국의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 그리고 사회적 발전은 경이로운 속도로 달성되었다. 향후 한국은 지속적으로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달성해야 하고, 북한 문제도 해결해 한반도 평화의 세계를 달성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적 과제 달성을 위해 북한의 정상국가화와 동아시아 지역의 상대적 안정과 공동번영이 불가결하다. 이 때문에 한국은 자국의 국가이익 추구를 위해, 북한의 정상국가화 및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공동번영과 안정을 강구하는 국가전략을 수립·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