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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사회제도 연구

농촌 사회제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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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465쪽 | 692g | 153*224*30mm
ISBN13 9788975987878
ISBN10 8975987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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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윤수종
「한국농업생산에서 노동조직의 변화과정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자유의 공간을 찾아서』(문화과학사, 2002), 『다르게 사는 사람들』(편저, 이학사, 2002), 『우리 시대의 소수자운동』(공저, 이학사, 2005), 『안토니오 네그리』(살림, 2005), 『욕망과 혁명』(서강대출판부, 2009) 등이 있다. 소수자운동과 미시코뮨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농촌연구도 겸하고 있다. 그동안 네그리, 가타리, 라이히 등을 중심으로 자율사상에 관련된 책들을 번역·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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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서론

농촌사회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농업생산력의 변화에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농업생산력은 기계화 이전에는 축력에 기초한 채 오랫동안 크게 변하지 않아 왔다. 물론 이앙법의 도입 등과 같은 획기적인 재배법의 도입으로 농업생산력이 증진되기도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농업생산력은 일정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그 위에서 농민들 간의 사회관계도 안정화되고 제도화되어 왔다.
따라서 농촌사회의 각종 제도들은 상당 기간 일정하게 유지되는 경향이 있었다. 토지를 둘러싼 관계로서 지주소작관계는 지주제도와 소작제도로 정착되어 왔고, 그 사이에 마름제도를 확산시키기도 하였다. 농촌의 사회제도는 이렇게 물적인 관계를 축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있으나 비물질적인 관계를 축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있다.
비물질적인 관계를 축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는 사회 일반(그리고 특히 농촌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제도로서 ‘서얼차대’, ‘청상과부금혼’ 등과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제도들은 사회의 다양한 차별이나 차이들을 관계망 속에 조립하여 유지시키는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사 분야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로는 이상백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서얼차별제도, 노비제도, 과부재가금지제도 등에 대한 그의 연구는 사회사 연구에서 특이한 제도들을 연구한 것으로 꼽을 수 있다.
농촌사회제도는 농촌의 사회관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행동방식이나 태도 등이 일정한 구도로서 유지되는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틀을 통해서 우리는 그 사회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제도 자체는 사람들의 욕망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갈 수 있으며, 사람들이 그 제도가 자신들의 욕망에 맞지 않을 경우 그 제도에 저항하고 그 제도에서 벗어나거나 피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제도는 다시 변화하여 사람들의 욕망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안정화된다. 물론 이러한 일은 언제나 또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물론 그 제도변화의 밑바탕에는 그 사회의 생산력의 변화가 놓여 있을 것이다.
특히 필자는 농업노동제도들을 중심으로 농촌사회의 변화 모습을 포착하려고 하였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농촌사회제도들은 바로 직접생산자들의 노동과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제도들이다.
이러한 농촌노동제도들의 변화의 기저를 이루고 있던 농업생산력구조의 변화를 간단히 살펴보자.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일제시기부터 1970년대까지의 농업생산력구조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몇 가지 지표의 변화를 통하여 살펴 볼 수 있겠다. 생산력을 노동주체와 생산수단으로 나누고 생산수단을 다시 노동도구와 노동대상으로 나누어, 이를 농업에 적용하여 각각 농업노동력구성 및 농업노동의 성격, 농업기계화, 농지기반의 정비라는 구체적인 지표로서 파악할 수 있겠다.
먼저 일제시기의 농업노동력구성 및 농업노동의 성격을 보면, 농업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자본주의화 과정 속에서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1910년 농가인구는 1천만을 조금 넘어 총인구의 78.1%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후 농가인구는 급속히 증가하였지만 1920년(총인구의 83.4%)을 고비로 하여 증가세는 둔화된다. 절대수를 보면 1920년까지 급속히 증가하다가 1930년대에는 정체하고 있다. 이러한 농가인구의 동향은 자본주의화에 따라 많은 농업인구 및 농가가 도시로 유출하거나 해외로 나갔기 때문이다. 1930년대 말 이후 8·15 직전까지 일제의 전쟁 동원과 노동력수탈 정책으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전반적으로 농업노동력이 과잉하였던 8·15 이후에는 농지개혁으로 농촌내부의 계급대립은 완화되었으며, 도시공업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화는 농촌노동력구성 및 농업노동의 성격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젊은층의 부분이농과 농가의 탈농으로 1960년대 말 이후에는 농가인구의 절대수도 감소하였으며 기계화가 채 진전되지 않았던 1970년대에는 노동력 부족이 심각하였다. 1980년대 이후 농업노동력의 노령화와 여성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농업노동이 상품작물재배에 점점 더 많이 투하되게 되었다. 8·15 이후에는 전반적으로 고용노동의 비중이 줄어들고 가족노동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농업노동의 종류별 상황을 보면 대부분은 가족노동으로 이루어지지만 정작 중요한 작업들은 고용노동 및 품앗이, 기타 조직화된 노동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노동조직이 등장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농업기계화의 상황에 대해서 살펴보자. 일제시기에는 간단한 재래농구의 사용이 지배적이었다. 재래농구의 원동력은 축력이나 인력이었고, 축력에 조악하고 능률이 낮은 인력용구(작업기)가 결합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러한 재래농구의 보급도 아주 미흡한 상태에 있었다. 농기구의 변화를 보면 재래농구를 중심으로 손노동의 강화를 통한 노동이 중심이 되면서도, 1930년대 이후 특히 1940년대 들어서 이른바 개량농구나 근대적인 농업기구들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근대적인 (동력을 사용하는) 농업기계도 주로 탈곡, 곡물조제 및 양수부문에서 일부 사용되었고 경운부문과 같은 기본적인 생산공정에 있어서의 기계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 중요한 원동력이었던 농우는 일부 농가들만 소유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다양한 이용방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8·15 이후 농업기계화과정은 1960년대 중반까지의 축력과 인력농기구 사용 시기, 그 이후 1970년대까지의 축력의 동력으로의 대체와 농기계의 적극적인 도입 시기,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일관기계화작업체계의 도입과 기계이용조직의 발흥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8·15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에는 축력을 원동력으로 하고 인력농기구를 주로 사용하였다. 1950년대에는 축력과 간단한 개량농기구를 중심으로 농작업을 하였으며 농기계의 내용에 있어 일제시기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이전에 사용하던 농기구들이 확대 보급되고, 경운정지를 위한 경운기 및 심경쟁기, 병충해 방제용의 동력살분무기, 한발대책용의 양수기 및 발동기, 족답식탈곡기, 회전동력탈곡기 등이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의 시기에는 원동력으로서 축력이 동력에 의해 대체되어 가고 생산공정에 필요한 농기계들이 적극적으로 보급되었다. 경운기, 방제기, 동력탈곡기 등 소형 동력식 농기계의 보급이 확산되고 농우의 사용은 급속히 감소하였다. 특히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농작업의 가장 기본적인 공정인 경운·정지작업의 기계화가 크게 진전되었으며, 경운기의 이용이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접어들어서는 기계화가 더욱 진전되었으며, 축력·인력용 농기구들은 대부분 사라지거나 아주 부수적인 작업만을 담당하게 되었고, 소형농기계는 여전히 확대 보급되고 있지만 점차 중·대형농기계의 보급이 일반화되었다. 경운기, 탈곡기, 방제기, 양수기 등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부분적인 기계화에서 점차 이앙기, 트랙터, 콤바인, 대형탈곡기, 건조기 등이 도입되어 일관작업화가 가능한 농기계보급이 확산되었다. 여러 가지 농기계를 결합 보유하게 되면서 농기계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 다양한 농기계이용조직들이 결성되어 운용되었다.
농업생산의 주체인 농업노동력의 노령화 및 여성화와 더불어 농업기계화는 197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진행되었고 농업노동과정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여전히 벼농사작업이 주로 기계화되었고 밭농사의 경우는 경운정지 및 방제 정도가 기계화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농업생산력 구성요소로서 농지기반의 정비 상태를 보자. 일제시기에는 농지면적은 전반적으로 증가하였다. 밭을 논으로 변경하는 작업이 많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위해서 수리시설의 확충이 진전되었다.
8·15 이후 한국의 농지면적의 변화를 보면 논면적은 꾸준히 증가하는 편이나 밭 면적은 1960년대 말 이후 급속히 줄어들었다. 농가호당 경지면적은 줄어들다가 농가호수의 감소와 함께 1968년 이후 계속 증가하여 1980년대 들어서는 1ha를 넘어 섰다. 또한 수리답의 비중이 높아지고 경지정리 및 배수개선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어 기계화를 위한 기반조성이 진행되어 왔지만, 농지의 분산, 영세규모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농지와 관련하여 농업노동제도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서 경지이용율의 저하와 조방화를 꼽을 수 있다. 휴경지가 늘어나고 농지의 비농지로의 전용이 늘어났다. 그런 와중에도 상업적 농업으로의 경향 속에서 작부체계 및 작물별 생산액구성은 커다란 변화를 보였다. 1980년대 들어서는 식량작물 재배면적이 급속히 줄어드는 추세 속에서 채소, 과수, 시설작물 등의 재배면적이 늘어났다. 농업생산액의 구성 추이를 보면, 채소, 과일 등의 생산액의 비중이 높아졌으며 특히 축산의 비중이 급속히 높아져 왔다. 작부체계의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고용노동형태를 가져왔다.
농업생산력구조의 변화는 농업노동력의 급속한 감소와 그에 대처한 기계화, 그리고 기계화를 위한 기반조성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력 조건과 함께 농민 내부의 계층간 격차(농민층분화)로 인해 농업노동제도들은 다양한 형태를 띠면서 변화해 나갔다. 농민층분화의 양상은 일제시기에는 지주소작관계의 확대로 특징지어지고 그 과정은 농민층의 분해의 가속화였다. 지주소작관계의 확대 속에서 부농과 빈농으로의 계급적 분화과정이 확대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계층분화 양상은 고용노동 형태의 확산을 가져왔다. 그러나 노동력을 고용하는 입장에서는 농번기에는 개별화된 노동력 보다는 결집된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고지와 같은 노동조직을 가져오기도 했다.
8·15 이후에는 불철저하나마 농지개혁을 통해서 자작농화가 이루어짐으로써 농민층분화는 완화된 형상을 띠고 나타났다. 그럼에도 농민간의 계층적 차이는 존속하였으며 농민 간에 고용-피고용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농업기계화와 상업작물재배로 인해 농촌 내부의 계층분화가 진전되지만 농업 외부(자본)의 압박으로 농촌 내부의 분화는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고 중농표준화의 기조 아래 전계층의 하강경향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기계화의 진전과 상품작물 및 축산, 과수 등의 성장 속에서 농민층 간의 격차가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양극분화의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1990년대 이후에 들어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어 왔다. 특히 새로운 상층농은 국가의 다양한 지원을 받아 농기계를 구입하거나 시설투자를 하여 경영규모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농업노동과 관련해서는 수위탁작업의 활성화와 대규모 고용노동력의 동원이라는 양상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양상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는 다루지 못하였다.
이상과 같은 농업생산력구조와 농민층분화 양상 위에서 농업노동제도는 노동력 중심의 결합형태에서 기계중심의 결합형태로 변화되는 기조 위에서, 기존 형태의 내용이 변화하고 새로운 형태에 의해 대체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2장 두레

한반도의 농업에 있어서 공동작업은 오래 전부터 널리 보급되어 온 것으로 가장 보편적인 노동과정일 뿐만 아니라, 또한 농업노동상 중대한 역할을 해 왔다. 논농사에 있어서는 물의 관리를 위해서 공동노동을 조직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봉건사회에 있어서는 부역노동의 동원에 의한 협업으로 대처해 왔다. 또한 가족노동의 기초 위에서 농업생산과정에 있어서의 공동노동이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 왔다. 즉 가족노동의 기초 위에서 공동노동이 조직화되어 왔는데, 이는 작업의 특성상 일시에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였으며 또한 개인적으로 하는 것보다 집단적 작업을 함으로써 작업능률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전통적인 공동노동의 대표적인 형태로서 일제시기에도 여전히 행해지던 것으로는 두레를 들 수 있다.
두레는 한반도의 농업에 있어서 오래 전부터 행해져 온 것으로 마을을 단위로 하는 생산농민층의 작업공동체의 전형으로서 제시되어 왔다.
두레를 작업종류에 따라 크게 분류하면, 첫째로 물의 관리를 위해서 즉 저수지, 제방, 제언, 보, 도랑 등을 축조·수리하기 위해 조직되는 두레가 있었고, 둘째로는 농경의 생산공정에 있어서 공동작업을 위한 두레가 있었으며, 셋째로 이것들과는 달리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가정 내에서 행하던 길쌈두레가 있었다.
첫 번째 형태의 두레는 오래 전부터 행해져 온 것으로 보이며, 봉건시대에도 부역노동에 의한 공동작업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논농사는 농업의 토대였으며 물의 관리는 논농사의 전제가 된다. 직접 생산과정에 있어서의 공동작업은 아니지만, 이러한 공동작업은 농사의 전제가 되는 것이었고 또한 대규모 건설사업으로 진행될 경우도 있어서, 국가의 강력한 권장과 관할 아래 이루어져 왔다. 관할 몽리구역 안에 있는 농민들이 모여 공동작업을 하는 방식으로 하였으며, 이 경우 마을 내부의 소수농가에서 몇 개 군을 포괄하는 수천 농가까지 참여하는 등 성원의 규모가 아주 달랐다.
두 번째의 두레는 농업생산과정에 있어서의 협업을 위한 것으로, 보통 두레라고 하면 이것을 말한다. 모내기, 김매기, 수확 등 논농사의 주요 작업을 마을 단위로 공동으로 하며 동시에 농악을 즐기는 공동노동조직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의 두레는 여성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길쌈두레, 모시두레, 명두레, 돌게삼, 두레삼, 두레베 등으로 불렸다. 이것은 마포나 면포를 짜는 부인들이 함께 모여서 조원의 포를 돌아가면서 짜는 조직이었다. 늦여름이나 가을밤에 부인들이 어느 한 집에 모여 짤 것을 공평하게 분배하여 농담도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공동작업을 하였다. 누가 잘 짜는가 하는 경쟁도 하였고 두레일이 끝나면 약간의 음식을 준비하여 여흥을 즐겼다. 전북지방에서는 일이 끝나면 약간씩의 팥과 쌀을 모아서 8월 보름에 반달 모양의 떡을 만들어 먼저 각자의 부모님께 드리고 나머지를 모아서 함께 놀았으며, 이를 “달떡놀이(月餠宴)”라고 하였다.
보통 두레라고 할 때에는 대개 두 번째의 것을 말하며 이것은 지방에 따라서 취군, 공굴, 궁굴이, 제리, 자리, 조리, 돌게, 돌게김, 동네논매기, 향두품어리, 모둠차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두레는 한문으로는 단결집합을 나타내는 사(社)라는 말을 덧붙여서 농사(農社)라고 표기하였으며, 일제시기에는 농청(農廳), 농기(農旗), 목청(牧廳), 농계(?契), 거사(?社), 공청(公廳), 계청(契廳), 농악(農樂)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표기되었다.
--- 본문 중에서
필자가 대학원 다닐 시절에 한창 산업사회연구가 붐이 일었고 많은 연구자들이 도시산업의 노동과정 연구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관작업대에서 조립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과정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었다. 이러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필자는 태어나고 자란 농촌으로 방향을 돌려 농업노동과정을 연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농업노동과정은 도시 공장노동자의 노동과정과는 아주 달랐다. 농업노동과정은 농한기와 농번기에 따라 전혀 다르고 철마다 작물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할 수 없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노동조직들에 초점을 맞추어서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한 연구의 결과로 노동조직들에 관해 정리하다가 더불어 머슴이나 소배내기, 마름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사회과학적 논문을 쓰려니 경험적 자료가 필요한데, 대부분 자료가 부실하였다. 역사연구의 한계를 느끼며 오히려 소설로 구성하는 것이 더 낫겠다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제 시기에는 일부 통계자료나 조사자료들이 남아 있었던 데 반해서 8·15 이후에는 오히려 자료가 더욱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구술을 통해 재구성하는 것도 가능했고 인류학적인 문화사적인 조사보고들이 이루어지긴 하였다. 그러나 특히 1970년대 농업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특히 농업기계화와 재배방식의 변화) 및 이농과 더불어 농촌에 있던 사회제도들이 급속히 변화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흩어진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일제하의 농업노동조직 양태와 8·15 이후 농업노동조직의 전개과정을 몇몇 조직별로 정리해 박사논문을 썼다. 구체적으로 필자는 박사논문에서 두레, 품앗이, 고지, 공동경작, 소겨리, 공동작업반, 작목반, 농기계이용조직 등을 주로 노동조직의 측면에서 정리하였다. 그리고 노동조직에 관한 글을 쓰면서 발굴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회사지주, 소배내기, 머슴 등에 관한 글을 써서 발표하였다. 앞의 노동조직들과 추가로 쓴 글들을 묶으려니 사회제도라는 포괄적인 말을 생각하게 되었다. 진작 책으로 내야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정리하여 내게 되었다. 물론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덧붙였다.
어쨌든 이 책에서 다룬 사회제도는 대체로 노동제도에 집중되어 있다. 시기적으로는 일제시대부터 1980년대까지에 한정되어 있다. 1970년대에 농업생산력의 급속한 변화(기계화의 진전, 노동력구성의 변화, 재배법의 변화 - 기계이앙과 제초제의 도입) 등으로 농업노동과정이 크게 변화하였다. 상업적 농업의 발달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와 더불어 나타나는 제도들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다루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해당 주제들에 대한 더욱 풍부한 연구가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두레와 관련해서는 주강현의 연구가 두드러진다. 그는 현장에서 엄청난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해 주고 있으며, 품앗이, 고지, 소겨리, 수눌음(제주도식 품앗이) 등 각종 노동제도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두레에 대해서는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의 두레와 호미씻이의 성격에 관한 연구가 있으며, 두레와 관련된 이 책에서 포괄하지 못한 논문들을 모아 묶어낸 자료도 발간되었다. 그 외에도 두레에 관해 채록·정리하여 자료집으로 만들어 낸 것들도 있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측면에서 두레의 내용을 정리한 논문도 필자가 논문을 쓰던 시기에 나왔다. 이처럼 두레에 대해서는 사라져간 공동체적 노동관행으로서 연구정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져 왔다. 물론 여러 연구자들이 두레를 비롯해 품앗이나 고지 등에 대해서 공동노동의 형태로서 부분적으로 다루어 오곤 했다. 더욱이 두레노동과 함께 이루어지는 노래인 두레소리에 대한 채보작업도 이루어져 왔다.
두레 이외의 노동제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만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편이다. 노동과정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든 탓이리라.
그리고 필자가 연구대상으로 한 회사지주인 조선흥업주식회사의 농업경영에 대한 더욱 풍부한 연구가 박사논문으로 나왔다. 이 연구는 필자의 글 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많은 자료들을 동원하여 연구하고 있다. 더욱이 일본의 모자본에 대한 연구까지 겸하고 있다. 이 연구자는 다른 회사지주에 대한 연구도 하였다.
그리고 필자는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쓰던 시절에 마름에 대한 연구도 하려고 하였는데 이미 좋은 연구가 나와 있었다. 사적인 연구에서는 자료가 한정되어 있어서 그 보다 나은 글을 쓸 수 없었다. 그 뒤로 일제시대에 소작쟁의 및 사건 기사를 중심으로 한 마름에 관한 연구도 나왔다. 다시 정리하려니 두 연구자의 연구를 요약하는 형식으로 밖에 할 수 없어서 그만 두고 말았다. 그래도 어쨌든 일제시대의 계급구조에서 지주·마름 대 소작인?머슴이라는 대립구도를 이루었던 각 층 가운데 마름과 머슴을 연구하고 싶어 했던 필자의 의도는 다른 분들의 연구에 의해 채워진 셈이다. 그리고 머슴설화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이 책은 이들 연구들과 다른 관련 연구논문들을 포괄하지 못하고 예전에 쓴 글을 일부 수정하여 다시 출간하게 되었다. 그리고 원자료를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다 보니 표가 많은 채로 출간하게 되었다. 표를 새로 그리느라 수고한 추주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뒤늦게나마 정리해서 책으로 내게 되었다. 이제는 과거의 것이 되었지만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

2010년 1월 10일
윤수종
---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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