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logue.
녀석을 두고 어느 한 군데 모자람이 없다고들 했다. ‘빼어남’, ‘수려함’ 등등의 미사여구의 진수를 보여줄 듯 근사한 생김새가 그렇고 상위권을 우습게 독식해 버리는 성적도 그렇고. 만백성에게 자비를 베푸는 군주처럼 한 번씩 어울려 주는 농구나 축구 게임에서도 녀석은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녀석은 집안 수준조차 완전무결 그 자체였다. 한국 5대 기업에 속하는 재벌 집안이라고도 하고 한국에서 땅이 제일 많다고도 했다. 금융계 큰손이 녀석의 아버지라는 소리도 있고 조선 말기부터 쟁쟁한 권력을 휘두른 정치 명가, 온 집안 식구들이 죄다 판사에 검사인 법조계, 하다하다 한국에서 가장 큰 폭력조직 두목의 아들이라는 소리도 있었다.
사실로 확인된 건, 물론 없다. 녀석에 대한 수많은 소문 중 가장 큰 지지를 얻고 있는 몇 가지를 나열한 것일 뿐이다. 뭐든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으면서 녀석의 집안 수준까지 완벽하다고 지레 단정하는 건, 아마도 녀석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녀석은 고교생이라고 하기엔 과하리만치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눈빛만으로도 군중을 휘어잡는 고 순도의 카리스마 또한 필시 거기서 생겨난 것이리라.
모두가 홀리듯 녀석에게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녀석과 친구가 되진 못했다. 사이가 좋다 해서 친구라고 우기기엔 뭔가가 미흡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닫기 때문이다. 녀석과의 사이에는 유대감과 결속력이 없었다. 그래서야 그저 단순히 아는 사이 이상은 될 수 없다. 결국 모두가 녀석을 무서워했다. 친구가 아니면 적이라는 식으로, 인간관계에서의 흑백논리가 너무도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더 무서웠다.
“가엾은 토끼를 발 앞에서 이리저리 굴려대는 사자 같아. 한껏 포식한 사자. 배가 부르니 잡아먹을 생각이 없는데도 단순한 유희 때문에 약한 짐승을 극도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고 즐거워하는 거지.”
교실 창가에 느긋하게 서서 밖을 내다보는 녀석을 힐끔대며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해칠 의도가 없지만, 그래서 더 공포인 거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제 날름 먹힐지 알 수 없으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생사의 기로에 선다 해도 절대 변치 않을 것 같은 그 여유로움이란 감히 흉내 낼 수조차 없는, 녀석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안혁주, 교감이 불러. 당장 상담실로 오래.”
녀석의 이름이 소리로 만들어져 나온 것뿐인데 웅성대던 교실이 일순 조용해졌다. 원희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사자든 뭐든 간에 맹수의 존재감이란 바로 저런 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맹수론, 과연 동감이 간다.
귀찮고 성가신 듯, 못 들은 척하다가 녀석이 끝내는 느릿하게 일어섰다. 반쯤 풀려 있던 타이의 매듭을 조이고 교복 상의의 단추를 깔끔하게 채우더니 짤막한 머리를 슥슥 매만졌다. 아주 간단한 장치 몇 가지로 녀석은 맹수의 모습을 말끔하게 털어냈다. 잘생기고 단정한 모범생으로의 변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을 뒤로하고 녀석이 사라졌다. 교실 안은 다시 와글와글 끓어올랐다.
“글쎄. 맹수라기보다는 맹금, 류에 가깝지 않을까?”
원희가 무심코 혼잣말하며 이미 사라지고 없는 녀석의 자취를 눈으로 좇았다. 사실 원희는 녀석을 두고 사자나 호랑이 같다는 느낌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동물에 빗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지만 왠지 새삼 진지하게 궁리하게 된다.
원희는 창가로 천천히 다가갔다. 자신의 영역을 수색하듯 움직이던 녀석의 시선이 떠올랐다. 평소에도 녀석은 늘 관찰을 즐겼다. 어쩌면 그런 모습들이 하나둘씩 쌓여서 하늘을 나는 무언가를 연상하게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뭘 그렇게 흥미롭게 보고 있었던 것일까? 궁금해서 슬쩍 밖을 내다보는데 순간 핑- 현기증이 돌았다. 원희는 미간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섰다. 교실이 5층에 위치한 덕분에 전망이 괜찮은데 이상하게 기분은 나빴다.
‘그러고 보니 빈혈약 다 먹었어. 오늘은 잊지 말고 꼭 약국에 들러야지.’
고소공포증이라는 말 자체가 나약한 이미지라 싫었다. 원희는 괜히 헤모글로빈이 부족한 탓으로 돌렸다.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아직 상담실에 붙잡혀 있는 건지 녀석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무료한 하루의 반밖에 지나가지 않았고 하교 전까진 아직 여섯 시간도 더 남은 즈음. 교실을 벗어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녀석이 부러워진 원희가 나직한 한숨을 흘렸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