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은 단순히 그림에 형상을 빌려주는 존재만은 아니다. 물론 그림을 처음 배울 무렵 미술학도들은 모델의 외적인 형상을 따라 그리기에도 급급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화가들은 자신이 그리는 대상이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의식과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고, 그 의식과 영혼을 표현한다는 것이 실로 엄청난 도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서문」중에서
마르게리타를 향한 라파엘로의 따뜻한 시선은 그의 「시스틴의 마돈나」에도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귀엽기 그지없는 아기 천사와 성인에게 둘러싸여 아들 예수와 함께 현현한 인류의 어머니 성모마리아. 관자를 향한 그녀의 눈길은 「라 포르나리나」에 비해 좀 더 기품이 있고 거룩해 보이나, 인간적인 따뜻함만큼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 사랑과 관용이 한 사람을 향한 것이냐, 전 인류를 향한 것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랑이란 애당초 차별을 모르는 고귀한 가치다. 최소한 라파엘로에게는 그랬다. --- p.24「라파엘로 | 마르게리트」중에서
1664~65년 렘브란트는 사별한 헨드리키어를 작품 「주노」의 모델로 삼았다. 로마 신화의 주노 여신은 그리스 신화의 헤라 여신에 해당하는 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듯 결혼과 가정의 수호자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그려진 주노 여신. 어두운 배경」중에서 단단한 부조처럼 떠올라 있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힘과 권능을 지닌 여신을 보노라면 어떤 시험과 재난이 닥쳐와도 끝내 가정을 지키는 진정한 현모양처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양미술사상 가장 이상적인 사후 초상의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헨드리키어에 대 한 렘브란트의 속 깊은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고 있다. --- pp.66-67「렘브란트 | 헨드리키어 스토펄스」중에서
「공원 벤치」는 캐슬린이 죽기 전에 구상한 것이지만, 작품은 그녀의 사후 티소가 파리로 돌아간 뒤 완성됐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옛 행복을 그리워하며 얼마나 눈물을 적셨을지 눈에 선하다. 그림을 완성한 후 그는 이 작품을 전시에는 내놓으면서도 결코 팔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40년 여생 동안 늘 곁에 두고 그리운 추억으로 바라보았던 작품인 것이다. --- p.108「티소 | 캐슬린 뉴턴」중에서
「욕조 속의 누드」는 보나르가 마지막으로 그린 마르트의 이미지다. 마르트는 욕조 속에 편안히 누워 한가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영원히 욕조」중에서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모습」중에서 그녀가 평소 얼마나 목욕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화려한 욕실의 색조는 그런 그녀에 대한 보나르의 찬미가다. 물속으로 풀어진 그녀의 몸은 보석보다 더 영롱하고 그녀에게서 퍼져나가는 광채는 무지개보다 더 찬란하다. 이 무렵 마르트의 욕실은 실제로는 하얀색이었다고 하는데, 화가에게는 이렇듯 무지갯빛으로 비쳤으니 그녀의 존재가 그에게 얼마나 화려한 광원(光源)이었는지 알 수 있다. --- p.150「보나르 | 마르트」중에서
「키스」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관능적인 여성 그림으로 유명하다. 클림트에게 모델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모델들이 그에게 충분한 영감과 자극을 주지 못했다면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에로티시즘의 세계를 뜻대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점」중에서 그의 걸작들은 그의 예술적 재능과 노력뿐 아니라 그의 모델들이 준 영감과 자극에 힘입은 바 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